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영의 도시 통영, 문무 조화로움에 이야깃거리 풍성 [유성호 칼럼]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l승인2018.10.01l수정2018.10.01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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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은 통제영에서 도시 이름이 생겨났다. 통영의 랜드마크인 세병관(국보 305호)와 한산대첩축제 준비로 분주한 강구안 선착장 일대.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의 문화‧관광이야기] 삼도 수군통제영, 줄여서 통제영. 이를 다시 두자로 줄여 오늘날 통영의 이름이 탄생했다. 잠시 충무공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충무가 됐지만 통제영의 도시에서 그는 초대, 3대 삼도 수군통제사였을 뿐이다. 오늘날 해군본부격인 삼도 수군통제사가 한산도 제승당을 거점으로 창설됐고 거제도로 잠시 이전 했다가 6대 이경준이 다시 통영으로 옮겼다.

이듬해 이경준은 6개월 만에 통제영의 객사 세병관(국보 305호)을 지었다. 한낱 어촌이던 곳이 갑자기 삼면 바다를 통괄하는 요새가 됐다. 이 같은 내용은 세병관 입구 두룡포기사비에 희미하게 적혀있다. 통제영성과 관아를 지었으나 모두 소실되고 세병관만 유일하게 남은걸 복원공사를 통해 일대를 옛날 모습으로 되살렸다.

근래 가장 무더운 한 여름 8월 통영을 찾았다. 오랫동안 친구처럼 지내던 정광호 통영시의원의 부름이 있었다.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그는 통영 일꾼으로 시민들의 부름을 받은 터다. 때마침 한산대첩축제가 열리는 시기라 열일 제쳐두고 통영으로 향했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 관광문화축제 현장 평가위원으로 위촉된 김에 규모 있는 축제를 한번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산대첩축제는 ‘우수축제’ 등급을 받은 상태로 우리나라 축제 중 열손가락 쯤에 낀다.

한산대첩축제 열린 8월 축제현장 찾아 2박3일 체류

▲ 57회째를 맞는 통영 한산대첩축제는 대한민국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표적인 축제로 등급상 우수축제다. 등급제가 없어지는 내년엔 무더운 8월을 피해 10월 개최가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다.

8월 11일, 축제 이튿날 늦은 점심 무렵 세병관에서 정 의원과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는 이곳에서 열리는 통제영 시조창 한마당 사회를 보기로 했다. 싱싱한 먹거리의 고향 통영에서 첫 끼를 뭘 먹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포장배달 된 충무김밥이 주린 객을 맞았다. 백화당 대청마루 끝자락에 앉아 멀리 강구안 쪽 하늘을 바라보며 먹는 충무김밥 맛도 제법이다. 역시 음식은 제 고장에서 먹어야 제 맛이다.

오후 6시 한산도 앞바다 상공을 공군 곡예비행단 블랙이글스가 수를 놓는다. 한산대첩 승전축하비행이다. 이어 이순신장군 전통무예시연, 승전기원 퍼포먼스, 진도 강강술래 공연이 이어졌다. 한산대첩축제의 메인이벤트인 한산 해전 재현은 바다를 무대로 한 한편의 뮤지컬이다. 이순신공원은 한산도 앞바다 ‘무대’가 가장 잘 보이는 천혜의 ‘객석’이다. 잘 훈련된 배우들이 한산대첩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바다에선 거북선과 판옥선의 조선 수군이 학익진을 펼쳐 왜선을 격파하는 장면을 불꽃놀이로 연출했다.

해전에 동원된 배들은 통영 어민들이 직접 몰고 나왔다. 축제 평가에서 중요하게 손꼽는 축제발전역량 중 지역사회 연계성 부분에서 의미 있는 모습을 연출했다. 지역사회 연계성은 지역주민의 자발적 참여, 긍정적 인식, 공감대 등을 말한다. 이들 어민들은 점심 무렵부터 나와 배를 점검하고 리허설을 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들은 수십 발의 폭죽을 배에 싣고 쏴가며 한산도 앞바다를 이순신의 한산대첩 시간으로 되돌렸다. 승전고는 날이 이슥할 무렵까지 이어졌고 축제는 최고조에 달했다.

