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거미줄에 걸린 소녀>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10대들이 거액을 보유한 눈먼 노인을 우습게 여기고 재산을 털기 위해 그의 집에 들어갔다가 엄청난 공포를 겪게 되는 얘기를 담은 뛰어난 스릴러 ‘맨 인 더 다크’를 연출한 페데 알바레즈의 최신작 ‘거미줄에 걸린 소녀’는 매우 스피디하고 스타일리시한 첨단 디지털 액션 스릴러다.

16년 전 스톡홀름. 러시아 출신 범죄조직 두목 아버지를 둔 리스베트(클레어 포이)와 카밀라(실비아 획스) 자매는 쌍둥이답지 않게 다르다. 카밀라는 괴물 같은 아버지에게 친근하지만 리스베트는 꺼리더니 결국 홀로 도망친다. 현재. ‘악의 심판자’라 불리는 천재 해커가 된 리스베트는 해결사로 일한다.

겉으론 명망 높은 사업가지만 사실 아내와 매춘부들을 무차별 폭행하는 한 중년 남성을 처단한 후 전 재산을 아내에게 물려준 일로 다시 한 번 매스컴에 대서특필된 리스베트는 과학자 프란스로부터 그가 개발해 NSA(미 정보국)에 판매한 전지전능한 프로그램 파이어 폴을 되찾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리스베트가 NSA 시스템에 침투해 파이어 폴을 훔쳐 가자 요원 에드윈(라키스 스탠필드)은 스톡홀름으로 날아가지만 공항에서 SAPO(스웨덴 안보경찰) 요원들에게 연행돼 ‘관광만 하라’는 경고를 받는다. 리스베트의 아파트에 괴한들이 침투해 파이어 폴을 훔친 뒤 건물을 폭파한다.

▲ 영화 <거미줄에 걸린 소녀> 스틸 이미지

리스베트는 CCTV에 찍힌 거미 문신이 돋보이는 범인의 사진을 출력해 친구인 밀레니엄 매거진 기자 미카엘(스베리르 구드나손)에게 주며 도움을 청한다. 미카엘은 리스베트의 도움으로 여러 번 특종을 함으로써 자신과 잡지사의 명성을 높인 데다 그녀의 정의로움을 알기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파이어 폴을 열려면 암호를 풀어야 하기에 리스베트는 범인들이 프란스를 찾아갈 것을 알고 그의 안전 가옥에 CCTV를 설치한 뒤 드디어 범인들이 나타난 걸 알고 출동하지만 눈앞에서 프란스가 살해되고 그의 아들 아우구스트가 납치되는 걸 목격한다. 아우구스트가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던 것.

미카엘은 범인들이 스파이더스라는 무시무시한 범죄조직의 일원이란 걸 밝혀 리스베트에게 알려준다. 조직의 수장은 카밀라. 파이어 폴을 탈취했고, 프란스 등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걸로 오인돼 SAPO와 NSA의 추격을 받는 리스베트는 과연 파이어 폴과 아우구스트를 안전하게 되돌릴 수 있을까?

총 10부작으로 기획됐던 ‘밀레니엄’ 시리즈는 작가 스티그 라르손이 3부 원고를 넘긴 뒤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했지만 출간 후 전 세계 독자를 사로잡으며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영화는 후속 작가 다비드 라게르크란츠의 동명의 4부를 원작으로 하는데 군더더기가 없다는 게 상업영화로서 강점이다.

▲ 영화 <거미줄에 걸린 소녀> 스틸 이미지

소녀 리스베트가 언덕 위의 집에서 몸을 던져 탈출하는 앞부분과 끝의 또 다른 추락이 마치 ‘와호장룡’의 용(장쯔이)의 낙하 시퀀스를 연상케 한다. 이탈이자 일탈이다. 현재의 앞부분에서 리스베트가 둥근 유리 창가에 몸을 구부리고 앉는 것은 자신은 거듭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카밀라의 다른 길도.

자경단으로 인해 오히려 치안이 혼란스럽다는 스톡홀름에서 밀레니엄이란 탐사 매거진이 각광받는 건 21세기 안에서도 또 새로운 시대가 도래 중이라는 은유다. 자매의 아버지가 사이코패스인 게 그리 신기하지 않은 시대와 “시간은 우리를 태우는 불”이라는 대사는 미래가 밝지 못하다는 연장선이다.

리스베트의 애완동물이 도마뱀인 건 그녀가 지혜(처신술)가 뛰어나고 행운을 믿는다는 의미다. 전투능력이 뛰어나고 침범하지 못하는 시스템이 없는 게 증거다. “죽은 아버지는 과거. 과거는 블랙홀. 그래서 아버지를 생각하면 기억이 사라질 테니 생각 안 한다"라는 말은 자매의 시간과도 연결된다.

리스베트가 흑발에 검은색 복장을 고집한다면 카밀라는 백색에 가까운 금발에 빨간 의상으로 일관한다. 이런 극과 극의 대비는 영화의 주제인 불안, 관심, 구원을 포함한다. 불안은 일반적으로는 위험 경고 신호로서 두려움과 동일시하지만 심리학자와 철학자들은 좀 다르게 본다.

▲ 영화 <거미줄에 걸린 소녀> 스틸 이미지

프로이트와 라캉에 따르면 특정 대상에게 느끼는 공포와 달리 대상의 부재에서 느끼게 되는 정동(밖으로 드러나는 감정)이다. 하이데거는 더 나아가 현존재가 자기를 개시하는(열어 보이는) 정상성(기분에 젖어있는 상태)의 근본적 현상으로 봤다. 카밀라의 불안은 아버지의 관심으로 일시 해소됐다.

그러나 그녀가 진정으로 원한 건 리스베트의 관심이었고, 그로 인한 구원이었는데 그게 이뤄지지 않자 아버지와의 관심으로 또 다른 괴물이 된 것이다. 프로이트와 니체의 생물학적 삶을 극구 찬양하고 이성과 정신을 평가 절하한 실증주의적 생철학이 강하게 발산된다. 도마뱀의 생존의 꼬리 자르기.

람보르기니와 마세라티가 질주하고 꽁꽁 언 호수 위를 모터 사이클로 내달리는 시퀀스 등은 눈을 호강하게 해준다. 물론 액션은 그런 비주얼보다 더 뛰어나다. "경찰이냐"라는 질문에 “경찰보다 나쁜 기자”라는 대답과 “전쟁광 미국”이라는 표현은 불건전한 미소가 절로 ‘씨익’ 떠오르게 만든다.

마주한 건물의 외벽에 설치된 같은 층고의 엘리베이터를 통해 바라보는 남녀의 시퀀스부터 북유럽의 스산하면서도 고풍스러운 특유의 분위기를 즐기는 맛도 썩 좋다. 오블리크 앵글과 회전 앵글, 현악기의 긴장감과 관악기의 혼란스러움까지도. 117분. 15살 이상. 11월 28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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