[미디어파인=김문 작가가 쓰는 격동의 현대사를 주도한 군장성들의 이야기]

▲ 사진=tbsTV 화면 캡처

육사의 대사건, 문학사 과정을 신설하다

김 장군은 군단장 임기 2년을 채우기 전에 육사교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그는 이때 두 가지 사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하나는 교과과정을 개편해 ‘이학’ 위주에서 ‘문학’ 과정을 새로 둔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육사 개교 이래 처음 있는 일로서 일대 획기적인 사건이 아닐 수가 없었다. 김 장군은 “육사의 교과목은 대부분 미국의 웨스트포인트를 모방했다. 웨스트포인트는 또 미공병학교의 후신이었다. 따라서 육사의 교과과정은 ‘이학사’ 배출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말하면서 “지휘관은 우선적으로 리더십이 중요하므로 이를 위해서는 ‘문학사’ 과정이 필요하다고 판단, 이학과 문학의 비율을 50대50으로 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하나는 생도들의 호연지기와 정신무장을 다지기 위해 ‘기마부’를 신설한 것이다. 김 장군은 최고회의 재경위원장 시절의 경험을 살려 3천만원의 특별예산을 타내 호주에서 ‘기마부’용 말 36필을 사들여왔다. 김 장군은 또 매주 일요일 말을 타고 기마부 생도들의 선두에 서서 남한산성까지 직접 승마훈련을 지휘했다. 이 때마다 김 장군은 “말을 타면 벤츠도 부럽지 않다.”는 등 걸쭉한 입심으로 생도들에게 화랑도 정신을 강조했다. 이같은 사업과 교과과목 개편 등으로 생도들한테 ‘돈키호테 교장’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 사진=tbsTV 화면 캡처

육영수 여사의 ‘삼선개헌 만류’ 당부

그러던 1969년 어느 날 아침 김 장군은 출근하자마자 뜻하지 않은 전화 한 통을 받고 당황했다. 다름 아닌 박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였다. 요지는 오늘 저녁 조용히 청와대에 들러달라는 것이었다. 무슨 일일까. 육 여사가 직접 전화를 하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 장군의 궁금증은 하루 종일 가시지 않았다.

이 날 저녁 김 장군은 청와대에 도착했다. 육 여사가 저녁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식탁 의자에 앉자마자 박 대통령이 업무를 마치고 들어왔다. 김 장군을 본 박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려 하자 육 여사가 얼른 말을 꺼냈다.

“아빠(육 여사는 박 대통령을 아빠라고 부른다.), 아빠 허락 안받고 김 장군을 불렀어요. 모처럼 저녁이나 같이 하고 싶어서요.”
“아, 그래요. 그거 좋지요.”
박 대통령 역시 김 장군을 만난 지 오래여서 반가운 표정이었다.

잠시 후 셋이 식탁에 앉았다. 박 대통령과 김 장군은 육사 분위기에 대해 얘기를 주고 받으며 식사를 했다. 그 때 육 여사가 불쑥 말을 꺼냈다.
“김 장군, 제가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3선개헌을 해야 합니까, 안해야 합니까? 아빠한테 직언할 사람은 김 장군밖에 없으니 기탄없이 말씀해주세요.”

그제서야 김 장군이 육 여사가 왜 자신을 불렀는지 알 수 있었다. 당시 대학가에서는 3선 개헌을 반대하는 데모가 계속되고 있었다.

육 여사의 목소리는 매우 진지했다. 식탁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무겁게 가라앉았고 박 대통령은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물 한 컵을 쭉 들이마셨다. 육 여사가 다시 김 장군의 대답을 재촉했다. 망설이고 있던 김 장군이 말했다.
“기왕 물어보셨으니 결론부터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면 안됩니다.”라고 못박은 뒤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설명했다.

“각하가 집권해서 많은 경제성장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선진국에서는 고도의 경제성장으로 1인당 국민총생산이 늘어나고 저부가가치 물품은 후진국에서 생산해내도록 유도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상황이 달라질 것입니다. 선진국들은 보호무역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누가 집권을 하더라도 각하만큼 경제성장을 이룩해내지 못합니다. 그러면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각하를 다시 찾을 것입니다. 3선개헌 해서 풍지평파를 일으키지 마시고 4년동안 푹 쉬십시오. 그 다음 출마하시면 됩니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여론을 등에 업으시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이 때 육 여사가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아빠, 보세요. 김 장군의 말이 맞습니다.”
잠자코 듣고 있던 박 대통령이 비장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요, 3선개헌 안하겠소.”

▲ 김문 작가

[김문 작가]
전 서울신문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현) 제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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