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후계자 지목받은 베트남전 영웅 [김문 작가 칼럼]

김문 작가l승인2018.10.29l수정2018.10.29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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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김문 작가가 쓰는 격동의 현대사를 주도한 군장성들의 이야기]

▲ 사진=ktv 화면 캡처

대권후계자 지목받은 베트남전 영웅

항간에는 박정희 대통령을 시행한 김재규가 채명신 장군을 후계자로 추대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 이야기는 과연 무엇인가.

베트남전의 영웅이 되어 군부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던 채 사령관은 박정희 장군과 함께 비록 5.16에 참가했지만 혁명공약대로 군에 원대복귀, 본연의 길을 걸어 후배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았다. 채 사령관은 1969년 5월 베트남전에서 임무를 마치고 귀국한 후 10월유신이 일어나던 1972년 2군사령관을 마지막으로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예편할 때까지 박 대통령의 잠재적 라이벌로 인식될 만큼 군부에서 신망이 두터웠다. 그렇지만 예편 후 외교관으로 변신한 그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10.26 직전 박 대통령의 후계자로 옹립할 계획을 한때 가졌다는 얘기도 있다. 박 대통령을 권좌에서 축출한 뒤 자신이 대권을 쟁취하지 않고 대신 채 사령관을 지도자로 옹립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둘은 어떤 특수관계가 있을까. 김재규는 박 대통령과 동향인 경북 선산 출신으로 나이는 9세 아래지만 육사2기 동기로서 5기인 채 사령관보다 3년 선배가 된다. 그 당시 육사는 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탓에 기수차이는 3기이지만 나이는 채 사령관보다 한 살 더 많다. 같은 육사 출신에 5.16후 박 대통령의 신임을 받으며 군에서 승승장구했다는 것 외에 둘은 함께 근무한 적도 없는 등 군에서 이렇다 할 두드러진 인연은 없다.

그러던 중 1971년 초 육군본부에서 서종철(徐鍾喆) 육참총장 주재로 열린 육군 주요 지휘관회의에서 둘은 의기투합을 하면서 이심전심 각별한 관심을 갖는다. 이 회의석상에서 채 사령관은 획기적인 개혁안을 들고 나와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지휘관들의 생명인 진급은 군의 사기와 지휘권 확립을 위해 공명정대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중령급의 야전지휘관이 기회만 있으면 보따리 싸들고 육본 인사관계자들을 찾아 진급청탁을 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대령은 대령대로 그렇고, 육본이 고급 지휘관들의 진급을 좌지우지 하니 어디 야전에서 지휘권이 제대로 서겠습니까. 도저히 안되겠더군요.”

문제점을 조목조목 나열하면서 채 사령관이 내놓은 개혁안은 계통을 무시한 채 육본이 정실로 인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요지였다. 즉 중령의 진급은 소정의 규정에 따라 소속 연대장이 4배수를 추천해 사단에 올리면 사단장이 순위를 매겨 군단장에게 제출, 심사해서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한 군사령부를 거쳐 육본에서 최종 결정해야 한다는 식의 파격적인 안이었다. 참석자들은 그의 제안설명이 끝나자 내심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표정이었으나 경직된 분위기에 눌려 감히 누구 하나 찬성하는 장군이 없었다.

이 때 3군단장인 김재규 중장이 벌떡 일어나 “채 장군의 개혁안은 만시지탄의 감이 있다.”면서 군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사전에 각본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소신이 없다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칫하면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비위를 거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참모총장에 대한 하극상으로도 비춰질 수 있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채 사령관은 이 회의가 있고 난 뒤 김재규가 용기있는 장군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름 정도 알고 지내는 사이일뿐 특별한 인연이 없었던 이들은 이 때부터 의례적인 회의에 참석할 때도 서로 관심을 표명하는 등 친근한 관계로 발전해 나갔다. 그렇다고 술자리 등을 함께 하며 군내부의 문제를 두고 격의없이 대화를 나눌 정도의 막역한 관계는 아니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제각기 다른 길을 걷게 된다. 2군사령관을 마지막으로 예편과 동시에 채씨는 1972년 자의반 타의반으로 직업외교관이 되어 스웨덴 대사로 부임했다.

