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디즈니 영화에 가족 관객이 몰리는 게 비단 착하다는 이유 하나뿐인 것은 아니라는 걸 마크 포스터 감독의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가 여실히 보여준다. 감독은 ‘007 퀀텀 오브 솔러스’ ‘월드워Z’ 등의 블록버스터를 연출한 경력대로 소소한 일상의 의미를 확장시키는 마법을 발휘한다.

영국 서식스 주의 소년 크리스토퍼는 아버지에 의해 대도시의 기숙사가 딸린 학교에 입학하면서 헌드레드 에이커 숲의 곰돌이 푸 등 인형 친구들 및 동물 친구들과 헤어진다. 성장한 그(이완 맥그리거)는 에블린(헤일리 앳웰)과 런던에 정착해 딸 매들린을 얻고 대기업 윈슬로 사의 팀장이 된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된지라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회장 아들 자일스가 그에게 직원 20%를 감축하든, 비용을 그만큼 줄이든 아이디어를 짜오라는 통에 매일 야근하느라 딸의 얼굴을 볼 시간이 없다. 게다가 주말 서식스로의 여행 약속마저 어겨 가족과의 관계가 소원해진다.

그 시각 헌드레드 숲. 잠에서 깨어나 밖으로 나온 푸는 날씨가 흐린 데다 모든 친구들이 갑자기 사라진 것에 의아해한다. 친구를 찾기 위해 예전에 어린 크리스토퍼가 숲에서 머물던 큰 나무 밑동에 생긴 구멍 속으로 들어간 푸가 나무 반대편으로 나오니 런던의 주택가 크리스토퍼의 집 앞이다.

▲ 영화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스틸 이미지

크리스토퍼는 옛 친구인 푸를 ‘나 몰라’라 할 수 없어 기차에 태우고 헌드레드 숲까지 데려다준다. 주말에 직장에서의 생존 여부가 걸린 중요한 회의에 참석해야 하기에 서두르다가 길을 잃는다. 그리고 그가 어릴 때 친구들에게 말했던 불행을 주는 괴물 헤팔런과 우즐 중 헤팔런과 마주치는데.

일단 재미있다. 자연스러운 웃음이 훈훈하게 넘실대고, 절로 콧등이 시큰해지는 감동의 물결이 제대로 넘친다. ‘전체 관람 가’ 등급에서 흔히 말하는 ‘꿈을 잃은 어른을 위한 동화’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면 디즈니나 포스터가 아니다. 아이들을 위한 철학의 입문서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심오하다.

숲속의 생명을 지닌 인형 푸, 피글렛, 티거, 이요르, 캉가, 그리고 말하는 부엉이와 토끼는 실존인지 허상인지 모른다. 어쩌면 크리스토퍼의 어린 시절 순수한 동심의 세계 속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크리스토퍼의 마음가짐이다. 그들의 존재를 믿을 때 꿈과 희망과 ‘본디’ 존재가 존재하게 되는 것.

현재의 크리스토퍼는 생활에 찌들었다. 전형적인 일중독의 현대인이다. 그는 생계를 이유로 일거리를 집에 가져온다. 옆방에서 즐겁게 노는 아내와 딸의 소음을 막기 위해 문을 닫는 건 가족을 위해 일한다는 핑계를 들어 스스로 가족과의 관계를 단절한다는 의미다. 과연 그가 옳은 것일까?

▲ 영화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스틸 이미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과 찰스 쿨리의 ‘거울자아이론’이다. 크리스토퍼는 어릴 적 자신의 정서 함양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푸와 거리를 둔다. 회의가 중요하니까. 하지만 숲을 헤매던 그는 구덩이에 빠지고 때마침 몰아친 소나기로 인해 구덩이에서 새로 태어난다.

그가 물속(양수)에서 일어나 달라지는 건 새로운 탄생, 변양의 재구성, 자아회귀다. 그래서 냇물에 비친 자신에게서 어린 시절의 얼굴을 발견하는 것이다. 푸가 차를 타고 가다 유리에 비친 자신을 보는 것도 포함한다. 현대인은 타인의 의견에 반응하면서 ‘사회적 자아’를 형성한다는 게 거울자아이론이다.

사회적 눈치를 봄으로써 ‘본디적’ 존재를 잃는 것. 꿈과 정서로 충만했던 크리스토퍼는 기숙학교, 군대, 직장 등을 거치면서 자본주의의 노예가 됨으로써 모든 꿈과 정서를 잃었다. 크리스토퍼가 직원들을 해고해야 하는 괴로움을 토로하자 푸는 “나도 내보냈냐”고 묻는다. 왜 정서를 잃었냐는 얘기다.

기숙학교로 떠나는 소년 크리스토퍼에게 친구들은 “우리보다 철들면 안 돼”라고 당부했지만 ‘불행하게도’ 성장한 그는 철이 들어버렸다. 자본주의의 때를 뒤집어썼다. 그는 어릴 때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딸에게 자본주의의 철칙을 가르친다. “열심히 일해야만 꿈이 이뤄진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떠든다.

▲ 영화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스틸 이미지

밤에 딸이 책을 읽어달라고 하자 그는 역사책을 읽고 딸은 이내 졸리다고 한다. 그녀가 원하는 건 동화책이었던 것. 아내는 “당신이 웃는 것, 실없는 짓 하는 것 본 지 오래됐어”라고 힌트를 주지만 그는 알아듣지 못한다. 체제와 노동의 노예가 된 그가 복종할 대상은 오로지 오너고 시스템일 뿐.

거의 모든 대사가 철학의 향연이다. 푸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날은 오늘”, “익숙한 곳을 향해 뒤로 돌아가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자”, “아무것도 안 하다 보면 뭔가 대단한 것을 이룬다” 등 초월적 철학을 쏟아낸다. 인간, 자연, 그리고 사람이 ‘배려’하는 도구 등의 도구화를 꼬집는다.

크리스토퍼의 고급 서류 가방과 푸의 빨간 풍선은 천박한 욕망과 위버멘시(극복인, 초인)의 메타포로서의 대립이다. 살생으로 얻은 가죽으로 만든 가방을 부의 상징, 자존심의 첨병으로 부각시키는 어른의 속성과 남의 눈치 안 보고(튀는 빨강) 적당한 거품(부상)을 가진 풍선을 즐기는 동심의 대결.

웨스 크레이븐의 아름다운 동화와 팀 버튼의 기발한 동화에 적당한 상업성이 어우러진 비주얼과 스토리는 온 가족이 함께 즐기기에 더없이 적합하다. ‘생존자가 될 것인가, 패배자가 될 것인가’가 주제인데 진정한 실존의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가족이라는 나침반이다. 104분. 10월 3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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