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퍼스트맨>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위플래시’ ‘라라랜드’에 열광했던 관객이라면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새 영화 ‘퍼스트맨’은 다소 뜬금없을 것이다. 스트링을 멜로디 파트의 주역으로 내세운 교향곡 스타일의 웅대한 음악은 여전히 셔젤답지만 그 소재와 비주얼 그리고 주제에서 특히 ‘라라랜드’와 완전하게 차별화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누구나 다 아는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달에 발자국을 남긴 미국의 우주인 닐 암스트롱. 내용은 그런 성공을 거두기까지의 결코 순탄치 않은 그의 인생 여정이다. 달에 성조기를 게양하는 장면이 없다고 비난하는 일부 미국인들은 무시하고 보는 게 포인트.

미국인들이야 ‘우주전쟁’에서 소련에 매번 지던 조국에 비로소 승리를 안긴 영웅이라 사전 지식이 풍부하겠지만 우린 인류 최초로 달을 밟은 ‘퍼스트맨’이란 이미지만 부각된 암스트롱인지라 성공이 있기까지의 파란만장한 뒷얘기가 흥밋거리다. 그건 바로 가장과 우주비행사로서의 고뇌와 개척정신이다.

1962년 NASA의 제2기 우주비행사로 발탁된 닐(라이언 고슬링)은 아내 재닛(클레어 포이)과 함께 뛸 듯이 기뻐한다.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최초로 무인 위성과의 도킹에 성공한 뒤 결국 달을 밟으며 “이 한걸음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일 뿐이나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이라는 어록을 남긴다.

▲ 영화 <퍼스트맨> 스틸 이미지

하지만 그 과정은 험난했다. 그는 우주비행사가 된 후 존 F. 케네디와 린든 존슨(진보)의 두 대통령을 거친 뒤 드디어 리처드 M. 닉슨(보수) 때 달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베트남 전쟁이 발발한 지 얼마 안 된 때 시작해 존슨이 임기 말에 종전을 위한 파리협상을 시작한 뒤에야 꽃을 피운 것이다.

따라서 이 달 착륙 프로젝트는 베트남전, 인종차별, 기아, 세금, 복지 등의 사회적 논란과 갈등과 더불어 국회의 견제 등 숱한 역경을 극복해야만 했다. 암스트롱은 정치가 전형적인 위선의 패션임을 알기에 이런 정치성에 휘둘리지 않는다. 훈련 중 사망한 동료와 어릴 때 병으로 떠난 딸 캐런이 중요할 뿐.

처음 제미니 프로젝트에 발탁됐을 때만 하더라도 ‘퍼스트맨’이란 명예와 이로 인해 얻을 엄청난 수익이나 화려한 미래의 보장에 매료됐을 것이다. 하지만 훈련과 실전을 거듭할수록 살아 돌아올 확률이 얼마나 낮은지, 그 과정과 결과가 가족에게 얼마나 고통을 주는지 깨달으면서 인식이 피폐해진다.

캐런과의 추억과 그 환영이 자꾸 인서트로 들어오는 건 그런 갈등과 괴로움을 뜻한다. 자신의 딸 하나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캐런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과 안타까움으로 점철된 그의 내면세계는 이미 자아회귀 혹은 자아발전은 포기한 듯하다. 결국 캐런을 놓아주는 게 극복 혹은 초월인 것이다.

▲ 영화 <퍼스트맨> 스틸 이미지

그 초월은 키에르케고르의 신(여기선 달)과 마주하는 단독자다. 19세기 유럽 철학은 인식의 두 원리인 노에시스(생각함)와 아이스테시스(감각적 경험)만으론 실존적 진리에 이르지 못하므로 불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키에르케고르는 불안을 자유의 가능성이라고 했는데 암스트롱에 딱 들어맞는 이론이다.

완벽한 아내와 사랑스러운 아들과 딸로 이룬 가정, 탄탄한 직장과 그 안에서의 존재감 등 나름대로 균형을 갖췄던 암스트롱의 일상은 캐런의 사망으로 모든 게 불안정해진다. 그러나 그 불안은 그를 도약과 극복의 길로 인도한다. 바로 우주다. 그 무중력의 공간에서 불안을 통해 자유를 발견하는 것.

그래서 아들은 계속 “나 밖에 나가 놀아도 돼요?”라고 묻는 것이다. 그건 암스트롱이 가족에게, 전 인류에게 우주로 나가도 되냐고 자신의 의지와 합목적성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아들이 놀아달라고 하자 “엄마 도와줘야 해”라고 변명한 뒤 방에 앉아 오열할 때만 해도 그는 방황하는 나약함이었다.

그런 그는 “날 달래줘야 해”라며 우주여행을 다녀온 뒤 당시의 기분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시각이 달라진다”며 “전에 왔어야 할 곳, 그래서 아직 보지 못한 걸 볼 수 있을지도”라고 답한다. 무중력 공간에서야 비로소 그는 자유로워지고 인생의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다.

▲ 영화 <퍼스트맨> 스틸 이미지

우주선의 창을 통해 우주를 바라보는 시퀀스도 같은 맥락. 우주선 밖에는 새가 자유롭게 날지만 우주선 안엔 무단 침입한 파리 한 마리가 윙윙거린다. 이 아이러니는 불교의 차안과 피안이다. 좁은 지구에 갇힌 차안의 인류와 너른 우주 어딘가에 산재해있을 존재(자)들의 피안의 세계를 은유한다.

키에르케고르의 심미적-윤리적-신앙적 인간 실존 3단계다. 암스트롱은 캐런의 죽음 뒤 감성에서 윤리의 단계에 이르러 끊임없이 우주로 나아가고자 했다. 달에 발을 내딛고 캐런의 팔찌를 심연의 장소에 내던짐(피투)으로써 비로소 종교적 단계에 다다른다(기투). 달의 단독자로서의 위버멘시(극복인)!

달에서 성조기가 안 보이고, 아폴로의 아주 사소한 고장을 스위스아미로 고치는 시퀀스는 대단한 블랙코미디다. 이래저래 ‘인터스텔라’와 ‘그래비티’가 연상되지 않을 수 없다. ‘인터스텔라’의 머피는 여기선 재닛이다. 머피의 법칙은 모든 생성과 소멸이 미리 정해진 예정조화라는 차원과 공간과 시간의 질서!

암스트롱은 ‘그래비티’의 라이언+맷이다. 특히 딸을 잃고 삶과 집착(지구, 중력)과 죽음과 자유(우주, 무중력) 사이에서 방황하는 라이언은 그대로 암스트롱에 오버랩된다. 마지막 닐과 재닛의 재회가 두고두고 명장면으로 남을 우주 버전 웨스턴무비 스타일의 수작이다. 12살 이상. 141분. 10월 18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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