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후드>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후드’(오토 바서스트 감독)는 12세기 잉글랜드 셔우드 숲을 근거지로 활약한 문학상의 의적 로빈 후드를 모티프로 하는데 앞서 널리 알려진 케빈 레이놀즈의 ‘로빈 훗’보다 진지하고, 리들리 스콧의 ‘로빈 후드’와는 시선이 다르다는 점에서 일단 재해석 혹은 리부트로서의 자격은 갖췄다.

노팅엄의 귀족 록슬리 가문의 20살 철부지 로빈(태런 애저튼)은 마구간에 말을 훔치러 숨어든 평민 마리안(이브 휴슨)과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이후 그는 아버지가 물려준 대저택에서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지만 록슬리의 재산을 노린 주 장관의 십자군 입대 통지서 한 장으로 행복이 깨진다.

4년 후. 아라비아 전쟁터에서 그는 흑인 적군 존(제이미 폭스)의 칼에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동료의 도움으로 살아난다. 로빈의 전우의 칼에 의해 왼 손목이 잘린 존 앞에서 기스본 대장은 그의 아들을 처형하려 하고 인류애 넘치는 로빈이 이를 막으려 저항하다 기브슨의 화살을 맞고 쓰러진다.

그렇게 로빈은 불명예 제대자로, 로빈은 포로로 노팅엄에 압송된다. 돌아온 로빈은 장관에게 전 재산이 몰수된 채 폐허가 된 집 앞에서 망연자실한다. 장관과 교회는 백성들의 재산을 숟갈 하나까지 갈취하는 중이다. 로빈은 스승 같은 수사 터크를 찾아 마리안이 광산에 있음을 알고 찾아간다.

▲ 영화 <후드> 스틸 이미지

노동자들에게 배식을 하는 마리안을 발견한 로빈이 다가서는 순간 평민 정치가 윌과 다정하게 입을 맞추는 광경을 보곤 발걸음을 돌린다. 그때 그를 잡아채는 손이 있었으니 존이었다. 마리안에 대한 실망감과 장관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로빈에게 존이 전투기술을 가르치며 혁명에 앞장서자고 한다.

그렇게 전사로 거듭난 로빈은 밤에는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강제 징수한 세금과 교회가 부정 축재한 재산을 훔친 뒤 낮에는 록슬리 경으로서 장관 앞에 나타나 큰돈을 성큼 세금으로 납부해 환심을 산다. 더 나아가 그는 후드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장관에게 현상금으로 거금을 내놓기까지 하는데.

자본가와 기득권은 ‘로빈 후드 효과’ 혹은 ‘로빈 후드의 법칙’이란 용어를 퍼뜨렸다. 부의 재분배를 통해 부자의 재산을 빈자들에게 나눠줄지라도 그들의 가난은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전체 자본만 축난다는 논리로서 얼핏 ‘공유지의 비극’과 연계되지만 사실과 다른 보수 기득권의 이기주의 논리다.

이 영화는 정확히 그 이율배반의 맥을 짚고 흐른다. 후드가 장관과 교회의 재산을 빼앗아 백성들에게 나눠주지만 그들의 퍽퍽한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당장의 기아만 해결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무지해서가 아니라 그럴수록 권력의 수탈이 더욱 심해지기 때문이다.

▲ 영화 <후드> 스틸 이미지

그래서 후드와 존은 백성들을 설득한다. 부당한 착취로 최고의 권력을 노리는 기득권 세력에 맞서 싸우는 혁명으로 노동의 대가와 인권의 자유를 획득하자는 것. 왠지 어디서 많이 봐온 플롯이다. 로빈 후드의 정체는 여러 설이 난무하는데 17세기 혁명가 가이 포크스와 많이 닮았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모델이다. 정체를 가린 후드의 모자는 바로 포크스의 가면과 같다. 이를 놓고 후드는 마리안에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선을 토로하고, 마리안은 철딱서니 로빈이 아니라 후드가 진짜 그의 정체성이라고 충고한다. 마리안의 “무슨 변장이 그렇게 허술하냐”라는 유머도 있다.

권력화된 기독교 세력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정치와 결탁한 종교는 더 이상 신성할 수 없다. 존이 활 솜씨가 시원찮은 로빈에게 “뭔 실력이 예수의 재림처럼 늦냐”라고 핀잔을 주는 식이다. “공포는 신의 무기고 안의 가장 강력한 무기. 교회가 지옥을 만들었다"라는 대사는 소름 끼친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뿌리가 같음에도 서로 갈등한다. 역사의 큰 전쟁은 거기서 비롯됐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를 비꼬기도 한다. 장관은 존에게 “네 선지자의 거짓말 덕에 너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지”라고 그의 용기를 폄훼한다. 이에 존은 “인샬라(알라가 원한다면)”로 맞선다.

▲ 영화 <후드> 스틸 이미지

빌런인 장관을 통해 장관이 추구하는 권력욕과 사리사욕을 비판하는 장치는 통쾌하다. 그는 어릴 때 귀족이 운영하는 유치원에서 자랐는데 그 귀족으로부터 학대를 당했다고 어린 시절의 아픔을 털어놓는다. 그가 폭정을 하는 비겁한 변명이지만 비뚤어진 권력의 폐해가 세습된다는 메시지는 훌륭하다.

물론 허점도 있다. 우선 윌이 사사로운 감정에 출렁이는 나약한 정치인이란 점이 아쉽다. 로빈이 혁명의 선봉에 서는 계기가 자신을 십자군에 보내 마리안과 전 재산을 잃게 만든 장관에 대한 복수심과 분노라는 점은 무척 서운하다. 만약 그런 충격이 없었다면 그가 혁명을 꿈꾸기나 했을까?

그럼에도 재미는 충만하다. 인트로의 아라비아 전투 신은 웬만한 현대 중동전쟁 신보다 더 스펙터클하고 스피디하게 전개된다. 특히 마차 추격 신은 ‘벤허’를 연상케 할 정도로 박진감 넘친다. 액션의 대부분이라 할 궁술 전투 시퀀스는 계속 거듭되지만 그럴수록 다음 시퀀스가 기다려질 정도다.

로빈 후드는 실존 인물이라는 확증은 없지만 존재했으리라는 심증은 가는 존재자다. 이는 우리에게 소설로 널리 알려진 홍길동과 같은 맥락이다. 구전되는 바로 그 인물은 아닐지 몰라도 혼탁한 세상에 혁명가는 반드시 필요했고, 또 실존해왔다는 자유와 인권의 얘기다. 116분. 12살. 28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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