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도어락>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현실 공포 스릴러 영화라는 수식을 달고 있는 ‘도어락’(이권 감독)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생기는 공포 중 하나인 1인 가구라는 형태에 의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두려움을 다룬다. 외출 후 돌아오면 아늑하고 따뜻해야 할 집이 누가 침입한 듯 어두우면서도 싸늘한 냉기까지 뿜어낸다면?

은행 계약직 사원 경민(공효진)은 안전 및 편의성 때문에 봉천동의 한 오피스텔로 옮겼으나 매일 아침 온몸이 찌뿌듯하다. 은행에선 같은 처지의 후배 효주(김예원)와 친하게 지내는데 계약 연장 혹은 정규직 전환을 위해 은행이 내놓은 상품을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데 힘쓰자고 약속한다.

어느 날 밤 누군가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다 안 열리자 거칠게 손잡이를 다루는 걸 느끼고 겁에 질린다. 잠시 후 문을 열어보니 담배꽁초가 있어 경찰에 신고하지만 경찰은 사건이 벌이진 게 아니라는 이유로 무시한다. 은행에서 뭔가 불만이 있는 듯한 고객 기정(조복래)과 시비가 붙는다.

야근 후 늦게 퇴근하는데 버스 정류장에서 기정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강제로 끌고 가려 한다. 때마침 나타난 김 과장(이천희)이 구해준 뒤 오피스텔까지 태워준다. 잠시 후 차에 지갑을 두고 갔다며 김 과장이 문을 두드린다. 호수를 가르쳐준 적이 없는 그녀는 뛰쳐나와 경찰을 부른다.

▲ 영화 <도어락> 스틸 이미지

출동한 이 형사(김성오)가 문을 열자 김 과장은 싸늘한 시신으로 변했다. 이 형사는 경민이 지인과 모의해 김 과장을 죽인 뒤 피해자인 양 꾸몄다고 의심한다. 효주는 당분간 자신의 집에 묵으라고 권유하지만 경민은 성급히 이사를 준비하면서 경찰에게 기정의 존재에 대해 알리는데.

인트로는 한 젊은 직장여성의 출근부터 퇴근을 압축해 훑는다. 수많은 독신 여성이 얼마나 위험에 노출돼있으며 피해를 입는지, 이 사회와 국가는 그녀들의 안전에 얼마나 무관심하고 불친절한지 생생하게 알린다. “사건이 터져야 접수를 받는다”라며 경민의 호소를 무시하는 경찰이 대표적이다.

현대 사회는 사생활 보호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구석구석에 CCTV가 설치돼있지만 정작 필요한 곳에 기능이 없는 장식용만 있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걸 꼬집는다. 언론과 평단으로부터 ‘매우 무섭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같은 현실 가능성 때문이다.

공포의 농도로만 따진다면 지난여름 흥행에 성공한 ‘목격자’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누구나 느끼는 엘리베이터 공포부터 이웃이 누군지도 모르는 삭막한 현 세상의 풍토를 다루며, 있지도 않는 남자의 신발과 속옷 등을 집안 곳곳에 전시해놓아야 하는 독신 여성의 사투 같은 처절한 생존을 어루만진다.

▲ 영화 <도어락> 스틸 이미지

영화는 혼자이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려는 독신 여성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을 비판하는 듯 냉담하게 경민을 3인칭의 시각에서 바라본다. 깊은 밤, 정체불명의 한 남자가 익숙하게 양치질과 샤워를 하고 욕실 정리까지 한 뒤  경민의 옆에 눕는다. 잠시 후 알람 소리에 남자는 일어나 집을 나선다.

관객은 그를 ‘남자친구인가?’라고 가볍게 생각하겠지만 이 시점은 기계적 작동만 하는 CCTV와 다름없다. 사람이 관심을 갖고 점검하지 않으면 뒤에 쌓이는 화면 때문에 자동적으로 지워져버리고 마는. 관객은 스토리가 흐를수록 그 남자가 범인임을 알게 되면서 온몸을 휘감는 공포심에 전율할 것이다.

경민이 잠들면 침대 밑에서 기어 나오는 범인은 일본 공포영화라면 떠오르는 ‘링’과 ‘주온’의 느낌을 준다. 장르적 공식대로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해가는 재미는 기본이고, 뭣보다 귀신이나 좀비 같은 판타지 요소의 비현실이 아닌, 어디선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 무서운 정황성은 엄청나다.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 연출력도 썩 봐줄 만하고 맥거핀과 반전이라는 형식에 충실한 원칙주의 역시 믿음직스럽다. 경민의 주변 사람은 물론 경민마저 의심해야 하는 사건 전개의 상승곡선 속에 빠져드는 재미도 괜찮고, 무거운 전체 분위기의 긴장된 근육을 이완시켜주는 효주의 활약도 의외의 재미다.

▲ 영화 <도어락> 스틸 이미지

다만 뒤로 갈수록 액션이 과한 건 흥행을 의식한 약간의 무리수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숱한 공포물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온 집에서 제일 무서운 건 침대라는 흔한 소재조차 새로운 공포로 활용하는 솜씨는 높이 살 만하다. 매트리스 하나로 나뉘는 안식과 두려움의 이질 공간!

경민을 의심했던 이 형사가 사과하며 “저희가 의심하는 직업이잖아요”라고 해명하는 시퀀스는 경찰에 날리는 통쾌한 쓴소리다. 사건이 터졌다 하면 항상 뉴스 말미의 리포터의 코멘트는 ‘초동수사 미흡’이다. 경찰이라면 의심이라는 기준에서 초동수사부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충고다.

“진짜 화나는 건 범행을 보고도 겁나 외면한 나”라던 경민이 후에 “친구한테 나쁜 일이 생기면 앞뒤 잴 게 아니라 몸부터 움직이는 것”이라며 양심과 용기와 행동이란 소신을 펼치는 건 무관심을 슬로건으로 내건 고대 그리스 스토아 학파도 아니면서 무관심과 이기심을 착각하는 현대인에 대한 일갈이다.

소리로 더 큰 공포심을 유발하는 구태의연함을 벗어나 단지 분위기와 개개인의 감정을 알리는 음향효과로서의 기능에만 충실한 사운드는 과하지 않아 몰입도를 높여준다. 공효진의 연기야 두말할 필요 없고 조복래의 서늘한 연기는 많이 회자될 듯하다. 102분. 15살 이상. 12월 5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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