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의 규격 규제와 홍길동술 [류충렬 칼럼]

류충렬 박사l승인2018.11.19l수정2018.11.19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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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류충렬의 파르마콘] 한국의 「주세법」에는 주류(酒類)의 규격(정의)을 세세히 열거하여 규정하고 있다. 주류의 종류별로 사용하는 원료, 첨가제, 여과방법, 심지어 숙성(저장)하는 방식까지 정하고 정해진 규격으로 만들어져야 해당 술로 분류되도록 하고 있다.

예들어 원료에서 맥주는 맥류(麥類), 홉(hop)을 사용한 술로, 청주는 쌀 또는 찹쌀을 원료로 만든 술이라고 정하고 있다. 얼마 전 한국의 어느 주류제조업체에서 쌀로 만든 맥주를 출시한바 있었다. 맛이나 색깔에서 맥주로 불리기에 충분해 보였으나, 원료가 쌀이라서 맥주가 아니라 청주가 되어 버렸다. 따라서 주세법(별표)에서 정하고 있는 주류의 규격을 벗어나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술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주류의 규격 중에서 위에서 예들은 원료에 관한 규격은 일면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원료 이외에 다른 곳에 있다. 현행 주류규격이 제조기술과 방법까지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규제하여 새로운 기술과 방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들어 보자.

먼저 현행 주류규격에서 술의 숙성은 오직 ‘나무통에 저장한 것’만을 규격으로 정하고 있다. 맥주, 과실주, 증류주 등 만약 숙성을 하려면 나무통에서만 해야 한다. 특히 숙성과정이 필수인 위스키(whisky), 브랜디(brandy)는 오직 나무통에 저장한 경우만 위스키와 브랜디라고 규격을 정하고 있다. 따라서 나무통이 아닌 방법으로 저장(숙성)한 술은 현행 「주세법」에서 모두 홍길동술이 되어 버린다. 만약 홍길동술이 되지 않으려면 정해진 방법만으로 제조하여야 한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기술, 새로운 재료의 사용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인류가 술의 숙성에 나무통(오크통)을 주로 이용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크통은 인간이 개발한 뛰어난 숙성방법이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유일무이한 기술은 아니다. 최근 스테인리스(stainless)통에 오크칩 또는 오크바를 넣어 숙성하는 기술이 개발되어 확산되고 있다. 그럼에도 현행 규제(주세법 별표)에서는 오크칩 숙성은 ‘나무통에 저장한 것’이 아니므로 위스키나 브랜디로 분류되지 못한다. 홍길동술이 되거나 아니면 이것 저것도 아닌 그냥 ‘기타주류’로 분류되어야 한다. 몇 년전 오크칩(또는 오크바)방식을 허용하자는 규제완화 논의도 있었으나 결국 주세법에 막혀 홍길동술이 된다는 문제에 부닥쳐 버렸다.

주류의 여과방법에서도 지나치게 제한적인 규격이 많다. 예들어 증류식 소주, 일반증류주의 여과방법에서 ‘자작나무 숯’으로 여과하는 것만을 규격으로 정하고 있다. ‘자작나무 숯’이 아닌 다른 숯으로 여과하는 경우는 증류주가 아닌 것이다. 그 밖에도 특정한 열매(노간주나무 열매), 특정한 첨가방식 만을 규격을 정한고 있는 경우도 많다.

과연 주류의 규격을 특정한 원료, 특정한 재질, 특정한 기술, 특정한 방법까지 일일이 규제하여야 하는가? 지나치게 재료, 기술방법까지 규격으로 규제하면 더 나은 술이 탄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새로운 재료, 새로운 기술로 더 나은 술을 만들 수 있도록 주류의 규격기준부터 포괄적인 네거티브 방식으로 개선을 기대해 본다.

한국의 주류산업, 일제 강점기부터 진입을 억제하고 통제 위주로만 취급되어온 대표적인 규제산업이다. 세계적인 명품 술 하나 없는 한국 주류산업의 현실에는 그간의 규제가 큰 원인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 류충렬 박사

[류충렬 박사]
학력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박사
경력 2013.04~2014.01 국무조정실 경제조정실장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민관합동규제개혁추진단 단장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
국무총리실 사회규제관리관
한국행정연구원 초청연구위원
현) 국립공주대학교 행정학과 초빙교수

류충렬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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