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신과함께-인과 연>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전편에 이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김용화 감독), 독특한 스타일로 318만여 명의 관객을 모아 후속편 제작이 확실시되는 ‘마녀’(박훈정 감독), 멜로로선 꽤 많은 260만여 명을 끌어들인 ‘지금 만나러 갑니다’(이장훈 감독)는 사뭇 다른 장르지만 기억이란 공통 소재가 있다.

뒤로 가면 설경구의 자존심을 회복시켜준 ‘살인자의 기억법’(원신연 감독)부터 더 멀게는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올드보이’(박찬욱 감독)도 있다. 이렇듯 기억은 수많은 감독들이 플롯이나 최소한의 부분적 시퀀스에 단골 메뉴처럼 끼워 넣는 매우 훌륭한 스토리 완성의 결정적 레시피로서 종종 기능한다.

‘신과 함께-인과 연’은 제목에서 보듯 주인공들의 인연이 매우 중요한 소재지만 그걸 뒷받침하는 강력한 반전의 동력은 바로 기억이다. 저승 3차사, 염라, 성주 등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사연으로 얽혀있다. 그런데 해원맥과 덕춘은 죽어서 차사가 된 이후만 기억할 뿐 그전의 1000년은 기억이 없다.

그들에겐 고민이 없다. 해원맥이 흥겹고, 덕춘이 해맑은 이유다. 그러나 생전의 기억이 생생한 강림은 매우 괴롭다. 원귀인 수홍을 환생시키려는 가장 큰 이유는 사실은 자신을 위해서였다. 덕춘은 해원맥과의 악연을, 해원맥은 강림과의 악연을 각각 알게 되지만 지워진 나쁜 기억은 원래 없던 걸로 친다.

▲ 영화 <마녀> 스틸 이미지

세 차사 모두 나쁜 기억(추억)은 선택적으로 지우거나 좋은 방향으로 왜곡하면서 좋은 것만 기억하려는 므두셀라 증후군이다. 기억을 긍정적으로 프로세싱 해 나은 미래를 만들자는 생각이다. ‘마녀’의 다윤은 아예 ‘코르사코프 신드롬’(건망 증후군) 혹은 해리성 기억상실증으로 자신의 과거를 모른다.

그러나 사실 그녀는 생존을 위해 나쁜 기억을 매일 반복하며 그것을 극복해나가고자 칼을 간 순교자 증후군의 변종이다. ‘살인자의 기억법’의 병수는 한마디로 치매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이 병에 걸린 건 아마도 연쇄 살인마였던 과거를 지우려는 죄책감을 기저로 한 무의식이 의식을 지배한 듯하다.

‘올드보이’의 대수는 고교 때 우진이 친누나와 연인 관계인 것을 동네방네 떠들었고, 누나는 자살했다. 그 후 자연스레 이 사건과 자신의 행위를 잊었지만 우진은 오로지 대수의 행위가 누나를 죽인 데 대한 분노로 복수만을 위해 살아왔다. 어쩌면 대수 역시 우진처럼 므두셀라 증후군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증거는 우진의 계획에 의해 15년간 떨어졌기에 딸인 줄 모르는 미도와 연인 관계가 된 걸 나중에 알고 최면술사를 통해 기억을 지우려 몸부림치는 데서 엿보인다. 결국 기억의 오작동은 무의식적으로 이뤄진다는 외형을 지니고 있지만 사실은 전의식이 의식과 야합해 무의식을 기만한다는 얘기.

▲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스틸 이미지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발견함으로써 인간의 전체의식을 의식, 전의식, 무의식으로 정리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무의식을 리비도, 억압 등 부정적인 것으로 봤고 이 잠재의식은 꿈을 통해 심연에서 수면 위로 드러난다고 했다. 그러나 융은 더 깊은 연구로 엄청난 지혜를 가진 ‘존재’라고 바꿨다.

그리고 프로이트처럼 꿈을 통한 확인을 주장했다. 해몽학이 성립될 수 있었던 근거 제공이자 영화가 기억을 자주 사용하는 것과의 밀접한 연관성이다. 영화는 ‘꿈의 공장’이니까. ‘엑스맨’의 자비에 박사는 몸은 약골이지만 대신 남의 뇌에 들어가 생각은 물론 기억까지 읽고 조종하는 능력을 자랑한다.

뮤턴트의 조상이라는 ‘엑스맨: 아포칼립스’의 아포칼립스는 육체의 기능이 쇠해지면 다른 젊고 튼튼한 육체로 자신의 기억과 능력을 옮김으로써 7000년 이상 산다. 이렇듯 기억은 영화에 수많은 상상력과 캐릭터와 에피소드 등을 제공함으로써 관객을 무한대로 높거나 깊은 공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예지몽을 소재로 한 ‘시간이탈자’가 감독과 배우의 이름값에 비해 그다지 큰 관심을 끌지 못했고, 자각몽을 소재로 한 ‘루시드 드림’은 아예 처참하게 참패한 건 꿈(혹은 기억)이란 소재가 자주 또 광범위하게 사용되다 보니 관객에게 향하는 신선도 지수가 많이 떨어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 영화 <올드보이> 스틸 이미지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게 집단기억을 향한 호소다. ‘남영동 1985’ ‘변호인’ ‘택시운전사’ ‘1987’ ‘공작’ 등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영화들이 각광받는 배경이다. 역사와 사건 기록은 집단기억으로써 다수의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이분법적 분열을 조장하기도 한다. ‘촛불집회’와 ‘태극기 부대’가 그렇다.

그럼에도 다수는 역사를 제대로 본다. 전술한 다큐적 요소가 가미된 영화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상처와 고통으로 남은 사건들을 제대로 재조명하고, 그 교훈을 일깨워줌으로써 감동과 재미와 의의라는 선물을 준다. 관객은 쌓은 정보(기억)와 그의 확인(영화)을 통해 지혜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다.

그 발화점이 ‘변호인’이라면 기름을 공급한 주유소는 ‘내부자들’이다. ‘내부자들’은 픽션이었지만 1000만에 가까운 관객은 바로 엊그제 뉴스에서 본 듯한 기시감을 느꼈다고 입을 모았고 곧 현실로 드러났다. 그 흐름은 ‘마스터’와 ‘더 킹’으로 이어지며 현재진행형으로 질주 중이다.

누구나 자신의 기억이 옳다고 확신하지만 기록(記錄)은 언제나 승자의 관점이다. 이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어필하는 이유는 믿음의 확인이란 안심과 오인의 교정 혹은 학습의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역사가 중요한 건 올바른 기억이란 테제(정립)를 통해 보다 더 나은 미래를 열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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