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창궐>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공조’의 김성훈 감독과 현빈(왕자 이청)이 다시 만난 ‘창궐’은 유해진은 없지만 장동건(병조판서 김자준), 조우진(박 종사관), 정만식(청의 충신 학수), 이선빈(궁사 덕희), 조달환(승려 대길) 등의 화려한 라인업만큼은 단연 눈에 띈다. 때는 병자호란 뒤 청의 속국이 된 조선의 왕 이조(김의성)의 시대.

청으로부터의 자립을 도모하는 도총관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유럽에서 온 한 상선과의 밀거래를 통해 화승총을 수입하는데 이 과정에서 상선에 억류돼있던 좀비 하나가 제물포 땅을 밟은 뒤 그 지역에서 걷잡을 수 없이 좀비가 만연하게 된다. 이조는 붙잡힌 도총관이 역모자라며 직접 추국을 한다.

이때 세자 영(김태우)이 나타나 배후가 자신이라고 밝힌다. 그는 청의 간섭에 국격을 잃은 조선을 바로잡고 싶었다며 이조 앞에서 자진한다. 영의 밀서를 품은 박 종사관이 베이징으로 건너가 병자호란 때 청에 볼모로 잡혀간 영의 동생 청을 만나고, 그렇게 청은 학수와 함께 제물포항에 내린다.

영의 죽음과 도총관의 역모죄 등은 사실 조선을 삼키려는 자준의 계략이었다. 마치 지독한 역병이 휩쓸고 간 듯 초토화된 제물포에서 난감해하던 청 앞에 한 무리의 군사들이 나타나 한양까지 호위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청군을 따라 전쟁터를 누빈 청은 그들이 살수임을 한눈에 알아채고 검을 뽑는다.

▲ 영화 <창궐> 스틸 이미지

서로의 무기들이 치열하게 부딪치던 중 갑자기 야귀 떼들이 나타나 아수라장이 된다. 살수들이 전멸하고 청과 학수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박 종사관, 덕희, 대길 등이 나타나 구해준다. 박 종사관은 역모의 수괴로 몰려 쫓기던 중 제물포에 야귀가 창궐하자 주민들을 위해 싸우는 중이었다.

그들을 뒤로하고 홀로 입궁한 청은 자준의 세력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조는 “그토록 빨리 세자 책봉을 받고 싶었냐”라며 탐탁지 않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자 청은 “왕이 될 생각은 조금도 없다”며 “다만 제물포에 야귀가 창궐하니 군사를 내달라”고 부탁하는데.

이래저래 ‘부산행’과 ‘물괴’가 비교되지 않을 수 없는 태생적 한계는 감내해야 할 작품이다. 일단 170억 원이란 제작비에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장대한 스케일에 웅장한 사운드가 눈과 귀를 호강시켜준다. 19개국에서 동시 개봉된다는 건 조선판 좀비 액션에 대한 해외 관객들의 관심이 그만큼 크다는 증거.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자주와 지배, 그리고 자유다. 프로타고니스트 청은 자유를, 안타고니스트 자준은 자주를 핑계로 내세운 지배를 목적으로 한다. 당시 시대적 사정에 따라 백성들은 청의 지배와 상관없이 생존을 책임질 왕을 원하지만 충신들은 자주 국가를 세울 왕을 갈망한다.

▲ 영화 <창궐> 스틸 이미지

영어 제목 ‘Rampant’는 영어로는 ‘걷잡을 수 없이 만연하는’이고 프랑스어로는 ‘권력자 앞에서 비굴한’이다. ‘야귀’가 아닌 ‘창궐’이 제목인 중의적 의미다. 야귀는 15세기 왈라키야 공국의 영주 블라드 체페슈를 모티프로 한 소설 ‘드라큘라’를 살짝 인용해 좀비‘화’한 크리처다.

청은 야귀가 역도들이 퍼뜨린 한낱 헛소문에 불과하다는 이조에게 “야귀가 왜 없습니까? 궁 안에도 이렇게 득시글거리는데”라며 자준 일행을 훑는다. 야귀는 곧 어긋난 욕망의 은유다. 야귀의 창궐을 고약한 역병의 만연으로 왜곡하는 사람도, 그걸 교묘히 정권 탈취에 역이용하는 자준도 모두 야귀다.

이조는 창조됐지만 이씨조선 최악의 왕임은 확연하다. 굳이 이조인 이유다. 지극히 이기적이고 독단적이며 아집투성이다. 그래서 청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전하의 죄이옵니다”라고 뇌까리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조는 충언하는 세자에게 “바로 세우건 비뚤게 세우건 내가 옳다”고 호통쳤었다.

자준이 “명하였습니다”라고 보고하자 이조는 “명하였다?”라고 민감하게 반응한 뒤 자준이 “명을 전하였다 하였습니다”라고 정정하자 비로소 자신의 권위에 흡족해한다. 무시로 개벽을 외치며 개혁을 주창하던 자준은 “나 김자준의 나라는 더 이상 청의 속국이 아니다”라고 외칠 때만 해도 괜찮았다.

▲ 영화 <창궐> 스틸 이미지

하지만 이조를 무너뜨린 뒤 자신의 조력자들 앞에서 “너희들한테 옳고 그름을 묻는 게 아냐. 그건 내가 정해”라며 이조 이상의 독재자의 도그마를 보인다. 이에 비해 청은 왕위 계승 서열 1위임에도 아나키스트 혹은 방랑자 같은 강한 자유분방함을 보인다. 세자라는 말만 들어도 진저리를 친다.오죽하면 이조를 떠나보내며 “부디 다음 생에는 임금으로 태어나지 마십쇼”라고 할까. 덕희의 미모에 반해 “내가 군사를 몰고 오면 나랑 청나라에 가서 살 테냐?”라고 노골적으로 유혹할 만큼 가벼운 캐릭터다. 덕희가 대놓고 “하질”이라고 비하해도 “청나라에 가본 적 있냐”라며 초지일관이다.

이조가 “내가 이러려고 임금이 됐나”라고 탄식하고, 마을 주민을 찾는 학수가 “여보시오, 거기 누구 없소?”라며 한영애의 ‘누구 없소?’ 가사를 그대로 읊는가 하면, 덕희가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청에게 대놓고 “겨우 저런 자에게 희망을 품었단 말인가?”라고 자책하는 등 유머감각도 균형을 맞춘다.

철없던 청이 위기를 헤쳐 나가며 깨달음을 얻은 뒤 “왕이 있어야 백성이 있는 게 아니라 백성이 있어야 왕도 있는 것”이라고 지도자의 덕목을 완성하는 성장 액션의 외형이다. 자아통제와 존재선택의 불능에서 라스트 신의 횃불 몹신처럼 환한 밝음으로 나아가는. 121분. 15살. 10월 25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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