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해리 포터’ 시리즈의 프리퀄 5부작 중 두 번째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데이빗 예이츠 감독)는 첫 번째 얘기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오묘하며 신묘하다. ‘해리 포터’나 전편을 못 봤든, 봤든 재미는 보장하지만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더 큰 재미를 놓칠 수 있으니 집중, 또 집중!

1927년. 미국 마법부는 뉴트(에디 레드메인)의 활약으로 잡힌 강력한 어둠의 마법사 그린델왈드(조니 뎁)에게 가혹한 죗값을 치르게 하기 위해 유럽으로 이송하는데 그린델왈드는 마법으로 간단하게 탈출한다. 그는 머글(비마법사)을 모두 죽이고 순혈 마법사만의 세상을 만들고자 세력을 형성한다.

그린델왈드에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적수는 호그와트의 덤블도어(주드 로)다. 이를 잘 아는 그린델왈드는 덤블도어를 제압하기 위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젊은 마법사 크레덴스를 찾는다. 크레덴스는 파리의 유랑 마법 서커스단에서 뱀으로 변하는 말레딕터스 내기니(수현)와 각별한 우정을 쌓는다.

뉴트는 뉴욕에서의 소동으로 영국 마법부로부터 출국금지령이 내려진 상태. 자신의 책을 주겠다는 티나와의 약속을 지키려 뉴욕에 가려고 금지령 해제를 신청하는데 마법부가 오러(강력계 마법 형사)의 수장인 그의 형 테세우스 밑에 들어가 크레덴스를 죽이라는 조건을 내걸자 이를 거부한다.

▲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 스틸 이미지

모든 정황을 속속들이 꿰고 있는 덤블도어가 뉴트 앞에 나타나 자신은 그린델왈드와 싸울 수 없는 속사정이 있으니 대신 나서달라고 부탁하고, 뉴트는 덤블도어의 속내가 뭔지 살짝 의심한다. 어느 편에도 서기 싫은 것. 뉴트 앞에 티나의 동생 퀴니와 그의 연인 제이콥이 나타나 결혼하겠다고 한다.

미국 마법부의 법은 마법사의 결혼을 금하고 있다. 이를 잘 아는 머글 제이콥은 퀴니를 사랑하면서도 결혼은 안 된다고 했지만 퀴니의 마법에 걸려 이를 망각한 것. 뉴트의 제안으로 퀴니가 마법을 풀자 제이콥은 제정신으로 돌아와 결혼에 반대하고 서운한 퀴니는 그린델왈드의 편에 서게 되는데.

하늘을 나는 세스트랄이 이끄는 마차를 탄 그린델왈드가 미국 마법사들을 모조리 제압하며 탈출하는 인트로는 이 영화가 133분간 어떤 스케일로 펼쳐질지 암시하듯 엄청난 비주얼을 자랑한다. 또한 거대한 세트는 고대 로마부터 중세 유럽까지 재현한 화려하고 신비로우며 장대한 스케일을 뽐낸다.

주인공이 워낙 많아 딱히 뉴트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없는데 3편의 얘기가 더욱 궁금해지는 끝부분까지 굳이 가지 않더라도 크레덴스가 향후 중심에 설 것이란 예측은 금세 가능해진다. 또한 비중은 그리 크지 않지만 테세우스라는 이름은 이 영화 일부가 그리스신화에서 영감을 얻었음을 암시한다.

▲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 스틸 이미지

테세우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클레스에 비견되는 최고의 영웅으로 조국 아테네를 괴롭히던 크레타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왕위에 올라 최강국으로 만들지만 일생에 걸쳐 모진 풍파를 만난 뒤 결국 불행한 죽음을 맞는다. 영화의 테세우스는 동생과 달리 권력에 붙어 출세한 관료다.

“어느 편에 설지 결정하라"라는 테세우스의 압박에 뉴트는 “아무 편도 아니다”라고 아나키스트임을 밝히지만 후반부엔 “어느 쪽을 선택할지 결정했다"라며 아리송한 답을 스스로 밝힌다. 이는 Credence의 ‘신빙성’, ‘사실이라는 믿음’의 뜻, 그리고 ‘테세우스의 배’라는 역설에 연결된다.

크레덴스는 아직 어느 쪽에 설지 결정하지 못했다. 당장은 내기니와 함께 자유를 찾는 게 급선무였고, 그걸 이루고 나자 일생의 숙원인 고아로 자란 자신의 뿌리를 알아내는 것이 남은 생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오직 믿을 건 가족뿐이라는 본질주의의 메타포일까, 아님 속성다발론일까?

마지막에 그린델왈드는 크레덴스의 정체성을 확실히 밝혀줌으로써 어느 편에 설지 갈등하던 그의 마음을 확고하게 잡아준다. 이는 파란만장했던 신화 속 테세우스의 일생을 연상케 한다. 제이콥으로 은유한 므두셀라 증후군은 크레덴스의 순교자 증후군의 암시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장수일까?

▲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 스틸 이미지

그린델왈드의 이론은 이념으로 갈라선 세계의 두 진영에 긴장감과 함께 협동심을 심어줌으로써 일촉즉발의 제3차 세계대전을 막기 위해 주요 도시를 파괴하겠다는 ‘왓치맨’의 오지만디아스의 세계평화이론과 유사하다. 마법사의 결혼을 금지하는 악법 하나만으로도 현 체제의 부조리는 분명하다는.

그러나 그의 눈동자가 짝짝이인 것은 그의 이론의 함정과 그의 이중적 내면세계를 확연하게 보여준다. 마법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선량한 사람을 몰살할 권한이 과연 어느 마법사에게 있다는 말인가? 아나키스트인 뉴트와 제도권과 근본적 자유주의자 사이에 적당히 걸친 덤블도어는 과연 현자인가?

아프리카에 대한 프랑스의 식민지 정책을 비꼬면서도 영국의 고지식한 오만과 겉치레를, 그리고 프로테스탄트의 후예라지만 결국 영국과 다름없는 미국까지 싸잡아 비난하는 통쾌함! 마지막에 아우렐리우스라는 이름이 거론되는 건 고대 로마의 역사가 어떻게 반영될지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과연 시리즈의 결말은 아우렐리우스를 계기로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한 로마제국과 같은 어둠의 세력의 승리인가, 아니면 그가 쓴 ‘명상록’의 ‘인간의 영혼도 세계의 영혼의 한 유출물에 불과하므로 죽으면 자연스레 그에 합쳐진다’라는 초월의 철학으로 갈 것인가? 12살 이상. 11월 14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