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사람들 간의 따뜻한 정을 그리기로 유명한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베일리 어게인’에게 배정된 상영관과 횟수가 안타깝다는 관객들에게 그가 시각효과의 거장 조 존스턴과 공동 연출한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은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한 선물이 될 듯하다. 게다가 크리스마스가 코앞이다.

크리스마스이브. 소녀 클라라(매켄지 포이)는 언니 루이스, 남동생 프리츠와 함께 아버지로부터 세상을 떠난 엄마 마리가 마지막으로 남긴 선물을 받고 뜯어본다. 루이스는 엄마가 가장 아끼던 옷을, 프리츠는 호두까기인형을, 클라라는 핀 텀블러를 각각 받는다. 그런데 그걸 열 황금열쇠가 없다.

아버지는 클라라의 대부 드로셀마이어(모건 프리먼)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하자고 하고 클라라는 내키지 않지만 억지로 길을 나선다. 아버지는 함께 춤을 추자고 하지만 클라라는 따로 드로셀마이어를 만난다. 텀블러 겉에 D라는 이니셜이 있었기 때문. 대부는 자신이 마리에게 준 선물이라고 밝힌다.

파티 끝 무렵 드로셀마이어가 손님들에게 선물을 주는 이벤트가 열리고 자신의 선물이 끝에 있을 한 줄을 따라 움직이던 클라라는 어두운 공간을 지나 신비한 크리스마스트리의 숲에 도착한다. 그리고 진짜 거대한 트리와 그 나뭇가지에 걸린 황금열쇠를 발견하지만 마우스링크스가 훔쳐 간다.

▲ 영화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 스틸 이미지

생쥐를 쫓아 한참을 헤매다가 호두까기 군인 필립 대위를 만난다. 필립은 그녀가 이 왕국을 건설하고 지켜주던 마리 여왕의 딸임을 알고 이곳이 4개의 왕국의 입구임을 알려준다. 두 사람은 생쥐의 뒤를 쫓던 끝에 마더 진저(헬렌 미렌)가 지배하는 4번째 왕국까지 갔다가 혼비백산해 탈출한다.

그 후 엄마가 지배했던 궁성에 필립과 함께 입성한 클라라는 사탕왕국 섭정관 슈가(키이라 나이틀리) 등 3명의 섭정관 및 백성들에게 크게 환대를 받는다. 오래 전 마리가 4개의 왕국을 건설하고 장난감 인형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뒤 그곳에 살게 만들었는데 마더가 탐욕에 불타 전쟁을 일으킨 것.

마더에 대적하기 위해선 마리가 발명한 엔진으로 군대를 만들어야 하는데 생쥐가 가져간 황금열쇠가 있어야만 엔진을 구동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책임감을 느낀 클라라는 자신이 직접 열쇠를 되찾아오겠다고 나선다. 과연 그녀는 마더가 거느린 생쥐 마왕 등 각종 괴물들을 당해낼 수 있을까?

디즈니 영화를 믿을 수 있는 이유는 매번 예측을 깨는, 상상을 초월하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비주얼과 영화 전반에 걸쳐 흐르는 따뜻한 정서다. 손에 땀이 흥건하게 만드는 서스펜스는 있지만 빌런이 심하게 극악무도하지는 않다. 그들에게도 고뇌와 갈등은 있다. 그래서 ‘디즈니’는 항상 착하다.

▲ 영화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 스틸 이미지

이 영화는 대놓고 뉴턴 운동의 제3법칙인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주제로 내세운다. 클라라는 명쾌한 이유 없이 아버지와 엄발나고 아버지 역시 항상 어두운 얼굴이다. 루이스는 클라라에게 “다락에서만 지내지 말고 진짜 세상으로 나와”라고 충고한다. 아내와 엄마의 죽음에 대한 반작용이다.

아버지와 클라라는 그 아픔으로 인한 서로에 대한 감정의 작용과 반작용으로 그렇게 거리가 생긴 것이다. “크리스마스란 매년 오는 것”이라고 시큰둥한 클라라에게 아버지는 “가족의 전통을 지켜야 한다”고 설득한다. “왜 넌 네 생각만 해?”라는 아버지, “저도 아버지께 그렇게 묻고 싶었어요”라는 클라라.

이렇게 영원히 접점을 찾을 수 없는 선로처럼 팽팽하게 맞서던 그들을 끌어당겨주는 것은 클라라가 뜻밖의 여정을 통해 얻은 가족의 소중함이란 깨달음으로 되찾은 사랑이란 만유인력이다. “길을 잃은 듯해”라는 그녀에게 필립은 “내 위치를 알고 행복하다”라며 확신과 신념을 가르쳐준다.

왕국은 클라라의 세상보다 시간이 훨씬 빠르게 간다. 근대 런던의 클라라는 ‘체면만 중요하게 여기는’ 아버지가 강요하는 근엄한 가풍 속에서 스스로를 가두면서 성장이 더뎠다는 의미다. 그러나 왕국을 모험하며 급성장해 ‘부모는 모두 발명가고 자식은 모두 최고의 발명품’이란 걸 깨닫게 된다.

▲ 영화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 스틸 이미지

그 빠른 시간 속에서 그녀는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눈’을 갖게 됨으로써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내면을 키운다. 지금까지 엄마를 보고 싶어 하며 우울하게 지냈다면 이젠 ‘그리워함으로써 기억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미소 짓게 되는’ 숙녀로 서너 뼘 성장하는 것이다.

엄마의 마지막 편지의 문구 ‘너에게 필요한 건 안에 다 있다’는 바로 그런 가르침이다. 성장통을 겪는 모든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진로를 애먼 데서 묻지 말고 내면의 자아를 성장시킴으로써 깨달으라는 가르침이다. 뉴턴과 서로 미적분의 최초 발견자라고 다툰 라이프니츠도 엿보인다.

그는 세계는 자신 속에 전 우주를 표상하는 모나드로 구성돼 있고, 세계는 신의 예정조화로서 통일된다고 했다. 또 악의 존재조차도 선한 질서를 위해 필요하다고 변신론을, 낙관적인 합리주의를 표방했다. 그런 철학이 이 영화에 그대로 녹아있다. 클라라가 기계를 잘 고치는 건 그의 유물론적 기계론이다.

‘백조의 호수’와 ‘피터팬’(슈가의 날개=팅커벨)을 연상케 하는 미장센도 재미있다. 디즈니 자체의 홍보이자 차이코프스키의 3대 발레곡 ‘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속의 미녀’, ‘백조의 호수’를 암시하는 것. 말 이름이 징글스다. ‘베일리 어게인’과 함께 크리스마스 맞춤형이다. 99분. 전체. 12월 6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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