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 금선사 넘어 양주(楊州) 옛길 장흥에서 가을 바람을 만나다 [최철호 칼럼]

최철호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l승인2018.08.26l수정2018.09.20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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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각산 금선사에서 바라 본 가을풍광_백악산과 인왕산 기차바위

[미디어파인=최철호의 한양도성 옛길] 인왕산 기차바위에서 하늘을 바라본다. 가을은 땅에서 귀뚜라미 등을 타고 내려온다. 하늘에서 뭉게구름 속에 가을의 햇빛을 비추며 다가온다. 입추 지나 말복 가니 시원한 바람이 분다. 말복 지나 처서 오니 여름이 문득 멈춘다. 무더운 여름 흠뻑 내린 비에 바람이 세차게 분다. 절기는 오묘하다. 4계절 24절기 중 14번째 처서(處暑)가 지나간다.

인왕산 기차바위에 앉아 남쪽을 본다. 600여 년 역사를 담은 종묘, 문화를 간직한 사단과 직단의 사직단 잔디밭이 아침비에 고요하다. 경복궁 옆 경회루도 가을을 준비한다. 저 멀리 우뚝 솟은 목멱산은 손에 잡힐 듯 하다. 맑은 가을 하늘이 딱 한뼘이다.

서울은 산이다. 산과 산이 이어져 있다. 인왕산과 백악산은 울창한 숲이다. 한 몸이 된 듯 길게 펼쳐져 있다. 동쪽으로 백악산은 삼각산과 또다시 만난다. 병풍처럼 펼쳐진 서울의 진산이다. 600여 년 전 태조 이성계와 왕사 무학대사가 오르내렸듯, 삼봉 정도전의 역사를 간직한 채 삼각산이 우뚝 서 있다.

▲ 병풍처럼 넓게 펼쳐진 서울의 상징_삼각산의 가을 풍경

삼각산(三角山)은 한양의 으뜸이요,서울의 상징이다

서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삼각산은 봉우리와 봉우리가 뿔처럼 솟아 있다. 가장 높은 백운대는 836.5m로 사방이 다 보인다. 인천 영종도 달리는 길에서도 손에 잡힐 듯 하다. 인수봉은 바위가 하늘에 솟구쳐 있다. 관악산에서도 맨 눈으로 보인다. 한양 도읍지를 정할 때 국가의 희망을 꿈꾼 봉우리가 국망봉이다. 만가지 승경지가 있어 만경대(萬景臺)다. 계절에 따라, 절기에 따라 경관이 아름답게 변한다. 산봉우리와 능선이,절벽과 계곡이 빼어나다. 가을과 겨울 사이는 별천지다. 만수봉이라고도 하였다. 하늘과 가장 가까워 기우제와 기설제도 지냈던 곳이다. 백운대-인수봉-만경대 세 개의 큰 뿔처럼 생긴 삼각산은 한양의 으뜸이다. 서울의 상징이다. 한양도성 성곽길을 알리는 지표이다. 600여 년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지금껏 서울을 지키고, 굴곡 많은 역사와 함께 버텨온 산이다. 오늘도 묵묵히 우뚝 서 있다. 삼각산을 둘레로 도봉산과 수락산,불암산이 펼쳐진다. 그 아래 용마산이 보이고 한강이 유유히 흐른다.

▲ 세 개의 뿔처럼 병풍처럼 펼쳐진 서울의 진산_삼각산

서울은 산이다. 인왕산 기차바위 북쪽 삼각산 배꼽에 금선사가 있다. 금선사에서 바라보는 서울은 백악산과 인왕산 너머 목멱산까지 고요하다. 삼각산은 서울과 경기의 경계이다. 삼각산은 북한산성이 만들어지면서 북한산으로 불리어졌다. 북한산은 서울의 북쪽으로 고양과 양주,의정부와 접하고 있는 길고 드넓고 깊은 산이다. 다양한 기암괴석과 수려한 봉우리들이 치솟아 있어 웅장한 산세와 지세를 자랑한다. 계곡이 깊고 물이 맑고 나무가 울창하다. 송추계곡,일영계곡,안골계곡,도봉계곡,평창계곡,삼천사계곡,진관사계곡,사기막계곡등 계곡물이 흘러 임진강과 한강으로 모인다.

