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성난황소>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성난 황소’(김민호 감독)는 ‘범죄도시’만큼 단순한 재미를 준다. 도대체 한 해에 몇 편이나 출연하는지 다작의 확장이 궁금한 마동석(동철)의 이름에 식상할 법도, 한 편으론 믿음직스러울 법도 하겠지만 진선규보다 더 큰 존재감을 자랑하는 김성오(기태)의 절대적 악역이 반짝반짝 빛난다.

동철은 지수(송지효)와 결혼함으로써 거칠었던 과거를 청산하고 준법정신으로 착하게 산다. 친동생 같은 춘식(박지환)과 함께 수산시장에서 건어물 유통을 하며 건실하게 살지만 세상은 녹록지 못하다. 몇 차례 사업에서 계속 실패한 뒤 현재 월세 아파트에 살지만 빚 때문에 그것마저 날릴 위기다.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수는 노인복지관과 식당 등을 오가며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다만 세상 물정에 어두운 동철이 더 이상 사기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여느 때처럼 동철이 지수를 태우고 귀가하던 길에 고급 승용차가 동철 차의 뒤를 받는다.

운전자는 동철에게 사과하기는커녕 지폐를 뿌리며 무시한다. 이를 본 지수가 경찰을 부르겠다고 하자 뒷자리에서 기태가 내려 운전자를 심하게 폭행하며 사과한다. 며칠 뒤 엉망이 된 집에서 지수가 사라지고, 동철은 기태의 전화를 받은 뒤 춘식, 흥신소 곰 사장(김민재)과 함께 지수를 찾아 나서는데. 

▲ 영화 <성난황소> 스틸 이미지

영화는 비교적 가볍게 시작된다. 동철이 춘식까지 사기의 덫에 끌어들이는 맥거핀으로 웃음을 선사한 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지수에게 절절 매는 시퀀스를 세워 향후 벌어질 반전의 강도를 높이는 효과를 준비한다. 조합장, 새 사업을 연결해주는 선배 등 웃음을 주는 조연이 곳곳에 배치돼있다.

액션은 후반에 불을 뿜지만 중간 지점이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기태의 캐릭터 덕이다. 히스 레저의 조커가 연상되는 그의 광기는 아주 큰 흡입력으로 작용한다. 지수를 납치한 뒤 그는 동철에게 돈다발이 가득한 가방을 보낸다. 단순한 원한인지, 괴팍한 취향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는 성격과 직업이다.

경찰도 속수무책인 기태의 정체와 소재, 그의 부하들의 동선 등을 적수공권으로 파헤쳐 가는 동철의 ‘맨 땅에 헤딩’은 로드 무비적 구조에 미스터리 스릴러적 분위기로 재미를 준다. 적은 나를 잘 알지만 나는 적을 하나도 모른다는 상황적 공포는 액션인지 스릴러인지 장르가 헷갈릴 정도.

그래서 마치 ‘도장 깨기’식으로 기태가 있는 곳까지 다가가기 위한 섹션 통과하기 식의 컴퓨터 게임 같은 구조가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각종 범죄가 득시글거리는 세계를 파헤치면서 기태 조직의 단서를 찾는 구성인데 동철의 원맨쇼는 마동석이기에 현사실적이고, 김민재가 있어 웃긴다.

▲ 영화 <성난황소> 스틸 이미지

마동석의 굳어진 캐릭터는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다. 그래서 감독의 영리한 활용이 중요하다는 절대진리에 근거할 때 김민호 감독은 신인답지 않은 영민함을 발휘한다. 웃음기를 싹 빼고 오로지 ‘황소’처럼 뚝심으로 밀어붙이는 캐릭터로 설정했고, 대신 곰 사장과 춘식에게 그 임무를 맡겼다.

춘식과 곰 사장의 과장된 ‘활약’은 충분히 예측이 가능함에도 워낙 조연 경력이 풍부한 배우들인지라 다분히 웃긴다. 영화의 몰입도가 썩 괜찮은 건 마동석은 오로지 아날로그 액션에만 충실하면 그만인 단순함 덕이다. ‘범죄도시’가 비교될 수밖에 없는 건 ‘마동석-윤계상Vs마동석-김성오’ 구도 때문이다.

전작과 비교하면 마동석은 코미디와 명분의 군살을 빼고 오직 주먹과 순정에만 집중한다. 다소 과장된 괴물 형사 마석도와 달리 표정은 순수와 분노 두 가지가 거의 전부다. 더 큰 범죄를 잡기 위해 작은 범죄와 적당히 어울리는 마석도라면 동철은 오로지 지수만 사랑하자는 게 율법이다.

그렇게 평면적인 캐릭터이기에 마동석보다 오히려 더 두드러지는 배우가 김성오다. 평소 악역을 많이 맡긴 하지만 기태는 매우 특별한 캐릭터로 기록될 법하다. 그는 코마 상태에 빠진 아내를 온 정성을 쏟아 간호하는 한 남자를 TV 뉴스에서 보곤 굉장히 분노해 부하를 시켜 납치한다.

▲ 영화 <성난황소> 스틸 이미지

그리곤 그에게 돈다발을 던진 뒤 아내와 맞바꾸자고 한다. 의아해하던 남자는 기태의 얘기에 말려든다기보다는 돈의 유혹을 못 이기고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러자 기태는 비로소 굳어진 표정을 풀고 한바탕 호탕한 웃음을 쏟는다. 그는 인간의 가식이 싫었고, 돈의 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던 것.

마동석은 현실적인 ‘사람’이지만 동철은 영화 속 허구 인물이다. 그런데 김성오도 현실의 배우고, 기태 역시 기시감을 주는 현실적 캐릭터다. 기태는 가식에 치를 떨고 그로 인해 광기의 폭력성을 노출하지만 정작 자신이 가면을 썼다는 점에선 뉴스를 장식하는 엽기적인 재벌 및 정치인에 다름 아니다.

마동석의 아날로그 주먹질이 식상해질 즈음 꽤 볼 만한 카 체이싱이 펼쳐진다. 이 영화는 마동석 때문에 표를 끊었다 김성오에게 푹 빠진 뒤 문을 나설 땐 감독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지게 만들 것이다. 데뷔 감독답지 않게 상업영화로서의 장치와, 나름대로 메시지를 담는 구조를 썩 잘 안다.

엔딩 크레디트 뒤의 에필로그 신을 놓치지 말 것. 공포의 어두운 분위기는 언제 끝날지, 결론은 뭘지, 그 모든 부정적 불안은 비로소 웃음기를 되찾은 마동석의 보너스 신에 담겨있다. 수미상관을 담당하는 킹 크랩은 황소와 더불어 마동석의 메타포다. 115분. 15살 이상. 11월 22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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