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의 날’과 ‘죽어도 좋아’의 인과율 [유진모 칼럼]

유진모 칼럼니스트l승인2018.11.30l수정2018.12.03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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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국가부도의 날>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국가부도의 날’(최국희 감독)이 개봉 이틀째인 지난 29일 누적 관객 수 50만 2008명을 기록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KBS2 수목드라마 ‘죽어도 좋아’는 전작 ‘오늘의 탐정’ 마지막 회 2.1%의 2배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선전 중이다. 두 작품은 전혀 다르지만 닮았다.

40대 중후반 이하의 연령층에게 ‘평생직장’이란 말은 어색할 것이다. 비정규직, 연봉협상, 고용 재계약, 해고 등의 단어가 익숙할 것이다. 말로는 정규직이라지만 매년 연봉을 조정한 근로계약서를 새로 작성해야 하고, 어느 날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으면 무기력하게 짐을 싸야 하는 게 요즘 노동자다.

하지만 40대 후반 이상에겐 그게 더 낯설다. 그들이 대학을 졸업한 뒤 푸른 꿈을 품고 정상적인 회사에 입사할 때만 하더라도 ‘이 회사에서 정년퇴직하리라’는 희망과 열정과 애사심으로 가슴이 부풀었었다. 그런데 갑자기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졌다. 그 답은 바로 ‘국가부도의 날’에 있다.

1997년 말 김영삼 정권 말기. 외국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데 정부는 경제 호황이라고 연일 거짓말을 쏟아낸다. 나라가 부도 날 위기에 처하자 정부는 비공개 비상대책팀을 꾸리고 IMF(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결정한다. 일정 부분의 나라 지분을 내주더라도 부도만은 피하자는 것.

▲ 드라마 <죽어도좋아> 스틸 이미지

그 결과는 ‘죽어도 좋아’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무대는 대기업 MW푸드 계열사 MW치킨. 왜 치킨 프랜차이즈 기업인지는 답이 나와 있다. 요즘 가장 흔한 외식사업이 치킨집이다. 대규모 치킨 프랜차이즈 기업의 대리점을 향한 ‘갑질’과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우롱이 연일 뉴스를 장식한다.

마케팅 팀장이었던 백진상(강지환)은 팀원들의 팀장 평가에서 0점을 받아 폐업 위기에 처한 한 대리점 매니저로 전보 조치를 받는다. 예전에 다른 회사 신입사원 시절 그가 잘못을 폭로해 퇴사케 만들었던 동기 유시백(박솔미)이 이 회사 새 전략기획본부장으로 입성한 뒤 보복성 인사를 감행한 것.

그런데 진상 역시 둘째를 임신한 워킹맘 최민주(류현경) 대리, 진상에게 바른말을 하며 진심으로 좋은 상사가 되기를 바라는 이루다(백진희) 대리, 그룹 회장의 총애를 받는 손자임을 숨긴 강준호(공명) 과장, 능력은 부족하지만 성실하고 착한 가장 박유덕(김민재) 과장에게 잔인한 악덕 상사였다.

팀 내 서열 2위인 박 과장이 극도의 자괴감을 느낄 만큼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건 일상다반사였다. 웬만하면 진상에게 대들고 ‘더러워서 안 다닌다’며 사직서를 던질 만도 했건만 박 과장은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다. 아내에게 ‘회사 그만두고 치킨집 차릴까?’라고 하소연하는 게 전부다.   

▲ 영화 <국가부도의 날> 스틸 이미지

육아와 살림까지 책임져야 하는 최 대리가 지각을 밥 먹듯 하자 “첫째에 이어 둘째까지, 최 대리 참 애국자야. 애사심도 그 반만 따라갔으면 좋으련만”이라고 비아냥댄다. 더 나아가 “지난 5년간 지각한 시간을 합치면 하루는 될 테니 연차를 하루 깎겠다”라며 은근히 퇴사를 압박하기까지 한다.

꾸며낸 드라마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1997년 이전에 이런 드라마가 나왔다면 과장된 코미디였을 것이다. 그러나 ‘죽어도 좋아’는 타임 루프를 소재로 멜로와 버무린 샐러리맨들의 ‘리얼 예능’이다. ‘아니꼽고 더러우며 치사하지만’ 죽기-살기로 책상을 지켜야만 하는 이 시대 샐러리맨의 참극이다.

IMF의 구제금융을 받음으로써 우리나라는 미국(그리고 그와 결탁한 정부와 대기업)에 전시작전권에 이어 ‘항시경제권’을 내줬다. 정부는 모든 경제논리를 재벌 편에서 셈하고, 노동자의 생명줄은 썩은 동아줄쯤으로 여긴다. 대다수가 잘 몰랐던 그 과정을 현실감 있게 펼쳐내는 게 ‘국가부도의 날’이다.

짜고 제작, 배급, 편성했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아주 다른 두 작품이지만 이렇게 평행이론 혹은 나비효과를 보여준다는 게 참으로 희한하다. ‘국가부도의 날’의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이 왜 정부가 IMF의 손을 잡는 걸 극구 말렸는지를 현재의 노동환경의 처절한 비명이 잘 알려준다.   

▲ 드라마 <죽어도좋아> 스틸 이미지

두 작품은 모처럼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각별하게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녀들을 괴롭히는 안타고니스트가 남자라는 데서 매우 현실적이다. 시현과 사사건건 부닥치는 재정국 차관(조우진)은 “여자는 이렇게 감성적이어서 고위직에 없는 거야”라고 대놓고 여자를 폄훼한다.

‘국가부도의 날’에서 결국 시현이 차관에 패배하는 데 반해 ‘죽어도 좋아’는 좀 결이 다르다. 진상이 최 대리에게 대놓고 여성성을 비하하자 루다는 “나라에선 낳으라고 지랄이지, 회사에선 일보다 애가 중하냐고 염병이지, 뭘 어쩌라는 건데?”라고 진상에게 통쾌하게 쏘아붙인다. 여성의 주권 찾기다.

진상은 제대로 ‘진상노릇’을 해서 주목받고 루다는 시원하고 통쾌하게 진상에게 바른말을 해서 사랑받는다. 대한민국 모든 대리나 과장들이 팀장이나 부장의 뒤통수에 대고 마음속으로만 했던 반발과 울분의 반항을 루다는 대놓고 쏟아낸다. 그 비결은 그녀의 성격과 더불어 타임 루프 덕이다.

젊은 세대는 ‘죽어도 좋아’를 ‘트렌드려니’ 하고 보겠지만 그게 사실은 정권이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결과라는 걸 알아야 왜 노동단체들이 ‘정규직 전환’ 등의 최소한의 생존권 보장을 외치는지 본질을 꿰뚫을 수 있다. 판타지도, 액션도, 좀비도 없는 ‘국가부도의 날’이 스릴러로서 각광받는 이유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유진모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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