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해도,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결혼 전부터 고부갈등을 걱정하거나 또 결혼한 후까지 그럴 이유가 없어도 여전히 시댁과의 관계를 불편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 시어머니로서는 자신이 결코 나쁜 시어머니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며느리가 쉽게 곁을 주지 않아서 서운해하기도 하고 나아가 괘씸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선입견과 서운함이 겹쳐지면 정말로 ‘고부갈등’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낀 남편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두 사람이 친하게 지내지 못하는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할 때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남편들은 고부 관계의 중간에 끼여 어쩔 줄 몰라 하며 억울해 하기도 합니다. 즉 자신은 이미 할 만큼 했는데도 나아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 자신에게는 아무 책임이나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남편이 이런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어머니와 아내 사이를 더욱 멀어지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사실 고부갈등은 아들이자 남편인 남성에게 문제의 원인이 있어서 발생하는 것은 아니며, 일차적인 책임은 어디까지나 당사자인 시부모와 부인에게 있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당사자들끼리 해결이 가능했다면, 더 이상 고부갈등이 아니겠지요. 따라서 고부갈등이라는 표현이 성립하려면, 이미 당사자들이 해결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는 점이 전제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고부갈등 문제는 그 당사자인 시부모와 며느리 두 사람이 알아서 처리해야 하는 문제만이 아닌, 남편이자 아들인 자신도 마땅히 책임져야 하는 몫이 있다는 말입니다.

아내에게는 남편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실 고부 갈등이 부부 불화로 이어지는 것은 고부 갈등 그 자체의 문제보다는 부부가 다른 문제 때문에 이미 갈등 상태에 있거나, 혹은 그 반대로 고부 갈등을 적절히 해결하지 못해서 부부간의 불화로 확대된 경우에 비로소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부부 관계의 여러 면에서 불만을 경험한 부인이라면, 고부 관계의 (다소 사소해 보이는) 불편을 견디기 어려워할 것이 당연합니다. 또 부부 두 사람이 다른 모든 면에서는 잘 통한다고 하더라도, 고부 갈등의 문제를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면 (시부모와의 불편한 관계가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그 불만이 쌓여서 결국 부부 생활의 전반적인 불화로 이어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평소 자신이 남편에게서 충분히 사랑을 받고 있다고 여기는 부인이라면 (그 남편을 위해서라도) 고부 관계의 어려움을 스스로 견디어내려고 하기 마련입니다.

또 정말로 시부모가 부당한 처사를 일삼는다고 해도 부부가 그런 문제를 함께 의논하여 슬기롭게 처리할 수 있다면, 고부 갈등 때문에 부부 관계까지 악화되지는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부갈등의 예방이나 해결을 위해서 남편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일단 (시댁과의 문제로 흔들리지 않을 만큼) 튼튼한 부부 관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하자면, 남편 자신이 ‘부인의 보호자’라는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남편들이 그릇된 판단으로 상황을 개선하기는커녕 더욱 악화시키는 잘못을 저지르곤 합니다. 즉 나름대로 고부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하려다가 자신이 바라는 대로 상황이 해결되지 않고 점점 더 복잡해지는 것 같으면 아예 상황을 외면하고 마는 것입니다.

남편들이 이와 같이 흔히 저지르게 되는 잘못과 그 이유를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많은 남편들이 ‘고부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아내와 좋은 관계부터 회복하라’는 말을 ‘아내 편을 드는 것’처럼’ 받아들입니다. 함께 살기로 약속한 부부니까 좋은 관계를 회복하라는 말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또 그러기 위해서는 다소 아내의 편을 들어줄 수 있는 것인데도, 남편들이 이처럼 움츠려 드는 첫째 이유는 그것이 어머니를 배신하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혼하여 남편이 되었으면 어머니보다 부인의 입장을 먼저 고려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이는 결코 죄책감을 가질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볼 때, 시부모와 관련된 많은 상황에서 아들인 자신이 처리할 수 있는 것보다 며느리인 부인이 감당해야 하는 일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남편들은 평생 고생만 한 어머니가 불쌍해서 어떻게든 보상해드리고 싶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부인에게 자신의 심정을 충분히 설명하여 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사실은 (냉정한 표현이 되겠지만) 자신의 가정생활을 위험하게 하면서까지 어머니를 위한다는 것이 정말 맞는 말인지도 되돌아볼 일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남편은 (비록 어머니가 당장은 서운해 하더라도) 어머니에게는 아들인 자신보다 며느리가 더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해서, 부인이 편안하게 ‘착한 며느리’ 역할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내가 시댁에 대한 불만과 원망을 쏟아놓을 때 남편은 부인의 말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려는 충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부인은 지금 ‘당신이 과연 내 편인가, 아니면 어머니 편인가?’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대단히 간절한 심정’에 있다는 점에만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럴 때 많은 남편들이 저지르는 잘못은 “당신이 아직 잘 몰라서 그렇지, 내 어머니는 그럴 분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무리 설득력 있게 설명을 하려고 해도, 일단 이런 모습을 보이면, 십중팔구 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남편으로서는 (어머니를 편들려고 한 것이 절대 아니고) 그렇게 해서 부인을 달래려고 한 것이었지만, 이 경우 “아, 그래? 그러니까 내가 잘못 생각했던 거구나. 그렇게 말해줘서 큰 도움이 됐네.”라고 말할 부인은 절대라고 할 정도로 없습니다. ​오히려 (남편의 의도와는 정 반대로) ‘이 남자는 내 편이 아니구나!’라는 불신이나 “그러면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거야?”와 같은 반발심을 갖게 된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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