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명당>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단군신화에서 단군의 아버지 환웅이 풍백(바람) 우사(비) 운사(구름) 등의 신하들을 데리고 내려왔다는 건 애초부터 우리는 농경민족이었다는 걸 상징한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를 아울러 지상학이 발달, 만연된 이유다. 영화 ‘명당’(박희곤 감독)은 그 풍수지리를 소재로 한 거듭된 반전극이다.

조선 말기. 효명세자가 세도가 영의정 김좌근(백윤식)의 계략에 의해 요절하자 순조는 중신들에게 아들의 명당 묏자리를 묻는다. 좌근을 중심으로 뭉친 중신들과 지관들은 입을 모아 한 곳을 지목한다. 나이 어린 지관 박재상(조승우)만이 흉당이라고 반대하지만 좌근의 세력에 의해 묵살당한다. 

벗 구용식(유재명)과 술을 마시고 동산에 올랐던 재상은 좌근의 아들 병기(김성균)의 부하들에게 처자식이 살해되고 집이 불타는 걸 목도한 뒤 복수의 칼날을 간다. 13년 후. 재상과 용식은 저잣거리를 떠돌며 명당을 봐주는 일로 먹고살며 좌근이 감춘 그의 선친 조순의 묘지를 은밀히 조사한다.

좌근은 기가 막힌 명당에 조순의 묘를 마련함으로써 헌종의 권위마저 무시할 정도로 세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 재상은 좌근의 단골 기방 월영각에 드나들며 기생들에게 돈을 뿌리면서 조순의 묘의 위치를 알아내는 자에게 큰돈을 주겠다고 부추기지만 대방 초선(문채원)에게 저지당한다.

▲ 영화 <명당> 스틸 이미지

어느 날 재상 앞에 몰락한 왕족 흥선(지성)이 나타난다. ‘상가의 개’로 불릴 만큼 병기에게 무시당하는 인물이지만 사실 무너진 왕권과 왕족의 권위를 되찾고자 암약 중이다. 그 역시 좌근에게 가족의 복수를 하려는 재상과 같은 목적으로 조순이 묻힌 곳을 찾고 있었던 것.

좌근은 재상에 못지않은 지관 정 씨로부터 2대에 걸쳐 왕을 배출할 수 있는 명당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밀당’ 중인데 능구렁이 같든 정 씨에게서 그 장소를 알아내는 게 쉽지 않다. 재상은 조순의 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직접 그 집에 침투해 묏자리 지도를 훔치겠다고 나서는데.

영화는 음양오행설에 근거한 풍수지리 중 망자의 영혼이 산 자의 재물과 출세 등에 영향을 끼친다는 음택풍수라는 풍수지리의 한 분야를 소재로 한다. 물론 집터 등의 양택풍수도 다루긴 하지만 주로 코미디에 적용된다. 젊은이들에게 접근하기 쉽지 않은 이 토테미즘 코드를 반전으로 승화시킨다.

주인공 대부분이 반전의 시퀀스를 지니고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놀라움이 더 커질 것이다. 그 목표지점은 역사와 대세에 역행하려는 권력욕, 대의명분, 복수심 등 다양한 욕망 혹은 감정이다. ‘상류사회’가 다수의 공감을 못 일군 이유 중 하나가 시점 때문이라면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영리하다.

▲ 영화 <명당> 스틸 이미지

재벌의 추악한 물욕과 성욕은 이제 식상하다면 역사는 과거지만 피부에 쉽게 와닿지 않아 판타지적 효과가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듯하지만 직접 접해보지 못했던 170년 전 즈음의 역사에 픽션이 더해지니 드라마틱한 효과가 증대하는 것이다. 특히 부정적 이미지로 알려진 흥선의 캐릭터가 볼 만하다.

좌근의 생일잔치에 취한 채 불쑥 나타나 술을 동냥하던 그는 병기의 비아냥거림에 거리낌 없이 그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 안주를 얻어먹는가 하면 기녀가 던진 안주 역시 개처럼 받아먹는다. 하지만 내면의 그는 다르다. 나약한 조카 헌종을 다그쳐 왕가의 권위와 권력을 되찾고자 안간힘을 쓰는 것.

영화의 시작과 끝은 재상과 용식이다. 용식은 감정에 휘말려 자주 판단 착오를 일으키는 재상에게 매우 현실적인 결정을 유도하는 가운데 시종일관 팽팽한 주인공들 간의 신경전 속에서 긴장완화의 유머 코드를 담당한다. 요즘 신 스틸러 중 가장 ‘핫’한 인물로 떠오른 유재명의 캐스팅은 절묘했다.

자주 등장하는 ‘2명의 왕을 배출할 명당’이란 대사가 매우 중요하다. 어떤 쪽은 그 정도라도 만족할 기세고, 또 다른 쪽은 ‘만대에 걸친 왕’을 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를 통해 결과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영화는 영민하게 일제강점기까지 스토리를 끌고 가 매조진다.

▲ 영화 <명당> 스틸 이미지

‘관상’과 ‘궁합’을 잇는 역학 시리즈인 이 영화는 풍수지리를 비교적 현대적 시각에서 풀어낸다는 점에서 사극의 한계를 극복한다. 등장인물들의 목표가 현시점에서 봤을 때 ‘합목적성’을 지녔는지를 사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의 욕망이 구시대적 발상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조직이나 단체의 수장이 되고자 하는 방법은 다를망정 다수의 욕망의 기저는 최소한 자본주의에 근거할 땐 추악하다. 종점이 돈이기 때문이다. 주변의 환경과 땅속에 흐르는 기운이 근미래는 물론 일가의 흥망성쇠를 가름한다는 풍수지리는 유교권 문화지만 서양철학의 생기론을 연상케 한다.

고대부터 근대까지 과학의 혜택이 그리 크지 않던 때엔 종교나 민간신앙에 크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에서 절보다 풍수지리가 우위에 서는 건 종교나 역학에 대한 왜곡이라기보다는 그만큼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천박하며 욕망에 눈이 멀면 두 걸음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는 의미다.

5명의 베테랑 남자배우들의 열연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래서 문채원은 살짝 튀는 느낌이다. 서사의 확장은 다소 피로할 수도 있지만 거듭되는 반전이 이를 충분히 해소시킨다. 결국 이 영화는 1000만 명 가까운 관객을 모은 ‘관상’의 땅으로의 버전 업이다. 126분. 12살 이상. 9월 19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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