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kbs 뉴스 화면 캡처

[미디어파인=이성우의 세계와 우리] 한반도의 비핵화과정에 대해 학자들은 지난 1년간 2번의 중요한 게임의 전환을 이론적으로 설명해야 했다. 북한이 IAEA의 핵사찰을 거부한 1992년 말에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가능성에 대해 반신반의했다. 초기 국제정치 이론들의 상당수가 기술적 또는 국제적 제약으로 “북한은 핵을 개발하지 못할 것이다”는 결론을 설명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하게 된 것은 2006년 1차 핵실험의 시작으로, 비핵화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후 6차 핵실험까지 북한이 핵개발 기술을 확보하면서 그 위협의 실체적 가능성이 드러나는 과정에, 북한 핵문제에 대한 한국의 해법은 “죄수의 딜레마”에 기초한 것이었다. 남북한이 서로 불신하는 국제정치의 무정부 상황에서 북한을 설득하여 협력의 선택으로 유도하면 한반도의 비핵화를 통한 평화와 남북한의 공동의 번영이 가능하다는 이론이었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의 문제는 보상구조(payoff)에서 남한의 오해 또는 의도된 무지가 있었다는 점이다. 북한은 남한이 원하는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체제의 안전을 요구했지만, 남한은 우리가 제공하는 교류협력의 경제적 지원을 핵 포기의 대가로 생각했다. 이러한 보상구조에 대한 오해는 진보 대통령과 보수 대통령 시기에 공통적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진보 정부에서 웃는 얼굴이었다면 보수 정부에서는 화난 얼굴로 요구했다는 정도일 것이다. 이러한 오해 또는 의도된 무지에 대한 북한의 생각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남한의 지원을 받는다면 언젠가는 북한이 흡수되는 남한 주도의 통일의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는 판단에 이르렀다.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는 흡수통일을 피하기 위한 북한의 선택은 상투적인 정치구호 같지만 “핵 무력의 완성”이었다. 2017년 6차 핵실험을 통한 수소폭탄 실험성공, 화성 14호 발사실험을 통한 대륙간탄도 미사일 실험성공, 그리고 인명살상은 하지 않지만 군사 장비를 파괴하는 전자기탄(EMP·Electro Magnetic Pulse)개발을 공언하면서 한반도 비핵화는 “치킨게임”으로 갑자기 전환되었다. 대립하는 양측 당사자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고 상대방의 굴복을 받아내려는 무모한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북한의 미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과 미국의 북한 수뇌부에 대한 참수작전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전쟁직전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2018년 초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결정은 치킨게임에서 가능한 전쟁 직전의 군사적 긴장을 끝내고 게임의 전환이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이후 한반도 상황이 “어떤 게임으로 전환했을까?”에 대한 질문을 가다듬기도 전에 4월의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6월의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의 결과, 비핵화와 종전선언의 교환은 서로의 선택을 조율(coordination)해야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사슴사냥 게임”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이 원하는 체제보장을 미국이 제공하고 한국과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를 북한이 제공함으로써 한반도에 평화와 번영이 남북한 모두에게 공유될 것이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치킨게임으로의 전환은 그 동기까지 명확하게 이해가 되었지만 치킨게임에서 사슴사냥 게임으로의 전환에 핵심은 “미군이 주둔하더라도 북한의 체제안전을 미국이 보장한다면 비핵화에 동의한다”는 북한의 명확한 의사표시에 따라 가능해진 것이다. 과거 북한은 한국이 제안하는 어떤 종류의 평화적 협력에 대해서도 정치공세라고 할 만큼 집요하게 전제조건으로 항상 미군철수를 제시했던 전례에 비추어 볼 때, 북한의 선택의 동기에 대해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질문이 남아있었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의 공존 가능성에 대한 북한의 태도와 동기의 전환을 설명할 수 있는 실마리는 국내 종편방송사의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해소되었다.

2018년 북한의 현재 실상을 결론적으로 실체적인 차원에서 규정하면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수준의 발전”에 도달했다는 자신감이 보였고, 미국 및 남한과의 관계적 차원에서 규정하면 “미국의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면” 체제 생존은 가능하다는 자신감이 보였다. 이 두 가지 판단을 종합하면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은 이제 전쟁으로 잃어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경제적 성과를 달성했기 때문에 미국의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면 제재를 해소하고 통제된 외국자본과 기술의 수입을 통해서 북한의 경제적 발전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사진=kbs 뉴스 화면 캡처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 완성되었다는 평양 시내의 미래과학자거리를 중심으로 높은 빌딩이 북한 과학자들의 주거지라는 사실과 건물 외관의 채색은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려는 체제 광고판 같은 의미를 가졌다. 다음으로 보여주는, ‘대동강 수산물 식당’은 평양 시민들의 식생활 여건의 개선과 함께 식당 수족관 안의 철갑상어는 평양의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보여주는 지표로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 아래에서도 정치 및 경제적으로 상당한 내적 안정을 확보한 것으로 해석된다. 평양 한복판에 있는 ‘문수 물놀이장’의 여러 시설은 한국 수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고 이 시설은 외국인 관광객이 아니라 평양시민을 위한 시설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지도부가 적어도 핵심계층으로 알려진 평양시민들의 생활수준을 유지시킴으로서 체제이반을 방지할 만큼 국가 관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양교원대학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공개수업 장면은 초등학생의 지리교육에 가상현실을 활용하는 이른바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남북한 축구경기장에서 일반주민들을 대상으로 남한의 언론에게 인터뷰를 허용한 것은 북한의 당국자들이 적어도 평양 시내에서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한반도의 비핵화를 달성하고 남북한이 평화와 번영을 공유하기 위해서 우리의 인식이 먼저 변해야 한다. 헐벗고 굶주리고 공개처형과 인권침해가 만연하는 북한의 단면에 대한 확신과 북한 정권에 대한 불신으로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달성하기 힘들다. 평양 이외의 지방도시의 북한 주민들의 삶의 수준은 아직 열악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선택받은 평양시민이 아니라 일반 북한주민들의 삶의 수준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비핵화의 전략적 선택이 “사슴사냥 게임”으로 전환했다는 우리의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1972년의 미중정상회담 당시의 중국 국민들의 삶의 질을 현재와 비교한다면, 그래서 남북한은 정상회담을 통해서 평화와 번영을 공유하려는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 최악의 경우 “사슴사냥 게임”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제재를 유지하고 북한에 대한 압박을 계속하는 한 미국과 한국이 잃을 것은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다.

▲ 이성우 박사

[이성우 박사]
University of North Texas
Ph. D International relations
현)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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