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보헤미안 랩소디’(브라이언 싱어 감독)는 퀸이 귀에 익다면 ‘그저 그런’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 혹은 에이즈로 45살에 떠난 프레디 머큐리의 사생활을 흥밋거리로 내세운 전기 드라마 정도로 예단할 수 있다. 맞을 수도 있지만 진짜 주인공이 주옥같은 20곡의 히트곡과 퀸 자체라는 데서 틀렸다.

그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다시는 볼 수 없는 퀸의 라이브를 직접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영상과 사운드만으로도 이 영화의 값어치는 라이브에 가깝다. 브라이언 메이(기타리스트)와 로저 테일러(드러머)가 프로듀서로 참여해 음악성과 사실감을 담보한다. 역사적인 록 무비의 마스터피스다.

영화는 1970년 영국 공항에서 수하물 노동자로 일하던 머큐리(래미 맬렉)가 하우스 밴드 스마일의 멤버인 메이(귈림 리)와 테일러(벤 하디)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마침 스마일의 보컬리스트가 탈퇴한 때라 자연스레 팀에 합류한 머큐리는 직접 밴드 이름을 퀸으로 바꾸고 엠블럼도 만든다.

6개월 뒤 베이시스트 존 디콘(조셉 마젤로)을 영입한 이들은 1973년 영국 EMI와 계약을 맺고 데뷔 앨범 ‘Queen’을 발표한다. 2년 뒤 싱글 ‘Killer Queen’으로 미국까지 점령한 밴드는 그해 말 4번째 앨범 ‘A night at the opera’와 싱글 ‘Bohemian rhapsody’로 록의 역사를 바꾼다.

▲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스틸 이미지

그리고 아일랜드 출신 아티스트 밥 겔도프가 아프리카 기아 난민을 돕기 위해 만든 1985년 웸블리 스타디움에서의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대미로 장식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아프리카 동쪽 탄자니아의 잔지바르 출신인 머큐리는 개명까지 했지만 파키스탄인이라는 오해와 조롱을 이겨내야 했다.

로마신화의 머큐리는 그리스신화의 음악의 수호신 헤르메스다. 성경 속 사도 바울의 초능력을 보고 사람들은 그를 머큐리로 불렀다. 바울은 평생 결혼을 안 했거나 홀아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쩌면 머큐리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그런 이름으로 개명했던 것은 아닐까? 정말 절묘하다.

머큐리는 일찍 메리(루시 보인턴)와 사랑에 빠져 청혼을 하고 수락을 받는다. 하지만 바빠질수록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남자들과의 관계가 깊어지고 잦아지는 만큼 메리와 멀어진다. 메리와 헤어진 후 에이즈에 걸렸음을 안 뒤 만난 한 남자와 여생을 보내면서도 메리와의 우정은 지속한다.

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선 퀸과 머큐리에 대한 약간의 심화 학습이 필요하다. 흔히 비틀즈는 ‘록의 모든 하위 장르를 집대성한 뮤지션’이라는 점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밴드로 평가받는다. 레드 제플린은 하드록의, 핑크 플로이드는 프로그레시브록의 왕자라는 칭호가 마땅하다. 그럼 퀸은?

▲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스틸 이미지

글리터록(글램록) 분야로 분류되는 게 보편적 시각이다. 머큐리의 정체성과 그에 따른 의상과 무대 매너, 글램록의 창시자 데이비드 보위와의 교류 등을 볼 때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그건 퀸의 음악을 간과한 채 머큐리에 시선을 집중한 단편적인 시각이다. 퀸은 특정 장르를 뛰어넘는 선구자였다.

뮤직비디오 전문 채널 MTV는 1981년 개국했지만 퀸은 1976년 처음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사실상 최초로 평가받는다. 비틀즈가 아이돌 밴드로 출발해 음악성의 정점으로 마무리했다면 퀸은 실험적이고도 대중적인 진보성으로 다양한 록의 향연을 펼쳤다. 비틀즈와 딥 퍼플의 중간쯤 되는 정체성.

딥 퍼플이 1969년 당시로선 ‘대작’이라 할 12분짜리 ‘April’을 내놓았고 로열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다면 퀸은 6분짜리 파격적인 오페라 ‘보헤미안 랩소디’를 불멸의 명곡 반열에 올렸다. 또한 비틀즈와 비교하긴 머쓱하지만 록의 다양한 장르부터 재즈까지 고루 섭렵했다.

장르를 섞거나 경계를 넘나들며 녹음의 형식을 파괴하고 모든 격식을 타파했다. 머큐리의 고향이 아프리카, 아랍, 유럽의 문화가 혼재된 것과 유사하다. 머큐리의 성 정체성에 따른 혼란은 시대의 혼돈이다. 대사 중 자막에 노출되지 않은 ‘빌리지 피플’이란 단어가 있다. 미국의 유명한 보컬 그룹이다.

▲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스틸 이미지

1977년 데뷔해 ‘YMCA’ ‘Macho man’ 등의 히트곡을 만든, 악기 연주 없이 노래와 춤만 하던 디스코 그룹으로 멤버는 게이이거나 게이 팬을 겨냥한 컨셉트를 지향했다. 다분히 머큐리를 연상케 하는 외모다. 퀸은 ‘Another one bites the dust’로 일부 팬의 비난을 받았지만 상업적으론 성공했다.

머큐리를 필두로 한 퀸은 형식과 관습의 파괴자이자 편견과 아집의 적대자다. ‘을’의 위치이던 신인 때 기존 음악 산업의 지나친 상술에 장엄하게 반발해 실험적 음악성을 관철한다. 머큐리가 끝에 아버지와 화해하는 건 돈에 눈이 멀어 예수를 팔았다 이내 후회하고 자살한 가룟 유다를 연상케 한다.

배우와 퀸 멤버와의 닮은꼴 비율이 꽤 높고, 워낙 음악이 훌륭한지라 몰입도는 최고다. 배우들이 퀸을 닮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스크린에 땀이 차고 넘친다. 단, 위대한 기타리스트이자 모든 악기의 연주자 겸 창의적인 프로듀서인 메이의 능력을 간과한 건 퀸의 팬이라면 섭섭할 수 있다.

머큐리의 트레이드마크인 흰 러닝셔츠와 랭글러 청바지, 그리고 “내가 누군지는 내가 정해” “내가 썩은 걸 깨달았을 때는 파리가 꾈 때”라는 대사가 관람 후에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싱어의 ‘유주얼 서스펙트’ 이후 모처럼의 걸작이다. 134분이 짧다. 12살 이상. 10월 31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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