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김문 작가가 쓰는 격동의 현대사를 주도한 군장성들의 이야기]

▲ 사진=ktv 화면 캡처

5.16거사 모의 암호 ‘흐루시초프’

JP와 박정희는 1961년 초봄인 2월19일 대구에서 혁명결의를 했다. 출동병력이 필요했기에 한강 이북은 박정희가 젊은 야전장교를 포섭하고 한강 이남은 JP가 포섭하기로 하면서 혁명의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다음은 ‘김종필 증언록’에 나오는 내용이다.

청계천과 무교동 사이에 조흥은행 본점이 있었는데 인근에 ‘상수’라는 술집 하나가 있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으면 ‘상수’이지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으면 ‘수상’이다. 당시 소련의 수상인 흐루시초프의 직책을 거꾸로 읽은 것에 착안해 ‘상수’를 ‘수상집’으로 통했다. 유엔 총회 무대에서 구두를 벗고 연단을 두들기며 서방사회를 비난하는 연설로 꽤 유명해진 흐루시초프를 연상했던 것이다. 그래서 혁명에 가담할 젊은 장교들이 만날 곳을 얘기할 때 전화로 “거기 흐루시초프에서 보자”고 했다. 헌병대 감시망도 없어 안전한 곳이었다. 이곳에서의 가장 큰 성과는 포천에 있는 6군단 포병단을 끌어들인 것이다. 이 부대는 5.16때 제일 먼저 육본을 점령했다. 홍종철(洪鍾哲) 군단참모장을 비롯 구자춘(具滋春), 신윤창 중령 등이 참여했다. JP는 이들에게 처음에는 거사일을 4월19일이라고 귀띔했다.

“이 분이 우리를 이끌 분이다”

박정희 소장이 JP가 포섭한 혁명주체 앞에 존재를 드러낸 것은 4월7일이었다. 장소는 강상욱 중령의 장인이 운영하는 명동의 양명빌딩 옥상이었다. 이날 혁명주체 세력들은 대부분 모였다. JP는 박정희 소장을 소개하면서 “이 분이 우리를 이끌 분이다.”고 하자 ‘와!’하는 함성소리가 터져나왔다.

이어 박정희 소장이 말했다.

“구국의 순간이 왔다. 지금 이 나라를 구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 같이 살고 같이 죽자. 기회는 여러번 오는 게 아니다.”

간결함이 박정희 소장 다웠다. 이 날 약속된 동지는 모두 29명. 박정희 육사 2기를 비롯, 5기 4명, 8기 16명, 9기 4명, 그리고 간부후보 차지철 대위가 제일 낮은 계급이었다. 이 자리에서 혁명지도부가 구성됐다. 총지휘 박정희, 작전반 책임은 6관구 작전참모 박원빈(朴圓彬) 중령, 연락책은 오치성 대령, 그리고 행정반 책임은 육군본부의 이석제, 연락책은 강상욱 중령이 각각 맡았다. JP는 작전과 행정을 맡았다. 나이를 따져보니 평균연령이 35세이고 박정희 소장은 44세로 가장 많았다.

▲ 사진=ktv 화면 캡처

5.16거사는 그렇게 젊은 장교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움직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 박정희 소장과 JP는 그런 맹약을 맺으며 거사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그런 JP가 1968년 5월 모든 것을 내던지고 돌아섰으니 원망과 회한이 겹쳤을 것이다. 2년 뒤 그는 다시 정계로 복귀한다. 1970년 민주 공화당 총재 수석 상임 고문에 추대되고 1971년 3월 공화당의 부총재에서 5월 8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한 달 뒤 국무총리에 취임하여 국정의 쇄신을 위해 노력하고 박 대통령이 제창한 새마을 정신과 10월 유신의 뜻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1990년 2월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하여 출범한 민주자유당의 대표 위원이 되었다. 민자당에 있다가 탈당하여 1995년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의 총재로 취임하는 등 우리 현대사의 흐름에 굵직굵직한 자리에 있었다. 2004년 자민련이 총선에서 참패하면서 그는 정계를 떠났다. 당시 김 전 총리는 “정치는 허업(虛業ㆍ겉으로만 꾸며 놓고 실속이 없는 사업)”이라는 말을 남겼다.

“첫 만남, 나 박정희요”

JP는 박정희와의 만남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돌이켜보면 특별할 것도, 강렬할 점도 없는 짧은 만남이었다. 하지만 이후에 이르러 회상해보니 그 장면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나, 우리 둘이 처음 만난 장면 말이다. 육사를 8기로 졸업한 1949년 6월 나는 육군본부 정보국에서 장교로서 첫발을 디뎠다. 동기생 일곱이 정보국 전투병과에 배치됐다. 발령식때 정보국장이던 백선엽(白善燁)대령이 우리에게 말했다.

“너희가 신고 드릴 분이 한 분 더 있다. 작전정보실로 가서 인사 드려라.”

바로 옆 ‘작전정보실’이란 팻말이 붙은 작은 방으로 가서 인사를 건넸다.

“이번에 전투정보과에 배속된 신임 소위들입니다. 신고를 받으십시오.”

작전정보실장이란 타이틀을 가진 사내는 검은 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 검은 옷 탓이었을까. 참 키가 조그맣고 얼굴이 새까만 인상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계면쩍게 웃어보이며 말했다.

“나, 박정희요. 그런데 난 그런 신고를 받을 사람이 못돼. 거기들 앉게.”

악수를 나누고 잠시 의자에 앉았다. 박 소장은 “내가 사고를 당해 군복을 벗었다.”고 간단히 본인 소개를 했다. 이어 “육사를 우수하게 졸업한 장교들이라고 들었다. 환영한다.”며 짧은 대화를 나눴다. 군복을 벗고 정보국의 문관으로 일하던 그 분과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 김문 작가

[김문 작가]
전 서울신문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현) 제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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