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서치>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할리우드의 미스터리 스릴러 ‘서치’(아니쉬 차간티 감독)는 확실히 독창적이다. 막 데뷔한 감독의 나이는 이제 27살이고, 작품은 모든 장면이 PC라는 디지털 환경을 통해 구현되는 장편 상업영화의 효시다. 즉 관객은 스크린을 바라보지만 결국 주인공의 노트북을 통해 영화를 감상하는 셈이다.

한국계 미국인 부부 데이빗(존 조)과 파멜라(사라 손), 그리고 딸 마고(미셸 라)의 행복했던 가정. 마고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며 건강을 자랑하던 파멜라가 마고의 고등학교 진학 직전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집안 분위기는 어두워진다. 마고는 삼촌 피터(조셉 리)에게 의지하며 간신히 마음을 추스른다.

금요일 아침에 일어난 데이빗은 전날 밤 11시 30분께 마고가 3통이나 전화를 걸었음을 확인한다. 딸이 밤늦게 들어왔다 아침 일찍 등교했으려니 생각하고 전화를 걸지만 안 받는다. 수업을 받느라 그러려니 생각하고 출근한다. 늦은 오후에도 안 받자 딸이 있을 곳으로 예상되는 피아노 학원에 전화한다.

학원 선생은 6개월 전에 그만뒀다는 충격적인 얘기를 전한다. 뭔가 크게 잘못됐음을 느낀 데이빗은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고, 홀로 아들을 키우는 여형사 로즈마리(데브라 메싱)가 전담 형사로 배정된다. 데이빗은 마고의 노트북을 통해 그동안 잘 안다고 생각했던 딸의 몰랐던 사실들을 파헤쳐 나간다.

▲ 영화 <서치> 스틸 이미지

그는 마고의 친구들과 통화를 하면서 의외로 그녀에게 진정으로 가까운 친구가 없었음을 알고 놀란다. 심지어 그녀는 지금까지 혼자서 점심밥을 먹었다. 게다가 자신보다 피터와 더 가까웠던 듯하다. 여기에 더해 피아노 레슨비를 모은 2500달러를 다른 곳으로 송금한 사실까지 드러나는데.

감독은 SNS 세대답게 구글, 유튜브, 페이스북은 물론 1인 방송 등 각종 SNS를 총동원해 요즘 10~20대들이 온라인을 통해 어떤 취미와 문화 활동을 펼쳐 가는지 보여준다. 이 영화가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첫째 이유는 데이빗을 비롯한 부모의 ‘내 자식은 내가 제일 잘 알아’라는 착각의 폭로에 있다.

데이빗과 마고는 매우 다정한 부녀 사이였고, 파멜라 사후 마고의 유일한 가족이자 보호자로서 더욱더 각별한 애정을 쏟았기에 그는 마고가 그 누구보다 자신을 제일 친밀하게 느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함정이었다. ‘슬하의 자식’이란 말이 있듯 자식이 직립보행을 하게 되면 달라진다.

부모의 무릎 밑을 기던 시기가 지나면 아이들은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을 가짐으로써 하나, 둘씩 비밀을 쌓아간다. 물론 영화는 부모가 갖는 자식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찬양한다. 그럼에도 데이빗이 마고에 대해 몰라도 지나치게 몰랐다는 사실이 한 꺼풀씩 벗겨질수록 소름 끼치는 두려움을 몰고 온다.

▲ 영화 <서치> 스틸 이미지

마고는 엄마에게 피아노를 배우며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그 누구보다 밝고 긍정적인 아이였다. 그러나 엄마 사후 상호 교환적인 사회적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에 지속적인 손상을 보이고, 행동 패턴, 관심사, 활동의 범위가 한정되면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 ‘사회 불안 장애’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친구들의 초대에도 응하지 못하고, 혼자 쓸쓸히 밥을 먹으며, 자기 방에서 1인 방송에 몰두하면서 온라인을 통해 사귄 얼굴도 모르는 유일한 친구와 소통했던 게 바로 그 증거다. 그녀의 세계는 오로지 노트북 내의 온라인에 펼쳐져 있었다. 바깥에서 유일한 해방감을 느낀 곳은 근처 호수일 뿐.

하이데거를 기준으로 할 때 그녀는 현존재(마고)를 떠나 존재자(자기)를 존재 안으로 밀어 넣은 온라인상의 선험적 존재로서 실존하는 것이다. 데이빗은 마고의 남자친구라 자칭하는 한 소년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경계선 성격장애’를 나타낸다. 사회적 편견이 평범했던 부녀를 파괴하는 것이다.

러닝타임 101분이 결코 짧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지루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마고라는 캐릭터와 정신세계,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주변은 거듭 알아갈수록 비밀투성이다.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수록 관객의 궁금증과 공포심은 겹겹이 더해갈 것이다.

▲ 영화 <서치> 스틸 이미지

이런 복잡한 시퀀스는 반드시 반전을 가져오기에 흥미롭다. 익숙한 스크린이 아닌, OS 운영체제(다수의 컴퓨터 동시 접속)와 모바일 등으로만 진행되는 그림은 관객으로 하여금 온라인 공간에 갇힌 듯한 착각을 통해 더 큰 공포를 경험하도록 만든다. 참으로 영리한 스릴러계의 젊은 감독의 탄생이다.

로즈마리와 피터가 매우 침착한 어른으로, 데이빗이 점점 광기에 휩싸여 가는 집착적 어른으로 각각 대비되는 건 만연한 부조리에 대한 메타포일 수도, 표리부동한 사회적 현상에 대한 일갈일 수도 있다. 스토리는 배경인 조용한 마을처럼 사소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지만 플롯은 매우 진중하다.

그리스 신화의 자신의 지위와 환경에 취해 오만이 극에 달한 탓에 신의 분노를 사 딸 안드로메다를 희생시킬 위기에 처한 에티오피아의 여왕 카시오페이아 얘기를 살짝 참조한 듯한 뉘앙스가 짙기 때문이다. 이를 평범한 가정의 가장 큰 공포인 자식의 실종이란 소재와 접목한 센스가 돋보인다.

한국 관객에겐 주인공들이 모두 한국계라는 게 매우 친밀하게 다가갈 것인데 특히 ‘스타트렉’ 시리즈로 낯익은 존 조의 ‘원 톱’ 활약은 자긍심을 줄 듯하다. 가희, 손담비와 함께 댄스 그룹 에스블러쉬에서 활동했던 사라 손의 연기력과 매력도 크게 어필할 듯하다. 12살 이상 관람 가. 8월 29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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