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미쓰백>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2016년 전국 총 53개의 학대피해아동쉼터가 보호한 아동 수는 전해보다 24.1%가 증가한 1030명. 접수된 아동학대신고 2만587건 중 10.6%의 신고자가 가족이 아닌 제3자였다. 이혼율 세계 1위인 한국의 부모들은 이혼 후 새 파트너와의 행복을 꿈꾸지만 적지 않은 아이들은 행복을 잃는다.

‘미쓰백’은 이지원 감독이 겪은 실화에서 모티프를 얻은 영화다. 백상아(한지민)의 엄마 정명숙(엄마)은 일찍 남편을 여의자 우울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알코올중독자가 된 후 상아에게 폭력을 휘두르다 결국 버렸다. 보육원에서 자란 상아는 전과자이지만 닥치는 대로 일하며 악착같이 살고 있다.

장섭(이희준)은 상아가 사건에 연루됐을 때 돕지 못한 죄책감과 동정심, 그리고 애정으로 일방적으로 그녀를 돌봐주고 있다. 추운 겨울날 상아는 거리에서 맨발의 초췌한 소녀 지은(김시아)을 발견하고 먹을 걸 사주는데 지은 아버지 김일곤(백수장)의 동거녀 주미경(권소현)이 나타나 데려간다.

일곤은 20살 때 충동적인 관계로 지은을 낳은 뒤 애정 없이 양육해왔다. 지은은 일곤과 미경의 지속적인 학대로 인한 고통과 굶주림에 견디다 못해 종종 가출을 한다. 또 지은을 발견한 상아는 경찰서에 신고하지만 경찰은 일곤과 미경에게 지은을 넘기고 전과가 있는 상아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낸다.

▲ 영화 <미쓰백> 스틸 이미지

일곤은 추운 세탁실에 지은의 손과 발을 묶어 가둔 뒤 죽으라며 물도 못 마시게 한다. 결국 지은은 세탁실 창문을 통해 탈출해 2층 벽에 매달려있다 떨어진다. 때마침 지은이 걱정돼 그 집의 문을 두드렸던 상아는 그러나 일곤이 대응하지 않자 발길을 돌리고, 그녀를 찾아온 장섭의 차에 타는데.

불편하다. 세상에 저런 아버지가 있을까, 아무리 친엄마가 아니라지만 자신과 함께 사는 남자의 딸을 저렇게 학대할 수 있을까 도저히 상상이 안 돼 분노를 자아낸다. 그런데 지금까지 접해온 천인공노할 뉴스들을 떠올리면서 왜 이 영화가 세상에 나왔는지, 왜 저런 악마들을 창조했는지 이해가 된다.

타이틀롤은 상아지만 곧 지은이기도 하다. 둘은 결국 같다. 상아는 어릴 때 엄마의 상습적인 폭행에 희생되다 못해 버림받았다. 몸의 상흔보다 더 큰 건 정신적인 충격이다. 가장 믿고 의지했던 엄마에 대한 배신감과 원망, 그로 인해 발생한 세상에 대한 불신 때문에 생긴 자아상실.

불쑥 찾아와 밥을 사주는 장섭 앞에서 거리낌 없이 속옷이 보일 정도로 무장 해제된 태도로 밥을 먹는 여성성을 저버린 행동. 결혼하자는 장섭에게 “나 같은 게 무슨 결혼”이냐며 인간의 존재를 내던진 태도. 그녀는 스스로 여자이기를, 사람이기를 포기한 채 그저 관성적인 시간을 허비하던 중이었다.

▲ 영화 <미쓰백> 스틸 이미지

지은은 그런 그녀에게 목적을 준다. 존재의 이유를 부여한다. 지은은 상아를 20여 년 전으로 되돌린 타임머신이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를 발견한 상아는 타성적으로 고개 숙였던 세상에 반항하기 시작한다. 국지적으로 장섭에게만 까칠했던 자신의 본성을 드러냄으로써 지은의 보호자로 우뚝 선다.

그건 곧 엄마(세계)에 대한 원망에서 발생한 자아의 포기, 그러나 엄마의 본심을 알고 난 뒤의 자책감 등에서 비롯된, 뒤늦게 엄마가 되고 싶고, 엄마가 돼야만 하는 존재적인 필사의 몸부림이다. 미경은 “개 한 마리 못 키우는 주제에”라고 비아냥거리지만 사람은 개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다.

감독은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사회적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걸 계몽하려 안간힘을 쓴다. 명숙이 폐암으로 사망한 건 이 사회적 공기가 그만큼 혼탁하단 의미다. 아동학대임을 직감하면서도 남의 개인사라는 구태의연한 발상으로 직무유기를 자행하는 경찰이 버젓이 권력을 행세를 하는 이 썩은 사회를.

미경이 교회에서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기도를 하는 신과 유흥주점에서 “사장님”이라며 애교를 떠는 시퀀스는 이 사회의 추악한 이면의 메타포. 퇴근한 그녀를 컴퓨터 게임에 몰두한 일곤은 쳐다보지도 않지만 애완견은 꼬리를 흔들자 “개새끼가 낫다니까”라고 말하는 것도 메마른 인간관계를 말한다.

▲ 영화 <미쓰백> 스틸 이미지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의 경계를 달리는 치밀함이 훌륭하다. 판에 박힌 여배우의 틀을 깬 한지민의 연기 확장 능력도 놀랍지만 더 경이로운 건 그녀에 뒤지지 않는 김시아가 신인이라는 점. 시종일관 흔들리는 카메라(심리상태)와 솔로 혹은 협연으로 배경을 채우는 첼로, 피아노, 기타가 완성도를 돕는다.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건 옳지 않지만 지나친 무관심은 상아나 지은 같은 피해자를 낳기 십상이다. 영화가 집중하는 곳은 아동학대 자체라기보다 현대 사회에 만연한 무관심과 무책임이다. 그게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자그마한 관심이 얼마만큼 순기능을 하는지 준엄하게 따진다.

둘이 월미도에 놀러 간 건 힘든 달이 끝나간다는 것, 지은이 나는 갈매기를 보며 처음으로 미소를 짓는 건 희망찬 새 달을 맞을 듯하다는 것, 상아가 지은의 손을 잡는 건 함께한다는 것이다. 후반 역광의 상아와 순광의 지은은 사회의 과거와 미래 혹은 양면을 상징한다. 상아와 장섭의 시퀀스도 볼거리다.

영화는 상아를 중심으로 지은과 장섭 양쪽의 내러티브에 집중하기에 산만함이 거의 없다. 장섭의 유일한 가족은 ‘잠깐’ 결혼했던 누나(김선영). 그 역시 외롭고 상처받았다는 뜻이다. 그렇게 그들은 한 가족을 꿈꾼다. 김선영의 코미디도 재미있는 ‘도가니’ 스릴러 버전이 나왔다. 15살 이상. 10월 11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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