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동네사람들>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미스터리 스릴러 ‘동네사람들’(임진순 감독)은 믿음직스러운 한편 고정된 이미지의 과소비가 지적되는 마동석(기철)과 ‘아저씨’의 여운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김새론(유진)이 주인공이라는 게 기대감을 주면서도 한편으론 좀 염려스러운, 양날의 검의 영화인데 메시지만큼은 큰 울림을 준다.

한때 동양챔피언까지 지냈던 복싱 코치 기철은 협회 간부들의 전횡을 못 참고 부회장에게 폭력을 휘두르면서 일을 때려치운 뒤 여동생의 주선으로 지방 한 중소도시 여자고등학교의 기간제 체육교사로 부임한다. 교감은 그에게 학생주임 감투를 씌워 밀린 공납금을 재촉하는 임무를 맡긴다.

미납자 명단을 들고 일일이 학생들을 찾아다니던 기철은 유진을 발견하고 공납금을 내달라 부탁하면서 며칠째 결석 중인 그녀의 급우 수연(신세휘)은 더 많이 밀렸다며 혹시 가출한 게 아니냐고 묻는다. 이에 유진은 가출한 게 아니라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멋대로 판단하지 말라고 쏘아붙인다.

유진은 수연이 누군가에 의해 납치된 후 실종됐다고 믿고 있다. 수연의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를 위로하는 한편 방에서 성냥 하나를 발견하고 소재를 발견할 실마리라고 생각해 가져온다. 학생들의 일탈행동을 감시하기 위해 번화가로 나간 기철은 거리를 헤매는 유진을 발견하고 뒤를 쫓는다.

▲ 영화 <동네사람들> 스틸 이미지

시내는 군수 선거로 시끌벅적하다. 학교장이자 동네 유지인 기태(장광)가 여당의 후보로 나서 당선이 유력시되고 있다. 유진이 들어간 곳은 성냥을 홍보물로 뿌린 유흥주점. 유진은 주점 사장이자 지역 조폭 두목인 병두(진선규)의 부하들에게 붙잡히지만 때마침 나타난 기철에 의해 무사히 빠져나온다.

수연은 실종이 강력히 의심됨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은 단순한 가출로 단정 지으려 하고, 형사들은 지나칠 정도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서울에서 전학 온 유진에 대해서도 모두들 거리를 두고 있다. 한편 기철은 여자 화장실에서 ‘몰래카메라’를 발견하고 그 범인이 의외의 인물임을 밝히는데.

일단 반전이 4~5번쯤 거듭되는 재미는 있다. 수연은 과연 어떻게 누구에 의해 실종됐으며 생사 여부는 어떠한지, 또 그렇게 만든 범인은 누구며 그 동기는 무엇인지 따라가는 스토리 라인은 흥미진진하다. 몇 번의 맥거핀을 통해 드러난 범인과 그 추악한 이면이 주는 놀라운 반전도 괜찮다.

유흥주점 간판이 야누스다. 그리스신화에 대응하는 로마신화에서 유일하게 없는 신이 바로 야누스다. 이곳에선 지역을 움직이는 모든 지도자들이 모여 은밀한 암거래를 한다. 바로 일상에서는 본분대로 사는 듯하지만 실제론 야욕에 눈이 멀어 불법과 무관심을 일삼는 동네 사람들의 은유다.

▲ 영화 <동네사람들> 스틸 이미지

그런 메타포는 영화 구석구석에 담겨있다. 인트로에서 기철이 차를 몰고 동네 입구에 진입할 때의 다리는 꽤 보기 좋지만 갑자기 타이어에 펑크가 난다. 밝은 풍광과 달리 다리 앞 광고판 위에는 수연을 찾는 전단지가 나붙어 있는데 낙서투성이다. 광고판은 금세 쓰러질 듯 아슬아슬하다.

견인차를 탄 기철이 기사에게 “동네가 조용하네요”라고 인사치레의 대화를 시도하자 기사는 묵묵부답으로 마치 기철의 존재를 묵살하는 듯하다. 금세 컷이 바뀌면 어두운 밤 암울하고 음습하면서도 고압적인 분위기의 다리 위로 상처투성이에 흐트러진 복장의 수연이 맨발로 터벅터벅 걸어온다.

기철은 학생들 대부분이 공격적이고 불친절한 데 대해 “이 동네 애들 왜 다들 화나있는 거야?”라고 투덜대고 전임 학생주임은 “여기 애들 순진하지 않아요”라고 충고한다. 유진은 위험에 처한 자신을 돕는 기철에게 “내가 아니라 선생님이 다칠까 그런 것 아녜요?”라고 색안경을 끼고 본다.

심지어 “그냥 선생님은 애들 돈이나 뜯고 다니세요”라고 극심한 적의를 보인다. 유진도 기철도 ‘동네 사람들’에겐 타인이자 주변인이었던 것. 그래서 교감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평평하게 사세요. 튀어나온 못은 망치를 불러요”라고, 후배 경찰 동수는 “외지인은 관여 안 하는 게 좋아요”라고 충고한다.

▲ 영화 <동네사람들> 스틸 이미지

심지어 기철을 위해 적금을 털어 학교발전기금(뇌물)을 마련해준 여동생은 “근데 오빠, 다들 그렇게 살아”라며 기철이 ‘현실적’으로 살아줄 것을 요구한다. 비현실적이고 비타협적이었던 기철을 깨우쳐주는 건 유진이다. “선생님, 나 타 컸어요. 이제 나이만 먹으면 돼요”라는 그녀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이 동네의 ‘어른’들은 죄다 어른스럽지 못하다. 천박한 자본의 논리와 추악한 이기심에 사로잡혀 진실을 못 보고 정의를 외면한다. 처연하게 비가 쏟아지는 땅바닥 위에 나뒹구는 수연의 얼굴이 담긴 전단지는 이 동네의 진흙탕보다 추한 욕심과 욕망에 의해 짓밟힌 동심과 파괴된 인권을 의미한다.

수연이 주점에서 ‘구름 속에 나비처럼 날던 지난날’이란 가사의 윤연선의 ‘얼굴’(1975)을 부르는 건 그녀가 매일 무심코 나비만 그리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유진이 그 이유를 묻자 “자유롭잖아”라고 답한다. 빨래 하나가 하늘로 나는 걸 유진이 안타까워하자 “그냥 날아가게 두자”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

병두가 계속 물을 마시는 것까지 포함해 현실에 찌든 사람들의 자유와 행복에 대한 갈망을 은유한다. 그건 관심과 무관심의 대립이다. 고립된 기철과 유진의 갈증이 찾는 건 사람들의 배려다. 결정적인 범행 장소의 주소가 어이없을 만치 허무하게 노출되는 건 좀 아쉽다. 99분. 15살 이상. 11월 7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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