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안시성>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추석 가족 영화관람 시즌이 사실상 시작된 19일 개봉된 ‘안시성’(김광식 감독), ‘명당’(박희곤 감독), ‘협상’(이종석 감독)이 흥행 각축 중이다. 그중 ‘안시성’과 ‘명당’은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영화적 상상력의 나래를 펼친다는 점에서 재미와 교양과 교훈을 동시에 던진다.

선두를 치고 나간 ‘안시성’은 주목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으로 이씨조선은 물론 신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된 고구려가 주인공이라는 데서 무척 의미가 깊다. 향후 적지 않은 작가와 감독들이 고구려와 백제는 물론 가야와 발해 등으로 시야를 넓힐 교두보다.

642년 고구려 연개소문은 100여 명의 귀족과 제27대 왕 영류왕을 제거하고 그 조카를 보장왕으로 앉힌 뒤 자신은 인사권과 군사권을 총괄하는 막리지에 오른다. 3년 뒤 당 2대 황제 태종은 신라의 간청으로 신라에 침략하지 말라고 고구려를 윽박질렀다 망신만 당하자 직접 원정길에 나선다.

고구려 서북쪽을 파죽지세로 진군하던 태종은 평양성을 가는 길목에 놓인 안시성에서 발목이 잡힌다. 20만의 대군으로 5000명의 안시성 군대에 무릎을 꿇은 것. 그 승리를 이끈 성주 양만춘이 성위에 올라 퇴각하는 태종에게 예를 갖추니 태종은 하례로 명주 100필을 주며 함께 예를 갖춘다.

▲ 영화 <안시성> 스틸 이미지

양만춘은 정사에 없는 야사 속 인물이다. 생몰년도 미상이고 이름만 ‘늦봄’이 일치할 뿐 성도 제각각이다. 그의 정적인 연개소문은 확실한 실존 인물이다. 영화는 정사와 야사의 기록에 상상력을 더해 양만춘이 ‘미션 임파서블’ 활로 화살을 쏴 태종의 오른쪽 눈을 맞춰 승전한 걸로 매조진다.

우리는 여기서 영화적 상상력과 역사적 퍼즐을 근거로 재미를 더할 수 있다. 태종이 그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다고는 보기 힘들다. 토산 공사에 연인원 50만 명이 동원된 당 출정 규모나 국력이나 황제의 지위에 미뤄 사정거리에 태종이 노출될 이유는 찾기 희박하다. 퇴각 중 병에 걸렸을 수는 있다.

화병, 감기몸살, 향토병 등이나 합병증을 의심할 수 있다. 안시성 전투 후 5년을 더 살았다는 점에서 그가 전투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을 확률은 거의 없다. 관객은 양만춘의 존재가 궁금할 것이다. 그를 보좌하는 6명의 주인공들은 모두 상상력의 산물이다. 양만춘이 미상인데 여동생이 있다니!

우리는 삼국을 고려 때 집필한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승려 일연의 ‘삼국유사’를 통해 ‘공식적’으로 접할 수 있다. 물론 개인적인 유사보다 국가적인 사기가 정통이다. 그런데 김부식은 신라 출신이고, 일연은 신라를 근거지로 활동했다. 그렇다 보니 삼국 중 신라 얘기가 가장 많고 아주 긍정적으로 묘사된다.

통일신라가 한반도 최초의 통일국가로 기록된 점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시각의 변화가 필요할 듯하다. 첫째, 신라는 당의 도움으로 한반도를 ‘통일’했다. 통일신라는 당에 ‘동생’의 예를 갖췄고, 그게 고려와 조선에 ‘전통’으로 이어졌지만 중원의 한반도에 대한 욕심이 지속되는 빌미를 제공했다.

▲ 영화 <명당> 스틸 이미지

통일이란 의미를 되새겨야 할 듯하다. 둘째, ‘우리가 단일민족’이란 개념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B.C. 57년에 건국(삼국사기)된 신라의 마립간 시대(4세기 후~6세기 초)에 이질적인 돌무지덧널무덤이란 묘제가 집중적으로 등장하는데 여기서 로만글라스 등 다량의 서구 문물이 발견됐다.

일부에서 제기되는 신라의 기원이 훈족이란 주장에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훈족은 중국 고대사의 흉노족의 후손으로 알려졌다. 5세기 전반 동로마에서 조공을 받고 서로마까지 벌벌 떨게 만든 ‘니벨룽겐의 노래’의 주인공 아틸라가 바로 훈족의 왕으로 동쪽에서 트란실바니아(루마니아)로 근거지를 옮겼다.

신라 8대왕이 아달라(~184)다. 신라가 오늘날까지 남은 편두(뒷머리가 납작) 문화 및 훈족의 묘제 문화를 보였다는 점에서 서쪽으로 간 아틸라와 한 뿌리일 가능성과, 단군의 자손인 고구려와는 다른 족일 가능성이 존재한다. 양만춘이 야사에만 존재하는 이유다. 분명히 ‘양만춘’은 있었다.

이름과 상관없이 5000명 대 20만 명이란 '뚝방전설'보다 더 전설 같은 승전을 역사에 쓴 고구려의 영웅이, 그리고 그를 도운 어벤져스가 있었다는 건 역사로 입증된다. 양만춘이란 이름을 떠난 ‘존재적’ 상징성이다. 실제 그 이름이 누구든 신라가 고구려의 마지막 영웅을 지우고 싶었을 것은 명약관화다.

▲ 영화 <명당> 스틸 이미지

연개소문의 역사적 평가가 극과 극으로 엇갈리는 것 또한 증거다. 현재 시각으로 보자면 그는 혁명가다. 허수아비인 보장이 아닌 실질적인 고구려의 마지막 왕인 영류와 그 선대가 고구려 멸망의 사실상의 원인 제공자다. 연개소문이 고구려의 국력과 백성의 안전을 지키려 했다고 볼 수 있다.

‘명당’은 이씨조선 후기 헌종 때가 배경이다. 당시 세도가는 안동 김 씨 조근. 여기에 왕권과는 거리가 먼 파락호 왕족 흥선이 끼어든다. 조근은 헌종의 장인이다. 영화는 조근을 좌근으로 바꾸고 조순이란 그의 선친을 만드는 말장난을 하며 주인공으로 상상력의 지관 재상을 집어넣는다.

영화가 집중하는 곳은 ‘땅의 기운’이다. 조상의 묘를 어디에 정하느냐에 따라 왕이 될 수도 있고, 집을 어디에 짓느냐에 따라 부자도 거지도 될 수 있다. 이는 당시의 억압된 인권과 자유를 담은 것. 왕조 말기 무능한 왕과 사리사욕에만 눈이 먼 중신과 왕족, 거기에 외세까지. 국민은 희망이 없었다.

명당은 일종의 ‘로또’요, 비현실 속의 가능한 현실적 변혁이었다. 영화에선 돈 많고, ‘빽’ 있는 부자와 양반만이 명당을 차지해 빈익빈 부익부는 더욱 심화된다. 그래서 한 백성이 아들의 책상 방향을 바꾸는 차선책으로 현실 타개를 모색한다는 설정은 여전히 ‘귀족’이 존재하는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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