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살아남은 아이>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독립영화 ‘살아남은 아이’(신동석 감독)는 주변에 흔한 평범한 사람들의 각자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다양한 심리에 집중한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단장의 고통을 소재로 출발해 양심과 이기심, 정의 구현과 치졸한 안정에 대해 묻는다. 여기에 살짝 미스터리 구조를 형성함으로써 재미를 선사한다.

소도시에서 인테리어 가게를 하며 사는 중년 부부 성철(최무성)과 미숙(김여진)은 1년 전 고1이던 아들 은찬을 잃었다. 친구들과 물놀이를 간 은찬은 친구 기현(성유빈)을 구한 뒤 자신은 익사한 것. 1년 후 성철은 건물 옥상에서 우연히 거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지나가는 기현을 본 뒤 그를 찾아간다.

왠지 모를 그늘이 보이는 기현은 치킨집에서 배달 ‘알바’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일찍 가출했고, 아버지는 새 여자를 만난 뒤 ‘너 혼자 알아서 살라’고 선언했기에 18살 어린 나이에 홀로 고독하게 세상과 싸우고 있었던 것. 성철은 자신의 조수로 일하면서 자립의 발판을 마련하라며 고용한다.

성철은 기현에게 기능사 국가자격증을 따야 한다며 교습서를 사준다. 어느 날 기현은 성철의 명령으로 가게에 들러 그를 기다린다. 미숙은 처음 본 기현에게서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지만 기현은 서둘러 가게 문을 나선다. 미숙은 그가 놓고 간 책의 표지에서 이름을 발견하곤 소스라치게 놀란다.

▲ 영화 <살아남은 아이> 스틸 이미지

그날 저녁 미숙은 성철에게 크게 화를 낸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안고 사는 부모로서 자식의 죽음의 원인이 된 아이를 어떻게 거둬줄 수 있냐는 분노의 폭발이었다. 두 사람은 둘째를 갖기로 합의하고 병원을 찾아 인공수정을 하지만 어느 날 미숙은 하혈을 하고 병원에 입원한다.

미숙은 잠결에 죽을 들고 병실을 찾은 기현을 발견하곤 부른다. 그렇게 기현에게 마음을 연 것이다. 기현은 기능사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셋은 피크닉을 가는 등 한 가족처럼 지낸다. 그런 어느 날 기현과 거리를 걷던 미숙은 은찬의 ‘절친’인 준영과 그의 엄마랑 마주친다. 그런데 준영의 태도가 수상하다.

다음날 그렇게 성실하던 기현이 연락을 끊은 채 결근한다. 기현이 사는 곳을 찾아간 미숙은 사뭇 달라진 기현을 보고 무척 당황한다. 다시 출근하라고 살갑게 달래자 뭔가 망설이던 기현이 믿을 수 없는 은찬의 죽음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미숙은 혼란스러움과 동시에 충격과 고통에 정신을 못 차리는데.

출발은 학원폭력이다. 학교는 ‘장삿속’에 교내의 부조리를 쉬쉬하며 감추려 들고, 그러면 그럴수록 비뚤어진 폭력 학생들의 폭행은 횟수와 강도가 심해진다. 내성적인 기현이 그런 불량학생들과 어울리게 된 이유가 부모로부터 버림받았기 때문이란 설정은 학생들의 폭력성이 어른들 때문이란 얘기다.

▲ 영화 <살아남은 아이> 스틸 이미지

성철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소를 하지만 평소 친했던 지인들은 ‘학교랑 동네랑 시끄럽게 왜 그런 짓을 하느냐’고 핀잔을 주며 등을 돌린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을 보호하려 한다. 하지만 그게 부정이고, 부조리며, 부도덕이라면 용납될 수 있을까? 부성애나 모성애라고 전부 정의보다 정의로울까?

성철은 학교의 권유로 국가에 의사자 신청을 하고 이게 받아들여져 보상금까지 받는다. 그러자 계모임에 나온 아저씨들은 “잘됐다”고 축하하고, 아주머니들은 “얼마를 받았냐”고 묻는다. 과연 그게 잘된 일일까? 어린 자식이 사고사하고 받은 돈이 크다고 부모가 기뻐할 일인가?

미숙과 성철은 결핍의 환경과 상실의 공간을 사는 이 시대 서민들을 대표한다. 미숙이 “당신하고 은찬이 얘기하면 딴사람하고 얘기하는 것 같아”라고 울부짖고, 이에 성철이 “이제부터라도 잘할게”라고 사과하는 시퀀스는 모든 부부, 모든 부모의 현재적 현상이다. 종교가 말하는 존재와 탄생의 원죄.

기현은 부부에게 번갈아 죄송하다고 사과한다. 성철은 “알았어, 어깨 펴고”라고 위로한다. 세 주인공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슬픔을 위로받고 고통을 치유받아야 할 피해자다. 지친 미숙이 “이제 그만하자”라고 하자 성철은 “뭘 그만해, 그만둘 게 있어야지. 한 게 하나도 없는데”라고 오열한다.

▲ 영화 <살아남은 아이> 스틸 이미지

그러자 미숙은 슬며시 “우리 은찬이 따라갈까?”라고 체념한다. 자식을 잃은 부모가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살지 않는 것이란 이 메타포는 정교한 메스처럼 부모들에게 파고들 것이다. 전반을 성철이 이끈다면 후반은 미숙이 리드한다. 부성과 모성은 본질적으로 같지만 현존하는 방식은 좀 다르다는.

기현의 고백 이후 또 하나의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그건 배경음악이다. 미숙과 성철의 혼돈, 분노, 자책감, 복수심, 무기력감 등 복잡다단한 심경의 변화와 심리의 파도를 불협화음 같은 사운드의 향연이 대변한다. 이런 심리묘사는 미숙이 미친 듯 기현의 집을 다시 찾은 신에서의 컵라면 미장센도 한몫한다.

한 개는 똑바로 서있고, 다른 한 개는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있다. 테제와 안티테제로서 죄책감과 공포 사이의 기현과 분노와 갈등 사이의 미숙의 흔들리는 심리를 표현한 것. 미숙이 감정의 진폭이 심하다면 성철은 비교적 잔잔한 편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후반부엔 성철의 캐릭터가 또렷해진다.

기현의 주머니에서 줄줄이 떨어지는 돌들은 미움과 원한을 상징한다. 그에게 달라붙은, 혹은 그가 스스로 마음속에 욱여넣은 부정적 시선과 사회적 부조리, 그리고 편견 등이 해제되는 것이다. ‘눈-눈, 이-이’의 함무라비 법전과 보원이덕의 공자 중 진테제는? 123분. 12살 이상. 8월 30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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