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목격자>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스릴러 영화 ‘목격자’(조규장 감독)의 특징은 시작부터 범인을 공개하는 담대함에 있다. 이런 장르의 경우 맥거핀 장치를 통해 관객을 속여 가며 궁금증을 증폭시킨 뒤 마지막에 뒤통수를 때리는 반전의 충격파로 전율케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목격자’는 공포의 전이라는 높은 몰입도로 승부수를 던진다.

보험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40대 가장 상훈(이성민)은 산자락 단지의 아파트를 장만하고 동료들에게 한턱낸 뒤 새벽 2시께 귀가한다. 아내 수진(진경)과 유치원생 딸 은지는 이미 잠든 상황. 베란다에 캔 맥주 하나를 들고 서있던 그는 단지 앞마당에서 태호(곽시양)가 한 여자를 죽이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 순간 선잠에서 깬 수진이 거실의 등을 켜고, 그만 태호와 상훈의 눈이 마주친다. 상훈이 황급히 등을 끄지만 태호는 상훈 집 층수를 센 뒤 유유히 사라진다. 다음날 아침 형사 재엽(김상호)이 이끄는 수사팀이 현장에 나타나지만 희한하게도 목격자가 하나도 없다. 재엽은 가가호호 탐문수사를 펼친다.

태호는 목격자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606호의 상훈, 405호의 주부 서연, 그리고 지체장애인 필구다. 태호는 아파트 주변을 맴돌고, 상훈의 불안과 공포는 최고조에 달한다. 서연이 찾아와 경찰서에 함께 가자고 애원하지만 보복이 두려운 상훈은 매몰차게 거절하고 재엽의 추궁에 모른다고 우긴다.

▲ 영화 <목격자> 스틸 이미지

그러던 중 경찰은 피해자의 전 연인을 용의자로 지목한다. 용의자는 피해자로부터 절교를 선언당한 뒤 계속해서 스토킹을 하는 등 꽤 위협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 재엽 등은 확인된 용의자의 소재지를 급습하지만 용의자는 신출귀몰하게 도주한다. 그런데 그 자리에 의외의 인물이 나타나는데.

목격자가 많을수록 책임감이 분산됨으로써 도와주지 않고 방관하는 심리 현상인 제노비스 신드롬, 혹은 방관자(구경꾼) 효과가 골격이지만 내포된 메시지는 무궁무진하다. 확실한 공포라는 장르적 메리트로 여름 시장에서의 성공을 노리는 한편 현대사회에 만연된 병폐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먼저 이기주의. 상훈을 비롯해 수진은 물론 아파트의 전 주민이 집단 이기주의라는 광기에 휩싸여 있다. 아무리 밤이 깊은 시각이라 해도 다가구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비명소리를 듣거나 살인 장면을 목격한 이가 하나도 없기 힘들다. 그러나 주민들은 서로 쉬쉬하며 모르쇠로 일관한다.

아파트 시세가 떨어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잔인한 살인마에게 피해를 입을까 두려운 이도 있다. 픽션이지만 우리 주변에서 많이 봤던 장면 같은 기시감을 준다. 폭력이 두려워 폭력을 눈감는 사람들. ‘왕따’를 호소 못하는 아이부터 조폭이나 권력의 횡포에 큰소리로 대처하지 못하는 어른까지.

▲ 영화 <목격자> 스틸 이미지

외형상 구도는 상훈과 태호의 대결 같지만 사실은 상훈과 재엽의 갈등 혹은 대립이다. 재엽이 진실을 좇는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히어로 스타일이라면 상훈은 전형적인 소시민적 가장이다. 재엽의 가치관이 대의명분이라면 상훈은 가족의 안위다. 상훈에게 중요한 건 정의가 아니라 가정의 평화다.

이런 설정은 소위 님비현상 등에 대한 강렬한 비판이다. 늦은 밤 홀로 엘리베이터에 탄 서연이 갑자기 들이닥친 상훈에게 공포심을 느끼는 건 누구나 이웃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메타포. 수진이 상훈에게 군중이 몰린 범행 현장에 “가보자”고 단순한 호기심을 보이는 것 역시 무의식 속의 폭력.

부녀회장은 “들어도 못 들은 척, 봐도 못 본 척하는 게 요즘 세상”이라며 주민들에게 경찰과 언론에 정보를 주지 말라고 당부한다. 재엽에게 “여기 주민들은 준법정신 강한,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라고 큰소리친 한 주부는 마트의 카트를 집까지 몰고 올 정도로 도덕과 질서의식이 희박하다. ‘내로남불’.

인터넷이 발달한 현대사회는 개개인의 주소, 휴대전화번호 등 신상정보가 손쉽게 노출된 세상이다. 상훈과 단지 주민들이 비겁하거나 비열한 행동에 자위를 위한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에 대한 일말의 근거다. 이는 보이스 피싱에 희생되는 황당한 현실을 비웃는 시퀀스로 이어지기도 한다.

▲ 영화 <목격자> 스틸 이미지

단지 내에서 잔인한 살인사건이 벌어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 나간 애완견을 찾는 데 집중하는 시퀀스는 애견 인구 1000만 명 시대의 이면을 비웃는 것. ‘우리 개는 안 물어요’의 이율배반. 진실을 밝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실적’이 중요한 재엽의 상관은 탁상행정 위주의 공무원에 대한 노골적인 야유.

재엽의 “연쇄살인범이 왜 살인을 저지르는지 아세요? 살인에 이유 없어요. 우린 그런 미친놈들과 함께 살아요”라는 말은 삭막한 현실에 대한 살벌하지만 엄연한 사실을 깨우쳐준다. 이른바 ‘묻지 마 범죄’를 말한다. 큰돈이나 엄청난 원한 때문이 아니라 단순한 분노와 폭력적 성향이 ‘아무나’를 위협한다.

상훈이 한밤에 범행 자리에서 “살려주세요, 사람 살려”를 외쳐도 반응하는 이 아무도 없는 시퀀스가 주는 공포는 정말 압권이다. 그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아파트를 올려다보는 신은 심리학의 ‘조망수용’이다. 태호도 같은 액션을 취한다. 역지사지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강력한 교훈이다.

공포는 전체의 플롯부터, 세부적 시퀀스까지 충만한데 특히 첼로 등의 현악기를 앞세운 배경음악이 큰 도우미가 된다. 카 액션이 주는 서스펜스도 꽤 좋다. 캐릭터를 서늘한 표정 하나로 완성한 곽시양의 존재감도 훌륭하지만 이성민과 김상호의 연기 대결은 명불허전이다. 111분. 15살. 8월 15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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