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상류사회>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상류사회’(변혁 감독)는 얼핏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이 연상되지만 미스터리란 장치를 더해 구조적으로 사뭇 결이 다른 서스펜스를 제공함으로써 차별화를 꾀한다.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꾸준히 영세 상인들의 시위에 동참하던 경제학 교수 태준(박해일)은 어느 날 분신한 노인을 구해준다.

미래그룹 산하 미래미술관 부관장인 그의 아내 수연(수애)은 미래그룹 한 회장(윤제문)의 아내인 관장 화란(라미란)과 더불어 후배인 민 실장(한주영)과의 사이에서 출세욕을 불태우는 중이다. 그러던 중 제2정당 민국당에서 태준에게 총선 후보를 제의하자 부부는 환호성을 지른다.

본격적인 선거전에 들어간 태준은 영세 자영업자를 위한 자본금 300억 원 규모의 시민은행 설립 계획을 발표하고, 민국당은 자본 유치를 위해 사업가 광현(김강우)을 파트너로 붙인다. 사실 수연의 제일 중요한 업무는 미래그룹의 비자금 조성이다. 미래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하는 진짜 목적이다.

이를 통해 홍보한 미술품들을 해외 경매장에 내놓고 이를 미래그룹 자금으로 비싼 값에 사들인 뒤 작품을 담보로 국내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수법으로 한 회장의 정치 후원금 등 개인 돈을 만들어 왔던 것. 어느 날 그녀는 예술가들의 파티에서 전 연인인 미디어 아티스트 지호(이진욱)와 재회한다.

▲ 영화 <상류사회> 스틸 이미지

그녀는 미술관에 그의 작품전을 유치하려다 실패하지만 얼마 뒤 파리 한 경매장에서 그와 재회한다. 두 사람은 해외에서 예전처럼 뜨거운 사랑을 불태우고, 그 시각 태준은 비서와 불륜에 빠진다. 검찰은 수연의 외환관리법 위반과 더불어 민국당과 미래그룹의 유착관계를 의심한다.

시민은행에 100억 원을 출자하기로 했던 한 사업가가 돌연 발을 빼자 태준이 위기에 몰린다. 사업가는 이유를 묻는 태준에게 이상한 답을 남기는데. 카뮈는 시시포스의 끝없는 징벌 노역을 노동자의 희망이 안 보이는 노동력 착취에 빗대 현대인의 실존적 부조리의 신화라고 봤다.

태준은 욕동을, 수연은 욕망을 각각 추구한다. 욕동은 생물학적으로 본능과 구별되는 동시에 심리학적으로는 욕망보다 더 생물학적이다. 그래서 그는 선험적으로 선하고 정의롭다. 이에 비해 수연은 경험적으로 욕망의 노예가 됐다. 젊은 예술가 지호(열정) 대신 태준(안정)을 선택한 게 증거다.

이른 아침 마천루 옆 산책로를 달리는 수연을 부감 등 다양한 시선으로 잡아내는 건 그녀의 본능이 아닌, 욕망을 의미한다. 본능에 대해 마르크스는 식욕에, 프로이트는 성욕에, 니체는 권력욕에 각기 집중했다. 식욕마저도 참다랑어 중에서도 최고급 부위에 집착하는 수연은 욕망의 버라이어티다.

▲ 영화 <상류사회> 스틸 이미지

우리는 인사치레의 덕담으로 ‘부부는 닮는다’고 하지만 태준은 ‘공동의존’ 혹은 ‘거울 자아 이론’에 의해 수연의 저급한 물신론(페티시즘)에 물든 닮음이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분개해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앞장서던 그는 저우장의 고미술품으로 재벌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아내와 한통속이 된다.

두 사람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에서 ‘미느냐, 밀리느냐’로 대치할 때 “개같이 사느니 칼 맞고 죽겠다”와 “우리 그냥 개같이 살자”로 의견 차이를 보이는 대사가 압권이다. ‘자본의 개로 사느냐, 사람으로서 정의롭게 죽느냐’라는 명제 혹은 선택은 바로 깨어있는 지식인의 숙제가 아닐까?

국어학부터 심리학과 철학까지 욕망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욕구’로 정의한다. 라캉은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소망’으로 봤다. 모든 철학자 역시 ‘욕망은 충족을 모른다’고 했다. 민국당 간부는 “서민은 항상 억울하고, 부족하다고 한다”고 말했다. 과연 그게 국민 때문일까, 정치인이나 재벌 탓일까?

정치권과 결탁한 장사꾼 주제에 예술가를 자처하는 한 회장의 “사람이든 말이든 씨가 좋아야 한다”는 대사나, 성관계 때 콜라겐 액 같은 점도 진한 액체(정액을 상징)를 뒤집어쓰는 행동은 자본주의가 육성한 재벌이 얼마나 천박한지 보여주는 메타포다. 더러운 자본과 그걸 무기로 한 어긋난 성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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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란의 발을 주무르라는 명령에 지체 없이 복종하는 무릎 꿇은 변호사의 모습은 씁쓸한 이 사회의 단면이다. 변호사는 수연에게 “재벌들은 재산 다툼을 해도 재산이 담 밖으로 흐르게 하진 않는다”는 명언을 남긴다. “정치는 패션이 아니라 명분”이란 수연의 대사는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프로파간다보다 그로 인한 포퓰리즘의 결과가 중요하다는 것. “몰래카메라에 찍힌 내 모습을 봐. 사랑이 얼마나 추접한지”라는 대사는 참된 사랑의 ‘현상’을 묻는다. 미스터리와 음모가 양파처럼 벗겨질수록 더해지는 긴장과 스릴이 웬만한 정통 서스펜스물 못지않은 데다 유머도 만만치 않다.

태준의 불륜에 개의치 않는 수연에 대해 태준이 “너, 힐러리 같다”고 말하자 수연은 “당신도 클린턴 되고 나서 바람피워”라고 받아치는 것, 태준의 비서와의 정사 다음날 수연과 아침 운동을 하던 중 다리가 풀리는 모습, “가슴만 키우지 말고 지식을 키워” “안다고 다 친한 사람이니?”라는 대사 등이다.

‘자본주의+민주주의’가 과연 전체주의, 자유방임주의, 합리주의의 좋은 점과 나쁜 점 중 어떤 걸 취하고 있는지 묻는 인트로와 마지막 빨간 커튼은 은유적 수미상관이다. 과연 서민이 안착할 곳은 얼터너티브 스페이스(비영리 전시 공간)밖에 없는 것일까? 120분. 18살 이상. 8월 29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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