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이하 ‘폴아웃’,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은 시리즈 사상 최고 성적을 바라보고, ‘공작’(윤종빈 감독)은 ‘구강 액션’이라는 다소 천박한 신조어를 유행시키며 첩보 영화의 새 장을 열고 있다. 눈이 즐겁고, 귀가 호강하는 다름에도 함께 인기를 끈다는 건 관객의 수준이 높다는 증거다.

‘폴아웃’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외형에 역사가 짧아 신화가 없기에 오랜 유럽의 역사와 고대 그리스 신화에 집착하는, 미국의 콤플렉스에서 기인한 정서가 내면을 형성한다. 약 1960억 원의 제작비는 ‘공작’의 나름대로 큰돈이라는 190억 원의 10배를 훌쩍 넘기는 액수다.

벌써 50대 중반에 들어선 톰 크루즈는 매 시리즈마다 가능한 한 위험한 장면을 대역이나 CG가 아닌 실연으로 소화해내는 걸 주저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할리우드의 청룽(성룡)인 셈. 고급 승용차부터 헬기까지 소모해가며 관객들의 눈을 최대한 즐겁게 해주려는 노력이 느껴지는 비주얼을 자랑한다.

그리스 신화의 오디세우스는 이타카의 왕이다. 그리스 최고의 미녀 헬레네에게 각 나라의 왕들이 청혼해오자 골머리를 앓던 그녀의 아버지 틴다레오스에게 ‘ 결정에 앞서 모든 구혼자들에게 누가 남편으로 선택되든 그 권리를 인정하고 부부를 지켜주겠다는 서약을 먼저 받아내라’는 묘책을 줬던 지략가다. 

▲ 영화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 스틸 이미지

이 서약이 트로이 전쟁의 빌미가 됐다. 헬레네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를 따라 달아나자 남편 메넬라오스가 형 아가멤논을 움직여 서약대로 그리스 전군이 헬레네를 되찾으러 트로이로 출전한 것. 결국 오디세우스는 숨어있던 아킬레우스를 찾아내 참전시키고 목마 작전을 펼쳐 승전으로 이끌었다.

그는 10년의 전쟁과 10년의 귀국 기간을 거치는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돌아오지만 아내 앞에 나서지 못하고 예전에 명궁 에우리토스에게 선물 받은 활로써 아내에게 구혼하는 경쟁자들을 물리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정체를 입증했다. ‘폴아웃’의 주인공 에단은 바로 이 오디세우스를 상징한다.

그는 간호사 줄리아와 결혼했지만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자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헤어진다. 신화에선 두 사람이 재회하지만 영화에선 조금 다르게 그려진다. 오디세우스는 모든 임무를 마치고 귀국했지만 에단은 아직도 목숨을 담보로 한 ‘불가능한 임무’를 수행 중이기 때문이다.

부제가 ‘좋지 못한 결과’인 것은 에단 부부가 비로소 끝났음을 의미할 수도, 향후 더 나올 시리즈 혹은 또 다른 암시를 뜻할 수도 있다. 이에 비교하면 ‘공작’에선 액션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가 없다. 대신 남과 북의 긴장관계와 남측 내의 정치적 이면이 액션 이상의 서스펜스를 선사한다.

▲ 영화 <공작> 스틸 이미지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북측의 핵 보유 여부에 모든 감각을 집중시키던 때. 안기부는 이의 확인을 위해 육군 정보사 소령 한 명을 공작원으로 스카우트해 흑금성이란 암호명을 붙인 뒤 돈에 눈먼 사업가로 위장시켜 중국 베이징으로 보낸다. 몇 년 후 흑금성은 김정일의 외화벌이 책임자 명운을 만나게 된다.

1997년 드디어 김정일까지 만나 남북 합작으로 북측에서 상업용 광고를 찍는 사업의 허가를 받아내지만 갑자기 안기부가 태도를 바꾼다. 당시 남측은 대선을 코앞에 두고 있었는데 야당 후보 김대중이 여당 후보 이회창을 앞선다는 여론조사가 보고되자 보수 여당이 ‘전가의 보도’를 꺼내든 것.

보수 여당이 혹세무민과 위기 대처를 통한 정권 유지를 위해 교묘하게 ‘북풍’을 이용했다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다만 독재정권의 서슬 퍼런 ‘빨갱이’에 대한 지침과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때문에 입을 다물었을 뿐이다. 영화는 진짜 국보법 위반자가 누구인지 보여줘 충격적이다.

감독은 사실에 기반을 두고 기획하고 흑금성의 실제 인물 박채서 씨를 직접 인터뷰함으로써 영화를 완성했다. 인물과 에피소드에 픽션이 가미된 건 당연하겠지만 근간을 이루는 역사적인 사건이나 정황 등은 엄연한 사실이다. 현 정부에서 드러나고 있는 전 정부와 전전 정부의 만행을 보면 이해가 된다.

▲ 영화 <공작> 스틸 이미지

아마 관객이 몰리는 이유는 믿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은밀한 정보가 엄연한 사실이었고, 그 막후에 이런 엄청난 사연들이 존재했다는 데 대한 새삼스러운 확인의 뿌듯함 아니면 상상도 못했던 역사적 사건에 대한 놀라움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주연배우들의 팽팽한 연기력의 향연도 한몫을 한다.

흑금성과 명운은 신념의 상징이다. 흑금성은 군 출신이니 당연히 보수적인 성향이겠지만 그는 정치색보다는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책임감의 인물이다. 명운은 여기에 더해 인도주의적 색채가 강하다. 흑금성의 정체를 눈치챈 듯하지만 가난 때문에 죽어나가는 동포를 살리기 위해 사업에 집착한다.

그는 정치가 어떻게 흐르든 개의치 않고 아사, 동사하는 수많은 서민들을 살리고자 하는 휴머니즘으로 모든 가치관을 가늠하고 방향을 정한다. 이에 비해 안기부는 아전인수가 몸에 밴 자가당착적 존재다. ‘국가를 위해서’라는 대의명분을 입에 달고 살지만 사실은 보수정권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다.

결국 한 목적에서 출발한 흑금성과 안기부는 안티노미(이율배반, 칸트)가 되고, 서로 다른 목적에서 가면으로 위장한 채 시작된 흑금성과 명운의 관계는 하이데거의 존재사건(생기, 인간과 존재가 서로 양도하고 귀속한다)으로 승화된다. 가면을 쓰고 시작했던 두 사람이 서로가 서로의 페르소나가 된다는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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