지역민들 축제에 헌신적 참여…지역사회 연계성 큰 점수

▲ 한려수도의 시작점인 청정 바다를 품고 있는 지역이라 먹거리에서도 수산물이 강세다. 우짜면, 냉잔치국수 등 독특한 밀가루 음식도 선전하고 있다.

한산대첩을 보고난 후 본격적인 ‘먹방토영’(통영원주민은 ‘토영’이라 발음한다)을 시작했다. 간밤에는 강구안 2선 골목에 위치한 이중섭식당에서 물메기찜, 중앙전통시장 한이회초장에서 술미(놀래기), 달갱이(성대), 벤자리 3종 회세트, 그리고 입가심으로 숙소 인근서 우짜면을 한그릇 비볐다. 우짜면은 우동에 짜장 소스를 끼얹고 고춧가루를 한 숟갈 듬뿍 올린 재미난 음식이다. 물기 많은 짜장면으로 보면 된다. 이튿날 아침 서호전통시장의 부지런하고 분주한 아침을 봤고 여객선터미널에서 인근 섬으로 입도하려는 관광객들과 어울려 수정식당서 시원한 복국으로 해장을 했다.

중앙전통시장부터 문화마당을 거쳐 한산대첩광장까지 뒷골목은 일제 강점기 적산가옥 흔적과 백석의 시어(詩語)들로 빼곡하다. 백석은 생전 통영을 세 번 방문했다. 조선일보 기자로 있으면서 1935년 12월과 1936년 1월, 2월 한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 여인의 이름은 박경련.

백석의 친구 허준이 또 다른 친구 신현중의 여동생과 1935년 5월 결혼했는데, 6월에 결혼 축하연을 서울서 열었을 때 박경련과 만났다. 박경련은 백석 친구 신현중의 누님 제자로 이화고보에 다니고 있었다. 백석 나이 24세, 통영은 가슴 뛰게 하는 연인이 사는 아득한 곳이 됐다. 백석이 통영을 다녀온 후 쓴 기행시 세 편의 제목이 모두 ‘통영’인 것을 보면 감정의 깊이를 피상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한 번은 미리 전보를 치고 갔지만 박경련이 나타나질 않을 걸 보면 요즘말로 ‘찼거나’ 백석이 부담스러웠거나 둘 중 하나리라.

먹거리 풍성한 문화마당 이선도로 벽에는 백석의 시가 빼곡

▲ 팔도 손재주꾼이 모인 12공방의 도시답게 세밀한 작업을 요하는 나전칠기가 발달했다. 축제에 맞춰 통영나전칠기전시회가 통영시립박물관서 열렸다.

통영 이틀째, 서울서 둘째 아들이 내려 왔다. 통영을 한번 보여주고 싶었다. 아들 역시 통영이란 데 솔깃해서 새벽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통영서 생뚱맞게 한우로 점심을 먹고 한산도 행 배를 탔다. 뱃길로 2km 느릿하게 30분 남짓 가다보면 거북등대와 섬 꼭대기 한산대첩기념비가 보인다. 배 도착 시간에 맞춰 시내버스가 대기하다가 섬의 좌측 면(面)으로 가고, 제승당을 가려면 우측으로 걸어야 한다. 제승당은 107대 통제사를 지낸 조경이 세웠다. ‘승리를 만든다’는 의미의 해군작전사령관실이다. 제승당 권역에는 이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가 있다. 종2품 통제사 관복을 입은 이 충무공의 위엄이 공간을 엄숙하게 한다.

