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란국과 보리밥을 넉넉하게 먹고,
따뜻한 온돌에서 잠을 넉넉하게 자고,
땅에서 솟는 맑은 샘물을 넉넉하게 마시고,
서가에 가득한 책을 넉넉하게 보고,
봄꽃과 가을 달빛을 감상하고,
새의 지저귐과 솔바람 소리를 듣고,
눈 속에 핀 매화와 서리 맞은 국화 향을 맡고 있다네.
한 가지 더,
이 일곱 가지를 넉넉하게 즐기는 마음까지 팔여(八餘)라네.‘

▲ 인왕산에서 바라 본 한양도성 성곽과 목멱산 아래 서울 여름 풍경

[미디어파인=최철호의 한양도성 옛길] 사재(思齋) 김정국(金正國)은 한양을 떠나 유유히 낙향한다. 안산(鞍山)을 넘어 난지도를 건너 고양 망동 명봉산에 이른다. 은휴정 정자를 짓고 ‘팔여거사(八餘居士)’로 선비의 길을 걷는다. 외롭지만 친구에게 부족함이 없이 살아가는 마음을 시(詩)에 담아 본다. 야트막한 산에서 한강을 보며 유유자적 기러기처럼 날아간다.

고양 팔현을 생각하며 덕양산에 오른다

사액서원 중 문봉서원(文峰書院)의 학식과 성품이 도성 너머 한양까지 전해온다. 고양 팔현(八賢) 중 사재의 글을 떠올리며 서오릉 따라 창릉천에서 덕양산을 바라본다.

백두대간이 흘러내려 삼각산에 멈춘다. 한양의 진산 삼각산이다. 삼각산 아래 주산 백악산이 보인다. 한여름 무더위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울울창창하다. 대서 지나 입추 오니 바람이 서늘하다. 북한산성(北漢山城) 따라 봉우리가 병풍을 친 듯 솟아 있다. 산과 산이 울창하다. 봉우리와 봉우리가 하늘에 닿을 듯 녹음이 우거진다. 매미소리와 벌레소리가 산속을 장악한다.

서울은 산이다. 백운대·만경대·인수봉이 세 개의 뿔처럼 숲을 이루며 서울을 감싼다. 비봉아래 구릉지와 평야가 구름속에 살포시 보인다. 한강을 끼고 덕양산·망월산·고봉산등 구릉성 산지가 곳곳에 있다. 입추가 지난 하늘은 맑고, 구름은 산과 산 위에 떠 있다.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은 한강변이 절벽 이지만 녹색으로 이루어져 천혜의 요새이다.강이 있고,산이 있고,들과 뻘이 있다.

삼각산에서 발원한 곡릉천과 창릉천은 빗물에 가득 차 고양의 중심부를 흘러 꺽인다. 곡릉천은 관산동을 지나 파주 교하에 물이 모인다. 창릉천은 효자동을 지나 행주산성 부근까지 세차게 흘러 한강으로 쉼없이 들어간다. 강줄기 따라 골짜기와 골짜기에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화전동·현천동에는 이름처럼 기름진 논과 밭이다. 한강변은 침수 위험이 있으나, 너른 토양이 비옥하여 산출이 많았다. 동쪽은 높은 산지요,서쪽은 낮은 구릉과 하천 퇴적지인 평야지대다. 송포동·능곡동·일산동은 경기의 주요 곡창지대이다.

▲ 인왕산에서 바라 본 선바위와 한양도성안과 밖_ 서울 풍경

고양(高陽)의 역사와 유래을 찾아서...

고양은 예로부터 중요한 거점이었다. 교통의 중심,수운의 길목이다. 한강을 끼고 창릉천 따라 삼각산 아래 탕춘대성 지나 홍지문을 통하면 한양도성을 만난다. 또한 임진강 따라 한강이 만나는 교하를 지나면 덕양산이다. 한양을 가는 길목,한강을 건너는 목구멍이니, 인후와 같은 중심 도시이다.

삼국시대부터 이곳은 각축장이었다. 백제 영토는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정책으로 한성이 함락된다. 고구려때 한산주 즉 북한산주 달을성현이었다. 신라시대에는 고봉현있었고, 고려시대 남경유수관으로 덕양현이었다. 조선 초 고봉과 덕양을 합쳐 고양현으로 불리었다. 이후 경릉과 창릉등 고양현에 왕릉이 조성되며 고양군이 된다. 해방 후 서울시가 확대되며 4대문 밖 성저십리를 넓게 멀리 펼친다. 고양은 서울시에 삼각산과 덕양산 자락이 있는 외4산(삼각산-용마산-관악산-덕양산)까지 편입된다.

현재 신도,원당,일산,벽제,지도를 포함해 600여 년 역사와 문화 도시로 100만 인구의 거대도시다. 서울시과 접경지역이다. 양주와 의정부,파주 한강을 두고 김포와 접해있다.

남북정상회담 후 통일로 가는 교통의 중심지다. 한반도의 배꼽이 될 것이다. 1000만 서울 대도시의 접경으로 도시와 농촌,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미래 지향적인 도시로 급부상 중이다.

