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상류사회>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최근 개봉된 한국 영화들은 비교적 흥행 성적이 좋은 편이다. 그래서 ‘상류사회’(변혁 감독)의 저조한 성적은 더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인터뷰’ ‘주홍글씨’ 등의 이력을 가진 감독에 박해일과 수애의 조합은 ‘폭발’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폭망’까지 가진 않을 외형이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이로 인해 마음 아플 사람은 투자자, 제작자, 감독 등 많겠지만 수애의 상처가 만만치 않을 듯하다. 최근 영화에서 여자들의 역할이 더욱 줄어든다는 불만이 많은 가운데 이 영화는 박해일로 시작해 중간 이후 수애가 사실상 리드한다는 점, 단아한 이미지의 그녀가 큰마음 먹고 노출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에 반해 ‘수혜’를 볼 확률이 높은 여배우는 미술관장 자리를 놓고 오수연(수애) 부관장과 치열한 심리전을 펼치는 민현아 실장 역을 열연한 한주영이다. 부진한 흥행 성적 때문에 어느 정도 대중에게 노출될지는 미지수지만 10여 군데 매체의 인터뷰를 소화하며 온라인을 ‘도배 중’이기 때문이다.

재벌 회장 한용석(윤제문)과 질펀한 정사를 하는 역할의 일본 AV 여배우 하마사키 마오나 국회의원 후보 장태준(박해일)의 비서이자 불륜 관계가 되는 박은지 역의 김규선도 눈에 띄긴 한다. 그런데 한주영은 ‘비주얼’과 더불어 수애와의 팽팽한 기싸움으로 연기력의 시험대에 올라 조금 더 돋보이는 것.

▲ 영화 <상류사회> 스틸 이미지

현재의 직책으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한 회장 부부와의 친분으로 보나 현아는 수연에게 상대가 안 된다. 그런데 현아는 우연한 기회에 수연의 외도 장면이 담긴 필름을 입수한 뒤 그녀를 압박하며 우위를 빼앗는다. 이 시퀀스가 한주영을 결정적으로 돋보이게 만들어줬다.

자신의 아킬레스건이 잡혔다는 걸 알게 된 수연이 현아를 찾아온다. 수연은 무릎을 꿇고 뭐든지 할 테니 필름만 넘겨달라고 애걸한다. 완벽한 항복을 받아낸 현아는 거만한 투로 “재벌들만 겁 없이 사는 거야”라고 충고한다. 전에 수연이 “재벌만 겁 없이 사는 줄 알았어?”라고 자만한 걸 조롱하는 것.

그녀는 2009년 ‘그녀에게’로 데뷔한 뒤 ‘우리 만난 적 있나요’(2010), ‘마담뺑덕’(2014),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2014), ‘치외법권’(2015) 등에서 조, 단역을 맡았다. 성공이 안 보였기에 다른 길을 갈까 갈등도 했지만 인내의 열매를 믿고 지금까지 묵묵히 걸어왔다.

2005년 뮤직비디오 출연을 계기로 주로 CF 모델을 했던 그녀는 ‘마담뺑덕’이 진로 확정의 계기라면 ‘상류사회’는 터닝 포인트라고 한다. 배우의 길에 대한 확신이 오리무중일 때 ‘마담뺑덕’을 만나 결정을 확정했다면 ‘상류사회’는 ‘배우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그걸 깨닫게 해줬다는 의미다.

▲ 영화 <상류사회> 스틸 이미지

“지금까지 공교롭게도 영화에만 출연하면서 영화와 영화배우는 무엇인가에 대해 나름대로 진지하게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나이도 먹었고 이번에 훌륭한 선배님들을 만나 일취월장하면서 영화와 배우는 관객을 속이는 존재자이자 관객과의 감정의 공유자로서 완벽할 때 성공한다고 깨달았죠.

”그녀의 욕망은 ‘여배우’가 아닌 ‘배우’다. ‘상류사회’의 현아와 수연의 마지막 시퀀스 때 그녀는 자연스레 속옷 차림으로 마치 경멸하듯 무릎 꿇은 수애를 내려다본다. 지금의 작은 화제는 아직 ‘신인 여배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스타가 된다면 이 노출 신은 다시금 조명 받을 것이다.

“만약 제가 ‘배우’가 된다면 그땐 이 장면이 우아미냐, 비장미냐의 평가를 받겠죠. 배우 혹은 스타가 되기 위해, 또는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 노출도 예술의 하나라고 자기암시를 줬다는 비장미일지, 혹은 영화와 균형을 맞추고 캐릭터와 조화를 이룸으로써 통일성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장인정신일지의 판단이죠.”
 
서른다섯.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 신인배우로서 ‘배우’를 향해 매진하겠다는 ‘과감’ 혹은 ‘무모’한 도전. 그 저변엔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 손성민 회장이란 매니저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전남 완도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연기를 배운 적도 없이 영화에 출연하던 중 2년 전 한 영화제에서 손 회장을 만났다.

▲ 영화 <상류사회> 스틸 이미지

‘수상한’ 기획사를 전전하다가 공인된 기획사에 안착한 그녀는 지상파 드라마에 주연으로 캐스팅됐음에도 극복하지 못한 울렁증 탓에 리딩 때 탈락한 아픔을 겪기도 했다. 절망해 ‘안 되니 귀향하겠다’고 하자 손 회장으로부터 “한 것도 없는데 안 된다는 게 뭔 말이냐”는 야단을 맞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흥행 성적을 떠나 감독님, 선배님들 등의 ‘팀워크’는 정말 좋아요. 매주말 전국을 돌며 무대 인사를 하는데 객석의 밀도를 떠나 우린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관객과 만나면서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주 많은 관객이 봐주신다면 더 좋겠지만 배우에겐 흥행 수치를 떠나 관객 한 분, 한 분이 소중하니까요”

“배우로서 연기력의 중요성은 ‘1000개의 혀, 1만 개의 입술’로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겠지만 저는 인성과 더불어 철학도 주요하다고 생각해요”라는 그녀는 “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만큼 우아미, 숭고미, 비장미, 골계미 중 하나도 부족함이 없는 표현력과 소화력이 목표”라고 나름의 연기 철학을 웅변한다.

표현의 미학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송강호 같은 풍자와 해학의 골계미라고. 설화수 아시아 지역 CF 모델이기 때문에 중국에선 꽤 유명하다. 3년째 계약을 연장 중인 건 그녀 덕에 매출이 날로 늘고 있다는 의미다. 171cm, 48kg의 몸매 덕에 지명도에 비해 꽤 쏠쏠하게 CF계에서 활약 중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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