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더 보이스>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라이언 레이놀즈가 ‘데드풀’로 슈퍼스타가 되기 직전 찍은 ‘더 보이스’(마르얀 샤트라피 감독)는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걸작 ‘성스러운 피’에 코미디를 더한 굉장히 독특한 상업적 컬트 무비다. 슬래셔에 판타지를 버무린 이 코믹 호러는 장르 파괴, 혹은 ‘짬뽕’이라는 점에서 다분히 혁명적이다.

미국 작은 도시 밀턴. 욕조 생산 공장 배송팀 신참인 제리(라이언 레이놀즈)는 매우 성실하고 착한 청년으로 사내 평판이 좋다. 상사는 곧 있을 전 직원 단합대회를 준비할 팀원으로 제리를 발탁하는데 운 좋게도 그가 짝사랑하는 경리팀의 피오나(젬마 아터튼)도 팀원으로 합류한다.

파티 때문에 피오나와 가까워졌다고 착각한 제리는 주말에 중식당에서 데이트하자는 제안을 하고 피오나는 건성으로 수락한다. 그러나 그날 피오나는 리사(안나 켄드릭), 앨리슨 등 경리팀 동료들과 가라오케에서 논다. 바람맞은 제리는 차를 몰고 회사로 오는데 마침 차가 고장 난 피오나를 만난다.

제리는 배가 고프다는 피오나가 지정한 식당에 가기 위해 운전을 하는데 외곽 도로에서 그만 커다란 사슴을 친다. 차창을 뚫고 운전석에 들어온 사슴의 머리는 괴롭다며 빨리 처리해달라고 말하고 제리는 단검으로 사슴의 숨통을 끊는다. 이 장면을 본 피오나는 경악해 차에서 내려 전력으로 도망간다.

▲ 영화 <더 보이스> 스틸 이미지

놀란 제리는 칼을 든 채 피오나의 뒤를 쫓으며 사슴이 그렇게 원했다고 해명을 하다가 그만 쓰러진 피오나 위로 넘어지면서 칼로 찌르는 상황이 된다. 마음이 크게 상한 제리는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며 그녀의 숨을 거둔다. 다음날 그녀의 시신을 집으로 가져온 뒤 아무렇지도 않게 출근한다.

그의 집에는 개 보스코와 고양이 미스터 위스커스가 있는데 그들은 말을 한다. 말수가 적은 보스코는 선한 행동을 요구하지만 잔소리꾼인 미스터 위스커스는 악행을 조장한다. 출근한 제리는 리사의 데이트 신청에 응하고 그날 밤 그는 리사의 집에서 오랜만에 황홀한 시간을 보낸다.

며칠 뒤 제리가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여니 리사가 케이크를 들고 서있다. 케이크를 받고 들어가려니 자동문이 잠긴 상황. 제리가 괜찮다며 리사에게 집에 가라 한 뒤 지붕을 통해 들어가는 동안 리사는 그를 위한 마음에 머리핀으로 자물쇠를 풀고 집에 들어간 뒤 엄청난 광경을 목격하는데.

컬트 영화는 대부분 색감이 칙칙하고 암울하지만 이 영화는 동화적이다. 밀턴 회사의 작업복부터 테이프와 트랙터까지 온통 분홍색이고 빨간색 노란색 등 원색이 대거 등장한다. 샘 레이미의 ‘이블 데드’가 회를 거듭할수록 코미디 요소가 강해지는 것을 넘어 이 영화는 대놓고 컬트 코미디를 지향한다.

▲ 영화 <더 보이스> 스틸 이미지

시리얼킬러가 생선 초밥이 무섭다고 하고, 대머리한테 “너 헤어스타일 죽인다”라고 겉치레 인사를 하며, 사람을 죽인 뒤 주기도문을 외우는 식이다. 영국 출신 피오나의 쏟아지는 비를 향한 “영국에 온 것 같아”라는 푸념이나 “영국인은 미국인을 천민으로 봐”라는 대사는 의미심장한 코미디다.

초반에 회사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콩가를 추는 건 연쇄 살인을 의미한다. 보스코와 미스터 위스커스는 제리의 내면에서 갈등하는 선과 악이다. 제리는 집에 들어오면 습관처럼 “누가 착한 애지?”라고 개와 고양이에게 묻는다. 착하게 살고 싶지만 선천적인 내면의 악을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감독은 개를 선호하고 고양이에 비호감인 듯하다. 리사의 고양이가 한쪽은 검은색이고 다른 면은 흰색과 검은색이 혼합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리사는 “고양이가 주인이고 나는 집사”라고 말한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무릎을 탁 칠 만한 대사다. 제리는 피오나에게 4대 천사를 묻는다.

라파엘 미카엘 가브리엘, 그리고 마지막은 누구냐고. 정답은 우리엘이지만 제리는 루시퍼라고 말한다. 자신이 타락천사라고 착각하는 것. “신이 나를 괴롭힌다”며 “세상에 혼자인 기분”이라는 그는 현대인이 가진 각종 정신병의 종합선물세트다. 제정신이 든 뒤의 집안 풍경은 강박관념 장애를 말한다.

▲ 영화 <더 보이스> 스틸 이미지

그는 TV에서 동물의 교미 모음 프로그램을 보다가 동물의 사냥 모음 프로그램으로 채널을 바꾼다. 삶과 죽음, 생산과 파괴 등 사람들의 삶에 깊이 개입한 각종 극단 현상의 은유다. “죽일 때 살아있는 걸 느껴”라는 대사는 매우 살벌하지만 왠지 공감이 들기에 더욱 소름 끼치는 현실의 반영이다.

에이미 스튜어트의 ‘Knock on wood’와 보니 엠의 ‘Happy song’이 매우 중요한 곡으로 등장한다. 전자는 불행을 방지하는 주문을 말하고, 후자는 일상과 형식에서 벗어나 아무 생각 없이 즐겁게 놀자는 내용이다. 이 영화의 정체성과 잘 어울리는 두 곡이다. 끝부분의 재미를 완성하기도 한다.

제리는 눈물이 잦고, 수시로 자살 충동을 느끼며, 환청에 시달린다. ‘성스러운 피’의 주인공이 엄마에 대한 강박관념과 정신착란으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것처럼 제리 역시 죽은(?) 엄마에 대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의 주변에 자주 나비의 환영이 보이는 건 ‘장자’의 ‘제물론’의 호접몽이다.

‘나와 사물은 결국 하나’라는 호접몽의 철학은 여기선 선과 악, 행복과 불행 등 극과 극의 현상이나 상황이 결국 생각하고 결정하기 나름이라는 뜻으로 확장된다. 리사는 제리를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 같다”라고 말한다. 지구 반대편 사람이라고 다를까? 103분. 청소년 불가. 8월 29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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