김재규는 이와 비슷한 시기에 군복을 벗은 다음 1973년 유정회 의원으로 있다가 중앙정보부 차장거쳐 1976년 12월 ‘박동선 사건’때 중앙정보부장에 임명되는 등 출세가도를 달렸다. 둘다 대장계급장을 달지 못하고 유신이 선포되기 전 둘 다 군복을 벗은 점이 같다.

▲ 사진=ktv 화면 캡처

귀국때마다 김재규가 파티 주선

김재규와 채명신씨 사이에 대해 처음에는 특별한 인연도 없고 그래서 친하지는 않았지만 나중에는 좋은 사이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둘이 가는 길은 서로 달랐지만 한번 맺은 관심도는 변함이 없었다. 김재규가 중앙정부장이 된 1976년, 스웨덴 대사를 거쳐 그리스 대사를 역임한 채명신씨는 이듬해 4월 브라질 대사로 이동하게 된다. 이런 일이 있을 때면 해외공관장회의가 열리는데 채씨가 잠시 귀국할 때마다 김재규 부장은 깍듯한 예우를 하며 부부동반 파티를 열어주는 등 극진한 대접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언제든지 힘닿는 대로 도와주겠다는 말을 하곤 했다. 아마 채씨가 정치적인 야심이 없고 군생활을 깨끗이 마감했다는 점 등에 대해 김 부장이 나름대로 존경심을 가졌다고 볼 수도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채씨는 준장시절 박정희 장군과 함께 혁명을 한 뒤 혁명정부에서 2년 가량 감찰위원장 자리를 조건부로 맡은 적이 있다. 함께 일하자는 박정희 장군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지 못해 원대복귀를 해준다는 약속을 받고 잠시 위원장직을 맡았던 것이다. 당시의 감찰위원장은 장관도 파면결의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김재규씨가 채씨를 박 대통령의 후계자로 언급했었다는 얘기는 브라질 대사를 그만두고 1982년 미국 버클리대의 동북아문제연구소에 있을 때 인편을 통해 들은 적이 있다고 생전에 말한 바 있다. 김재규씨가 10.26 전 동생 항규씨한테 그런 얘기를 했다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채씨는 군부의 신망이 두터웠던 것은 분명하다. 12.12 이후 군내부에 큰 혼란이 생기자 후배들이 수습해줄 것을 요청했고 해외 대사직 10년쯤 지나자 모든 것을 정리하고 기분좋게 귀국하려고 했으나 후배들이 복잡한 국내에 들어오는 것보다 외국에서 더 공부한 뒤 귀국하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귀국해 정치의 전면에 나서줄 것을 바라는 인사들도 적지 않았으나 절대권력의 말로를 이역만리에서 지켜본 까닭에 본인의 소신대로 행동을 굽히지 않았다.

그에게 따라붙는 수식어 가운데에는 ‘영원한 참무인’ ‘베트남전의 영웅’ 등이 대표적이다. 그만큼 전설같은 신화적 전공이 많다. 연대장으로 한국전쟁에 참전, 게릴라부대 ‘백골병단’을 이끌고 적진에 뛰어들어가 빨치산의 거두 길원팔 중장을 사로잡은 얘기는 한국군 전사에 길이 빛나고 있다. 길원팔은 1951년 3월 생포되는데 남한의 경상북도를 총괄하는 빨치산 제5지대장 겸 남한지구 빨치산 사령관이었다. 그는 김일성한테 두터운 신임을 받은 골수당원으로 남과 북을 오가며 신출귀몰 활동했던 인물로 이태의 ‘남부군’에도 등장한다.

채씨는 2013년 11월 작고했는데 국립서울현충원 2번 병사 묘역에 묻혔다. 화장한 유골을 모시는 한 평짜리 사병 묘지다. 원래 장군의 묘지는 봉분을 쓰는 여덟 평이다. 채 장군은 건군 이후 병사 묘역에 안장된 첫 장성이다. 그는 생전에 베트남전에서 함께 싸웠던 부하들 곁에 묻히고 싶다고 말했다.

▲ 김문 작가

[김문 작가]
전 서울신문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현) 제주일보 논설위원

김문 작가  gamsam10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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