특히 북한산성과 행주산성, 고양 향교와 문봉서원,행주서원이 있는 역사가 깃든 도시이다. 서오릉과 서삼릉,월산대군 사당과 벽제관지는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공양왕릉과 최영장군 묘는 역동적인 고려 말과 조선 초를 함께 볼 수 있는 유일한 고장이다. 수려하고 아름다운 도시이다.

▲ 인왕산 선바위에서 바라 본 한양도성 성곽과 목멱산 정상

행주산성에서 임진왜란 최초의 승리, 권율장군을 만나다.

내4산으로 둘러싸인 한양은 도성안과 도성밖 성저십리까지 관할하였다. 도성 서쪽과 북쪽,남쪽은 모두 고양이었다. 외4산이 펼쳐진 삼각산과 덕양산에서 임진강까지 펼쳐진 곳이 고양이다. 한강 따라 한양에 이르는 수운의 중요한 교통의 요충지이다. 군사적으로 천혜의 요새다. 이곳이 행주 덕양산이며, 산성을 쌓으니 행주산성이다.

충장공 도원수 권율장군의 임진왜란 대첩지가 고양 행주이다. 임진왜란 3대첩인 진주대첩,명량대첩,행주대첩 중 한양에서 가장 가까운 곳, 바로 행주산성 전투지였다.

인왕산 아래 행촌동에서 태어난 권율장군은 지역마다 지세를 잘 활용하였다. 도성 옆에서 자란 권율은 산과 산을 잇는 산성을 이용해 싸움마다 승리했다. 금산 이치전투,오산 독산성 전투 승리 후 많은 병사들과 의병들이 모인다. 고양 덕양산 행주의 행주대첩 승리로 한양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다. 덕양산 행주산성은 역사적인 현장이다. 한강위에 높지 않지만 삼각산을 볼 수 있는 중요한 길목이다. 너른 뻘과 들판에 섬처럼 우뚝 선 덕양산, 창릉천 따라 한양도성을 향하는 목구멍과 같은 중요한 곳이다.

고양은 한양과 접한 큰 도시였다. 고양의 동네들이 서울에 편입 되었다. 서강,용강,마포,연희,신촌,은평,구파발,구기,진관등이 서울로 확장되었다. 서울 인구가 팽창하며 고향을 찾아가듯 다시 고양으로 간다.

고양은 인왕산과 목멱산을 잇는 한양도성 길목에 있다. 백악산과 삼각산을 잇는 경계에 있다. 한양도성 옛길을 잇는 살아 숨쉬는 역사의 현장이다. 문화와 이야기가 가득한 박물관이다. 살아서 왕이 가는 행차지이고, 죽어서 왕이 묻히는 능터이다. 역사와 문화 가득한 교육 도서관이다. 움직이는 역사 백과사전이다.

고양은 한양도성 18.627km가 접하여 풍수지리적으로 길지이며, 명당터이다. 왕릉이 있고 행궁터가 많다. 지명 하나하나에 역사와 문화가 깃들어 유래가 깊다.

▲ 인왕산 선바위에서 바라본 목멱산 아래 서울 전경

고양 속 고향같은 우리동네의 유래를 틈틈이 찾아 나서기로 하자.

주교(舟橋)·성사(星沙)·원당(元堂)·신원(新院)·원흥(元興)·도내(道乃)·북한(北漢)·효자(孝子)·지축(紙杻)·오금(梧琴)·삼송(三松)·동산(東山)·용두(龍頭)·고양(高陽)·벽제(碧蹄)·선유(仙遊)·대자(大慈)·관산(官山)·내유(柰遊)·내곡(內谷)·대장(大壯)·신평(新坪)·토당(土堂)·화정(花井)·행주내(幸州內)·행주외(幸州外)·강매(江梅)·행신(幸信)·향동(香洞)·화전(花田)·덕은(德隱)·현천(玄川) 등 덕양구 32개 동이 있다.

식사(食寺)·중산(中山)·장항(獐項)·풍(楓)·산황(山黃)·백석(白石)·마두(馬頭)·사리현(沙里峴)·지영(芝英)·문봉(文峰)·설문(雪門)·성석(城石)·정발산(鼎鉢山) 등 일산동구 13개 동이 있다.

일산(一山)·탄현(炭峴)·주엽(注葉)·대화(大化)·법곶(法串)·구산(九山)·가좌(加佐)·덕이(德耳) 등 일산서구 8개 동이 있다.

고양은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을 거쳐 후고구려,태봉,통일신라,고려,조선시대까지 중요한 교통의 중심지이다. 고양은 군사의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한강 유역과 임진강 유역에 걸쳐 역사적인 문화재와 유적들이 산재 해 있다. 통일을 바라보는 미래의 꿈과 희망이 가득한 도시이다. 바다 건너 대륙, 강 건너 희망찬 미래가 펼쳐 보인다.

▲ 인왕산 선바위와 한양도성 안과 밖_서울 도심 속 풍경

강과 강으로 둘러싸인 고장,
600여 년 역사와 문화의 도시,

한강과 임진강의 도도한 흐름처럼,
삼각산과 덕양산이 만나 하나 되는 곳,
태양이 머무르는 꿈의 도시,

여기는 희망찬 고양이다.

▲ 최철호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저서)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최철호 소장]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지리산관광아카데미 지도교수
남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외래교수

저서 :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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