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기자들에 대한 ‘대통령선거 취재’ 방해 [김문 작가 칼럼]

김문 작가l승인2018.09.22l수정2018.10.15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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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김문 작가가 쓰는 격동의 현대사를 주도한 군장성들의 이야기]

▲ 사진=ktv 화면 캡처

외신기자들에 대한 ‘대통령선거 취재’ 방해

1971년 4월 어느 날 미대사관 관계자로부터 김 장군을 찾는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 귀에 익은 공보담당 참모의 목소리였다. 그는 “김 공사(전직 호칭), 우리 미국 취재진을 막는 이유가 뭐요?”하는 것이었다. 미국 취재진들은 제7대 대통령선거를 취재하려고 했다.

까닭을 모르는 김 장군이 자초지종 캐물었다. 사연인 즉 워싱턴 포스트의 해리슨 도쿄지국장을 비롯, 뉴욕타임즈 기자들이 대통령 선거 취재를 위해 입국비자를 요청했으나 한국 당국이 뚜렷한 이유없이 비자발급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미국무부의 공식항의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세한 영문을 모르는 김 장군은 사정을 알아본 뒤 곧 연락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일단 박 대통령에게 보고하기로 마음을 먹고 미대사관측과의 전화내용을 정리했다. 누가 이런 조치를 취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 장군의 보고를 받은 박 대통령은 “이거 정보부 짓이구먼, 이후락이 보고 그런 짓하지 말라고 해.”라고 매우 못마땅한 듯이 내뱉었다. 박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김 장군은 외무부, 문공부, 중앙정보부 등의 관계자들과 긴급회의를 열어 외신기자들의 입국허용 관련대책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각 부처별로 외신기자들을 담당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렇게 해서 중앙정보부는 일본, 외무부는 유럽, 문공부는 아프리카 지역, 그리고 김윤호 장군은 미국지역의 기자들을 책임진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또한 김성진 청와대 대변인은 모든 것을 총괄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렇게 해서 외신기자들은 박 대통령과 김대중 후보간의 한판 대결을 취재하기 위해 속속 입국했으며 김 장군은 공항으로 나가 워싱턴 포스트의 해리슨 도쿄지국장을 맞았다. 김 장군은 또 해리슨 기자를 반도조선호텔까지 동행하는 등 각종 편의를 제공했다. 물론 김대중 후보에 대한 인터뷰도 주선했고 가능한 한 모든 자료를 제공해주었다. 이후 두 사람은 절친한 사이로 발전해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개인적으로 만나기도 했다.

▲ 사진=ktv 화면 캡처

한미 을지포커스훈련 탄생

1975년 4월이었다. 김윤호 장군이 미8군에 파견근무할 때였다. 당시 미8군 사령관은 스틸웰 대장이었다. 미국통으로 자타가 공인하던 김 장군은 스틸웰 장군과 호흡이 잘 맞았다. 그해 말 김 장군은 스틸웰 장군의 권유로 ‘포커스렌즈훈련’ 통제단장을 맡게 됐다. 한국군과 미8군에서는 큰 훈련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포커스렌즈훈련’은 주한 미군 자체에서 하는 것이고 한국군은 ‘을지훈련’을 하고 있었다. 김 장군은 포커스렌즈훈련 통제단장이 된 후 스틸웰 장군에게 “훈련은 정치적인 쇼가 아니라 진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미리 준비한 수도권 침투의 가상 시나리오를 보고했다. 특히 그는 영어로 된 슬라이드필름 30컷을 내보이며 “통제단장으로 소신껏 훈련계획을 작성했다.”고 말했다.

며칠 뒤 미8군 작전참모인 코 헬라 소장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코 헬라 소장은 김 장군을 만나자마자 다짜고짜로 “이보시오. 당신 때문에 우리 부대의 대령급 참모들이 전부 기합 받았소.”하는 것이었다. 스틸웰 장군이 슬라이드필름 30컷을 보고난 뒤 자신의 참모들을 불러 평소의 안일한 훈련계획을 나무랐다는 것이다.

결국 훈련통제단장을 맡은 김 장군은 1975년 말 훈련을 성공리에 마쳤다. 훈련을 강평하는 자리에서 스틸웰 장군은 김 장군에게 “을지훈련과 포커스렌즈훈련을 합하면 어떻겠소?”하고 물었다. 수도권 방어 훈련을 하는데 미군 따로, 한국군 따로 한다는 것은 비경제적인 것이라는 게 스틸웰 장군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한미관계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을 귀띔하면서 김 장군은 “국방부와 합참에 의견을 제시한는 것도 좋지만 결국 청와대의 승인이 있어야 일이 해결될 것”이라고 스틸웰 장군에게 말했다. 그러자 스틸웰 장군은 며칠 뒤인 1976년 1월 청와대에 편지로 수도권 방어훈련을 ‘을지포커스훈련’으로 통합한다는 안을 보내 승인을 받았다. 그래서 최초의 을지포커스훈련 날짜는 1976년 6월로 정해졌다. 6.25를 전후해 훈련을 실시하자는 의견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최초 훈련단장은 김 장군이 맡았음은 물론이다.

▲ 김문 작가

[김문 작가]
전 서울신문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현) 제주일보 논설위원

김문 작가  gamsam10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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