▲ 삼각산 금선사에서 바라 본 가을 하늘_인왕산과 안산

양주(楊州)의 역사와 유래를 찾아서...

양주는 역사가 깊은 곳이다. 서울과 인접한 도시다. 예로부터 서울을 둘러싼 큰 고을이었다. 한강 연안에 위치하여 지리적으로 중요한 접경 지역이다.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한산,남경,양주,한양으로 큰 도시가 형성되었다. 고려시대 한양부로 땅이 넓고 물질이 풍부하여 수운의 길목인 번창한 도시이었다.

“나귀를 타니 야취가 많고,천천히 저녁 빛 속에 걷는다. 역로에는 모래와 먼지가 어둡고, 고을 성에는 수목이 울창하다. 산은 화산(華山)과 연이어져 많고,물은 한수(漢水)에 들어가서 길다. 이곳이 뽕나무 뿌리에 알맞아서 칠경 초당(草堂) 짓기로 기약한다.“조선시대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권우(權遇)의 풍양현(豊壤縣)편에 나오는 양주에 관한 글이다.

▲ 처서를 알리는 가을 빗줄기와 시원한 계곡물

조선시대 양주는 광주(廣州) 만큼 너른 지역이었다.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중요한 고을이었다. 한강 아래 광주가 있었다면, 한강 이북에는 양주가 있었다. 한강 아래 광주에 남한산(南漢山)이 있었다면, 한강 이북에는 북한산(北漢山)이 있었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은 행궁터로 천혜의 요새이었다.

남양주,구리,동두천,연천 전곡,고양 덕양 일부,은평구,도봉구,강북구,노원구,중랑구 일대가 양주(楊州) 땅이었다. 양주는 건원릉,광릉,현릉,온릉등 한양도성 도성밖 100리안에 주요한 능(陵)이 있었다. 흥인문과 혜화문 지나 지방으로 가는 모든 길은 양주를 지났다.

길 위에 길이 있고,길 속에 길이 있다. 양주 장흥은 창의문 지나 삼각산 넘어 회암사를 향하는 행차길 이었다. 조선시대 최대 왕실사찰이 양주에 있었다. 숭유억불 정책을 세웠지만 왕실은 숭유호불 하였다. 태조 이성계와 왕사 무학대사가 오랜동안 머물렀다. 효령대군과 정희왕후,문정왕후가 장흥(長興)을 지나 양주 회암사에 흔적이 유물로 전해진다. 고려중엽 이후 가장 큰 사찰에 지공선사,나옹선사,무학대사,보우선사가 머물던 역사와 문화가 깊은 곳이다. 현재 양주는 주변 도시에 분할되어 크지 않는 도시가 되었다.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있는 회암사는 회암사지박물관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 도원수 권율장군 묘 옆 신도비

권율(權慄)장군 묘에서 덕양산을 바라보다

회암사를 가기 전 산자락 장흥 석현리에 권율장군 묘가 있다, 임진왜란 3대첩 중 행주대첩을 이끈 충장공 도원수 권율장군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한양도성 인왕산 행촌동에서 태어나 이치(梨峙)전투와 독산성(禿山城)전투 승리를 이끈다. 이후 창릉천과 한강의 목구멍인 행주의 행주(幸州)산성에서 큰 승리 후 정유재란까지 전장을 누빈 후 생을 마감한다.

양주 천보산 아래 회암사가 있다. 천보산을 가기 전 장흥 석현리에 권율장군 형과 아버지가 잠들어 있다. 개명산 산자락 산과 산 사이 알이 찬 밤나무 밤송이가 이 가을의 주인이다. 한양도성 옛길을 찾아 역사속 풍광을 만난다. 도성밖 내가 가는 곳, 함께 찾고 걷는 길, 역사와 문화가 숨쉬는 박물관이 된다.

▲ 처서 지나 가을을 알리는 장흥 밤나무_밤송이

버드나무가 많은 곳,
밤나무가 울창한 곳,
역사와 문화가 가득한 박물관,

지방에서도
해외에서도
우리동네 유래를 찾아 밀려온다.

여기는 힘찬 기운이 오랫동안 전해지는 곳,
양주(楊州)이다.

▲ 최철호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저서)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최철호 소장]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지리산관광아카데미 지도교수
남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외래교수

저서 :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최철호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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