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괴’에서 ‘인랑’을 보다 [유진모 칼럼]

유진모 칼럼니스트l승인2018.09.27l수정2018.10.0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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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물괴>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4편의 한국 영화의 치열한 접전이 예상됐던 추석 연휴 극장가는 ‘안시성’(김광식 감독)의 압도적인 독주체제로 끝났다. ‘암수살인’(김태식 감독)과 마블의 블록버스터 ‘베놈’이 개봉되는 10월 3일 전까지는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명당’과 ‘협상’은 약 300만 명의 손익분기점이 관건이다.

눈에 띄는 건 기획 당시부터 개봉 전까지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모았던 ‘물괴’(120억 원)의 참패다. 현 추세로선 ‘인랑’(160억 원)의 89만여 명에도 못 미칠 전망이다. 26일 ‘원더풀 고스트’의 개봉으로 사실상 퇴장이 예상된다. 이 동선에 왠지 ‘인랑’의 그림자가 엿보인다. 많은 영화인들의 숙제다.

‘인랑’은 누가 봐도 강했다. 강동원 정우성 주연에 김지운 감독. 워낙 유명하고 심오한 원작에 대한 관객의 인지도와 호감도는 매우 컸다. ‘물괴’의 감독과 배우는 결은 좀 달랐지만 뒤질 바는 없었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추석 극장가는 사극에 호의적이었다. 괴수까지 더했으니 흥행 가능성은 높았다.

강동원은 얼굴로, 김명민은 연기력으로 한몫 단단히 하는 배우기에 비교는 억지일 수 있다. 그렇다고 강동원이 연기력이 떨어진다는 것도, 김명민이 외모가 부족하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대중이 그들을 먼저 선호하는 순서가 다르다는 의미다. 어쨌든 둘 다 흥행력이 강하다는 것만큼은 일치한다.

▲ 영화 <물괴> 스틸 이미지

‘인랑’이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그렸다면 ‘물괴’는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이 낳은 프로파간다와 포퓰리즘을 현상화하고 형상화하는 데 집중했다. 둘 다 심오한 기획의도에서 출발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그런데 ‘물괴’는 역시 정치적 혼란기를 배경과 소재로 출발한 ‘명당’과 사뭇 다른 결과다.

물론 ‘명당’ 역시 호평과 혹평이 엇갈린다. 한 편의 영화에 수백 명이 매달리기에 한 사람의 편협한 시각으로 ‘이렇다’ ‘저렇다’의 선을 긋는 건 결례지만 아주 심하게 엉망이 아니라면 충분히 호불호가 나뉠 수는 있다. ‘명당’에 꽤 쏠쏠하게 관객이 몰리는 이유는 당연히 재미가 존재한다는 증거다.

선배들에 한참 뒤진 이선근의 연기력, 누가 봐도 사극과 톤이 어긋나는 문채원과 스토리에 뜬금없는 초선이란 캐릭터, 유재명이란 배우의 오용 등이 몰입을 방해함에도 일단 플롯이 살아있다. 다소 산만하다는 느낌이 들 즈음 한 주인공의 숨겨놓은 야욕과 다른 주인공의 해탈로 매조짐으로써 상쾌함을 준다.

이렇게 재미를 주고자 하는 지점이 확실하고, 주제의식을 분명하게 세웠으며, 그걸 관객이 용인(혹은 수긍)함으로써 지갑을 열게 되는 것이다. 해당 영화 관계자들이 그 디테일과 정체성을 가장 잘 알지만 얼마나 관객이 들지는 관객이 더 잘 안다. 숲속의 사람과 숲 밖에서 숲을 보는 사람의 차이다.

▲ 영화 <인랑> 스틸 이미지

‘물괴’는 ‘최초의 액션 크리처 사극’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심형래의 크리처 무비가 희화화되는 것과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흥행과 완성도에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극찬을 받는 것을 다분히 의식한 듯하다. 흉내도 안 내고 차별화를 꾀한다는 변별성을 강조하려는 의도 자체는 옳다.

또한 물괴의 존재와 여론조작을 통해 형성한 괴물의 상징성을 상치시켜 ‘마음의 불안’과 ‘실제 불안 요소’의 존재론을 묻는 철학도 나쁘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물괴에 있다. 전임 권력자의 취미에 의해 외국에서 들여온 희귀동물이 ‘공해’로 인해 물괴가 된다는 설정을 관객이 ‘안’ 받아들이는 것.

‘인랑’의 패인을 들자면 원작 애니메이션이 고작 192명밖에 동원하지 못했다는 걸 간과해선 안 된다. 엄청난 철학적 걸작들은-크리스토퍼 놀란이란 영리한 천재를 제외하곤-대부분 흥행과 가까워지기 힘들다. ‘블레이드 러너’는 ‘폭망’했고 드니 빌뇌브의 ‘컨택트’(2017)도 고작 63만 여명에 그쳤다.

결말을 바꾼 건 아마 이런저런 걸 의식해서였겠지만 결과적으로 원작의 마니아들마저도 실망시키고 말았다. 재미라는 흥행성만을 놓고 봐도 관객들의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다. 인랑의 액션 시퀀스가 눈부시고 대척점에 선 인물들이 강렬해야 재미가 클 텐데 그렇지 못하다는 게 다수의 평가다.

▲ 영화 <인랑> 스틸 이미지

특히 수트가 지나치게 무거운 탓에 몸의 움직임이 둔할 수밖에 없어 뻣뻣하게 선 채로 중화기를 난사만 해대는 인랑의 활약은 헛웃음을 자아내게 했다는 평. ‘물괴’가 자칫 ‘조선명탐정’을 연상케 할 수도 있다는 함정을 간과한 것이 그 실수를 연상케 한다. 사소한 부주의 혹은 과욕이 패착으로 이어진 것.

‘명당’과 ‘협상’은 한날 개봉된 ‘안시성’의 핑계를 댈 수 있다. 하지만 일주일 먼저 개봉된 ‘물괴’에겐 그런 변명은 있을 수 없다. 이미 ‘서치’에게 발목을 잡힌 게 명명백백한 증거다. 전술했다시피 수백 명이 수년간 공을 들인 한 편의 영화에 대해 섣부른 점수를 매기는 건 실례지만 결과는 논할 수 있다.

감독의 연출 철학과, 재미와, 작품의 완성도의 완벽한 조합은 영화의 영원한 숙제다. 어느 감독과 제작사와 투자사가 엉터리 영화를 만들고자 할까마는 때론 자그마한 부주의가, 때론 지나친 의욕이 흠집을 만들 수 있다. 감독은 작품을 만들고자 하지만 투자사는 상품을 만들고자 한다는 건 매우 중요하다.

요즘 같은 고도의 정보화 시대엔 미디어를 통한 홍보의 효과는 그리 크지 못하다. 오히려 관객들의 입소문과 SNS 등이 강할 때가 종종 있다. 상투적이지만 관객의 마음을 읽는 게 가장 중요한데 ‘어벤져스’의 완벽함이 자신 없다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진정성과 ‘서치’의 아이디어가 차선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유진모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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