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마일 22>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마일22’(피터 버그 감독)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액션, 철학과 심리학이 적당하게 어우러진 수작으로 평가받기에 부족하지 않다. 액션(재미)과 철학(사유)을 동시에 담아 ‘팝콘’ 취향의 관객과 지적인 유희를 즐기려는 이를 동시에 만족시킨 워쇼스키 자매의 ‘매트릭스’에서 ‘공상과학’만 뺐다.

미국 정부는 군사, 외교의 사각지대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비밀조직 오버워치를 은밀하게 운영 중이다. 오버워치 현장팀장 실바(마크 월버그)는 어릴 적부터 영재였지만 분노조절 장애와 강한 자기주장으로 팀원들마저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들 정도로 비사교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는 팀원들과 함께 미국 내 변두리에서 암약 중인 구 소련 KGB의 후신 FSB 조직의 은신처를 급습해 FSB 요원 7명을 사살한다. 그런데 그들 중 한 명이 18살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실바는 내부적으로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른다. 그로부터 16개월 뒤 동남아시아 인도카르 시티.

실바 팀은 앨리스(로렌 코핸)가 정보원으로부터 얻은 정보에 따라 엄청난 화력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세슘을 회수하기 위해 한 장소를 급습하지만 허탕을 친다. 미국 대사관에 차린 임시 캠프에서 실바는 앨리스의 정보원 운영 능력을 질타하며 이혼소송 중인 그녀의 상처를 건드린다.

▲ 영화 <마일 22> 스틸 이미지

그런데 정보원인 현지 경찰 리(이코 우웨이스)가 세슘이 은닉된 장소를 담은 디스크를 들고 대사관에 투항하며, 디스크에 걸린 비밀번호를 줄 테니 미국으로 망명시켜 달라고 제안한다. 이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일 즈음 현지 외교부 차관이 대사관을 방문해 반역자인 리를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미국은 비공식적으로 리를 미국으로 망명시키라는 승인을 내린다. 그런데 오버워치는 오직 그들만의 힘으로 이를 해결해야 한다. 대사관으로부터 특별수송기가 대기 중인 22마일의 거리를 이동해야 하지만 불법도 마다않는 인도카르 정부가 무차별 화력을 퍼부을 게 뻔하다. 작전은 성공할 것인가?

이코는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액션 스타로 ‘아저씨’에서 원빈이 보여준 실랏의 고수다. 그는 실랏을 비롯해 카포에라, 쿵푸 등이 가미된 맨몸 액션의 선봉장으로 나섬으로써 자칫 보편적인 총격 액션에 머물 뻔했던 비주얼을 호화롭게 만들었다. 월버그와의 조합은 팝콘무비로서 부족할 게 없다.

무대는 인도네시아의 ‘인도’와 술과 육식이 금지된 인도 힌두교의 성지 푸쉬카르의 ‘카르’를 조합한 듯하다. 혹은 ‘경례하다’는 카르살람과의 조합인 가상의 도시(국가)다. 백주대로에서 중화기가 난무할 만큼 정권의 부패가 극에 달한 것으로 설정돼있음은 곱씹어 생각해볼 만한 상황이다.

▲ 영화 <마일 22> 스틸 이미지

화면엔 미국 역대 대통령의 피규어가 등장하고, “경찰은 정치인을 흔들고, 정치인은 국민을 흔든다”는 대사가 나온다. 무법과 무질서가 횡행하는 인도카르는 과연 미개한 동남아시아의 한 지역일까? 스쳐 지나듯 흐르는 ‘선거 해킹’이란 대사를 대입하면 미국-러시아 관계를 은근히 비꼬는 듯하다.

그 탄착점은 결국 트럼프다. 그래서 ‘정부의 존재’를 운운한다. 이 절묘한 대사는 “존재하지만 존재를 모르는 것”이란 대사로 이어진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의 영향이다. 감독은 하이데거 팬인 듯하다. 정부라는 존재자가 국민이란 현존재에 기능하는 바에 대한 짙은 비호감이 부각된다.

‘존재하면서 존재를 모른다’는 말은 정부의 존재론적 존재에 대한 명명백백한 부정적 인식이다. 그런 개념은 핵무기로 직결돼 미국 저널리스트 존 허시의 르포 ‘히로시마’가 대사에 등장한다. 태평양전쟁 때 미국의 핵 공격을 객관적으로 생생하게 그린, 이념과 이익을 초월한 인본주의를 웅변하는 것.

“전쟁이 전장 밖으로 확산됐다”라는 대사는 현대전은 전쟁터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어느 곳에서나 벌어질 수 있으며 실제 그렇다는 의미다. 트럼프 발 무역전쟁이 대표적이다. 뭉크의 모작들이 대거 등장하는 것 역시 존재론과 이어진다. 적군과 아군, 명과 암이란 이분법을 초월한 존재의미다.

▲ 영화 <마일 22> 스틸 이미지

실바는 “너와 난 직업이 달라”라고, 리는 “다르지 않아”라고 각각 말한다. 현존재의 본디적 존재자의 존재를 보는 각기 다른 해석이다. 영화는 실바를 화자로 진행되지만 결국 남는 캐릭터는 리라는 데서 매우 영특하다. 실바는 퇴락자(일상적 현존재의 비본디적 실존)고 리는 초월자(존재)다.

리는 가족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그는 가족사진을 불태움으로써 본디적 존재로 돌아간다. 그러나 실바는 어릴 때 가족을 사고사로 잃은 뒤 영재의 깊고 짙게 사유하는 훌륭한 조건을 비뚤게 발전(?)시키는 바람에 해리성 인격 장애와 자기애 인격 장애를 갖게 됐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입맛에 맞는 말만 수용하는 ‘선택적 주의’와 ‘확증 편향’의 심리 상태를 보인다. 심리적 불안 상태에서 리는 명상을 하는 반면 실바는 고무줄 팔찌를 튕기다가 결국 ‘간헐적 폭발 장애’에 의해 욕과 폭력을 행사한다. 이렇듯 정반대의 경향을 보이는 두 사람은 현대 사회의 축소판이다.

‘상상력의 부재’가 자주 거론되는 건 트로이의 목마에 대한 암시다. 이 트로이의 목마는 매우 중요한 소재이자, 영화의 테제(정립, 긍정적 주장)며, 결정적 반전이다. 워런 버핏을 워런 뷔페라고 바꾸는 위트도 간간이 보이는 등 그림은 무척 재미있는데 내용은 만만치 않다. 95분. 15살. 8월 23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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