제승당을 나와 동백나무 우거진 길을 되돌아 나왔다. 선착장서 버스를 타고 면사무소 쪽으로 가려했다가 그만 버스를 놓쳤다. 국립공원관리공단 한 직원의 역사문화해설에 푹 빠져서 버스가 왔다 간 것도 몰랐다. 다음 버스를 기다릴까 하다가 마침 배가 선착장에 머물고 있어서 다시 뭍으로 나왔다. 지금껏 통제영의 도시에서 무(武) 봤다면 문(文)과 예(藝)란 아름다운 속살이 있는 도시 통영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통영에는 문화예술인들이 많이 났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들의 생가를 구경하긴 힘들다. 그만큼 인문역사자원의 소중함에 대해 깨달음이 늦었다. 다만 그들이 남긴 문향과 예향을 깊고 넓었다. 극작가 유치진과 시인 유치환 형제, 화가 전혁림, 작곡가 윤이상, 시인 김상옥, 김춘수, 소설가 박경리 등이 나고 자랐다. 화가 이중섭이 한때 예술혼을 불태웠던 곳이고 백석이 연모에 이끌려 세 번 다녀갔다.

박경리‧윤이상 등 문화예술인들 출생지…12공방 영향 공예인도 많아

▲ 1945년 문을 연 이문당 등 통영에는 해방 후 근현대 문화유산은 물론 일제 치하 적산가옥 등 해방 전 문화재급 유산이 꽤 많다. 이들 중 지정문화재나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것은 미래유산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

각 지자체마다 예술가를 두고 다투는 일이 많다. 통영도 유치환과 박경리를 두고 거제와 원주 두 도시와 티격태격했다. 통영시는 유치환 스스로 한 시집서 통영 생이라 했다 하고 거제시는 유족들 말을 듣고 그가 거제 생으로 통영은 이사를 간 곳이라고 주장했다. 대법원까지 간 이 재판은 2004년 법원이 ‘거제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청마의 딸 3명이 통영시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심대로 원고 패소로 판결나면서 일단락 됐다.

박경리의 경우 통영에 박경리기념관과 경남 하동군 박경리문학관, 강원 원주시 토지문화관 등에 ‘분산 기념’ 기념되고 있다. 작가로서는 영광일지 모르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지자체 마케팅의 씁쓸한 단면이 보인다. 원주는 박경리 작가의 사위인 시인 김지하와 딸 김영주 토지문학관장이 사는 곳이다.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을 보면 ‘대부분 남자들이 바다에 나가서 생선 배나 찔러먹고 사는 이 고장의 조야하고 거친 풍토 속에서 그처럼 섬세하고 탐미적인 수공업이 발달되었다는 것은 좀 이상한 일이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나전칠기 공예품을 두고 한 소리다. 이는 이순신이 초대 통제사를 하면서 12공방을 둔 내력 때문이다. 12공방은 군수품과 생활용품, 진상품을 만들기 위한 통제영 공방이다. 전국 팔도에서 손재주가 좋은 사람을 모아왔기 때문에 그들의 피가 여전히 흐르고 있는 것이다. 통영하면 나전칠기, 소반, 갓 등은 전국 최고로 쳤던 시절이 있었다.

문인들 유명세 탓 지자체와 유족 간 다툼도 있어

▲ 통영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시작점인 한산도를 비롯해 욕지도, 사량도, 장사도 등 수많은 섬을 품고 있다. 산양읍 정상 미륵산에서는 한려해상국립공원과 멀리 내륙 마산까지 사방을 훤히 볼 수 있다.

통영시립박물관에선 마침 나전칠기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신미선 작가의 브로치 작품인 화양연화와 나무에 자개를 박은 겨울나무를 비롯해 패세공(貝細工) 박재경 명장 작품까지 통영 12공방 후손들의 야무진 손끝을 만날 수 있었다.

도시를 방문하면 박물관을 먼저 가봐야 도시가 가진 온갖 내력을 알 수 있다. 도시를 이해하기 위한 선행학습으로 가장 적지인 셈이다. 통영시립박물관은 선사시대 통영부터 통제영 시대, 근현대를 잘 표현해 놓았다. 특히 박물관 자체가 사료적 가치가 있는 건물이라 의미를 더했다. 1943년 통영군청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좌우 대칭으로 당시 외관이 잘 보존돼 있어 2005년 등록문화재 제149호로 지정됐다.

