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일라이 로스 감독)는 일단 잭 블랙(조나단)과 케이트 블란쳇(플로렌스)이라는 흥행의 보증수표가 주인공이라는 게 무척 미덥다. 전체 관람 가 등급에 소년 오웬 바카로(루이스)도 주인공이란 점에서 가벼운 판타지로 지레짐작하는 선입견만 피한다면 실망은 없을 듯.

루이스는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엄마의 오빠 조나단의 집으로 간다. 독신인 조나단에겐 딸을 잃고 혼자 사는 이웃사촌 플로렌스가 유일한 친구다. 앞집의 핸쳇 아줌마는 새벽에 색소폰을 부는 조나단과 매일 부닥친다. 집은 매우 웅장하지만 뭔가 음습한 비밀을 간직한 듯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전학 간 학교는 반장 선거가 한창이고 왼손에 깁스를 한 타비는 ‘왕따’가 된 채 고글을 쓰고 고립된 루이스에게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 준다. 한밤중 이상한 시계 소리에 깬 루이스는 손전등으로 뭔가 은밀하게 찾는 삼촌과 살아 움직이는 듯한 집안의 가구와 장식품 등에 잔뜩 겁을 먹는다.

▲ 영화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 스틸 이미지

친구들이 삼촌의 집을 유령의 집이라 부르는 등 루이스의 공포가 극대화될 즈음 조나단과 플로렌스는 자신들이 마법사임을 고백한다. 의외로 신난 루이스는 삼촌을 졸라 마법을 배우는 한편 절대 캐비닛을 열지 말라는 주의를 받는다. 그러나 타비에게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캐비닛을 열고 만다.

예전에 조나단 곁엔 콤비 마법사 아이삭(카일 맥라클란)이 있었다. 그러나 전쟁에 참전했다 돌아온 아이삭은 완전히 달라져 흑마술에 빠져있었다. 그는 악마와 손을 잡고 엄청난 힘을 얻고자 마법을 부리다 그만 죽고 말았지만 그가 집 안에 숨겨둔 마법 시계는 여전히 그의 부활을 기다리는데.

잭 블랙 특유의 코미디나 B급 정서를 기대한다거나 케이트 블란쳇의 카리스마를 예상했다면 다소 아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 유행인 호러 판타지의 연장선상에서 기예르모 델 토로도 살짝 느끼고,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 스타일도 슬쩍 맛보고 싶다면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요소는 담겨있다.

▲ 영화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 스틸 이미지

한 소년의 성장기이자 두 ‘어른아이’의 거듭나기다. 천애고아가 된 루이스가 생면부지의 외삼촌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뒤 자신의 나약함과 모자람을 인지하지 못한 채 인정투쟁을 벌이다가 진정한 정언명령이 뭔지 깨닫는 과정이 첫 번째다. 버스에서 뚱보 아저씨에게 가로막힌 상황은 그 은유.

타비는 ‘절대 악’인 아이삭의 또 다른 현신이다. 왼손에 깁스를 한 건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는 변장이자 관심과 동정심 유발의 ‘흑마술’이다. 나중에 루이스가 진정한 친구로 깨닫게 되는 흑인 소녀 로즈는 “타비는 반장선거 때만 착해진다”라며 루이스가 진실을 볼 수 있게끔 가언명령이 된다.

다음은 진화와 확장이 멈춘 조나단과 플로렌스의 발전이다. 언제나 그렇듯 블랙은 다소 가볍고, 자유분방하며, 긍정적인 캐릭터를 맡았다. 그럼에도 조나단은 깊은 밤에 색소폰을 불어 이웃에 민폐를 끼칠 정도로 철딱서니가 없다. 플로렌스는 딸을 잃고 마법의 힘을 잃었을 만큼 정신력이 나약하다.

▲ 영화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 스틸 이미지

루이스의 결정적인 실수로 생긴 전 인류의 소멸이란 거대한 위협 앞에서 무기력하기만 했던 두 사람은 “세상에 너는 하나뿐”이란 가르침에 따라 ‘나만의 마법 스타일’을 완성한 루이스의 불굴의 의지와 용기에 힘입어 잃었거나 모자랐던 자신들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며 ‘한 뼘’ 성장한다.

아이삭과 루이스는 추락천사 아자젤과 루이스의 뒷배경 미장센으로 쓰인 Zebus, 즉 인도 흑소로 대상화된다. 루이스가 ‘넘사벽’인 아자젤과 맞설 수 있는 힘은 소 같은 불굴의 의지와 항상 사전을 품고 다니는 그의 언어철학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그건 8번 포켓볼로 형상화된다.

8(∞)은 영원, 무한대, 반복과 더불어, 기독교의 7일 금식을 끝낸 뒤의 제8일로서 예수가 부활한 날이기에 재생, 신생을 뜻하는 행운의 숫자다. 아인슈타인의 ‘삶은 자전거와 같다’를 인용한 건 루이스의 성장의 근원인 균형을 위한 부지런함의 강조다. 가족용으로 안성맞춤이다. 105분. 10월 31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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