전혁림미술관은 일요일이라 문을 닫아 내부를 볼 수 없었다. 반면 박경리문학관은 문을 열었다. 문학관 뒷산에 박경리가 묻혀있다. 원주에 묻힐 뻔 한 우여곡절을 고인은 알기나할까. 통영이 낳은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을 기리기 위해 만든 통영국제음악당은 대단한 시설을 자랑한다. 외국 연주자들이 지방 도시에 이만한 음악당이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다만 바로 옆에 지은 호텔은 통영의 아름다운 스카이라인과 어우러진 설계를 할 수 없었는지 아쉬운 부분이다. 시설 관리자의 안내로 음악당 곳곳을 잘 살폈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이유를 알았던 시간이었다.

한려수도의 시작점인 곳이라 수산자원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곳이다. 그러다보니 통영수산과학관을 잘 조성해 놨다. 수산과학관 바로 인접에는 ES리조트가 풍광이 가장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친환경적인 설계로 주변 자연풍경과 어우러지게 지어져서 보는 이로 하여금 부담을 주지 않았다. 기회가 되면 며칠 머무르며 바다가 보이는 방에서 통영의 관광자원과 미래유산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아쉬움 남았던 2박3일 통영행…아쉬움은 다음 여행의 마중물

▲ 통영의 진면목을 조금이나마 알게 한 정광호 시의원. 2박3일간 시간을 쪼개 필자를 이곳저곳 무던히도 많이 데리고 다니고 먹이고 재웠다. 지면으로나마 감사 인사를 전한다.

지역 명물인 된 통영 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461m) 정상에 오르니, 뭍과 바다 사방이 다 보인다. 멀리 마산이 보이고 가까이는 멈춰버린 조선소가 눈에 들어왔다. 다행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주도하는 경남 통영 폐조선소 재생사업 마스터플랜 국제공모에 당선작이 나오면서 탄력을 받게 됐다.

통영은 남쪽 바닷가 자개처럼 반짝이는 도시다. 통영은 문무지향과 예향을 품은 도시다. 통영은 성공적 도시재생과 미래유산을 잘 보존하면 남쪽 해안선에서 가장 매력적인 관광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과 저력을 가지고 있다. 통영관광개발공사는 직영하는 다섯 곳의 5색 매력만 홍보할 게 아니라 통영 전체 관광자원을 품고 가야한다.

한창 더운 8월에 열리던 한산대첩축제를 내년부턴 10월로 옮길 듯하다. 실제 한산대첩은 1592년(선조 25) 7월 8일에 있었으니 8월을 고집할 이유가 크게 없다. 한반도 기후가 변하고 있는 터라 8월 초 무더위를 피하는 것이 어쩌면 더 현명한 일이고 관광수요 증대를 가져올 수도 있다.

통영을 떠나기 전 문화마당 골목길 세자매식당서 냉잔치국수를 말았다. 농후한 멸치육수와 쫀득한 면, 그리고 적당한 가격이 어우러져 맛을 더했다. 2박3일 일정으로 통영을 봤다고 하긴 부족하다. 채 보지 못한 곳, 채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 ‘수 억’이다. 모든 아쉬움을 뒤로 하고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여행에서 아쉬움은 다음 방문을 기약하는 마중물이다.

▲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문화 향유공동체 ‘문화지평’ 대표
문화체육관광부 문화관광축제 현장 평가위원
지자체 근현대문화유산‧미래유산 보존 자문위원
한국약선요리협회 전문위원
대중음식평론가(‘유성호의 식사 하실래요’ 연재 중)
前 뉴시스 의학전문기자, 월간경제지 편집장
前 외식경영신문 대표이사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shy196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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