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 하나만 들어줘’, ‘디아볼릭’을 넘는 반전과 캐스팅 [유진모 칼럼]

유진모 칼럼니스트l승인2018.12.04l수정2018.12.1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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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다시 벨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스릴러 ‘부탁 하나만 들어줘’(폴 페이그 감독)는 가정주부를 통해 미국 사회를 풍자한다는 점에서 썩 세련됐다. ‘나를 찾아줘’ ‘서치’ ‘사라진 밤’ 등의 일정 부분이 연상되지만 매우 미국적이면서도 글로벌한 시각으로 미국 사회를 해부하는 점이 아주 영리하다.

스테파니(안나 켄드릭)는 교통사고로 남편과 오빠를 잃은 뒤 어린 아들 마일스와 둘이 산다. 인터넷 방송을 통해 자신의 요리 솜씨를 많은 누리꾼과 공유하는 취미생활로 외로움을 달랜다. 패션회사 중역 에밀리(블레이크 라이블리)는 대학교수 숀(헨리 골딩)과의 사이에 아들 니키를 두고 있다.

어느 날 에밀리가 스테파니에게 마일스와 친구인 니키를 잠시 봐달라는 부탁을 한 계기로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많이 다르지만 엄마로서, 또 여자로서 속내를 털어놓으면서 누구보다 친한 친구가 된다. 숀은 엄마 병간호로, 에밀리는 출장으로 멀리 떠나면서 또 스테파니가 니키를 맡는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에밀리가 안 돌아오고 소식마저 끊긴다. 숀에게 연락을 취하고 경찰에 실종신고를 한다. 5일 뒤 경찰의 추적에 의해 호수 밑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장례식이 끝난 뒤 스테파니와 숀은 눈이 맞고 살림을 합친다. 어느 날 니키가 엄마를 봤다고 하고 스테파니도 그녀의 전화를 받는데.

▲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 스틸 이미지

금발의 에밀리는 게르만족을, 흑발의 스테파니는 헬라족을 각각 연상케 한다. 숀은 아시아 계통이다. 세 사람은 다인종 다민족으로 이뤄진 미국 사회 구조의 간단한 상징이다. 미국은 프로테스탄트의 퓨리턴과 그들을 내쫓은 가톨릭을 등에 업은 영국 찰스 1세의 지지를 받은 볼티모어 경으로 시작됐다.

두 주부는 그 아이러니의 상징이다. 어느 모로 보나 성공한 슈퍼맘과 소박한 싱글맘은 미국의 양면성이다. 도심 번듯한 건물 안에 널따란 자신의 사무실을 갖고 CEO의 절대적 신뢰를 받으며 종횡무진 활약하는 에밀리는 엘리트 남편과 자존감 강한 아들과 함께 으리으리한 대저택에서 살고 있다.

집의 너른 패션 룸 안에 화려한 의상들과 이멜다가 안 부러운 고급 신발들을 전시한 채 사는 에밀리에 비해 스테파니는 초라한 월세 집을 전전한다. 나름대로 차려입은 에르메스 스카프에 갭 티셔츠의 부조화는 곧 이복 오빠와의 부적절한 관계 때문에 깨진 그녀의 언밸런스한 인생을 은유한다.

사람은 야생동물과 달리 일부러 비밀을 만들고 간직한다. 다민족에 50개의 자치주로 구성돼 프로테스탄트 정신과 화합을 강조하며 가족의 중요성과 전통을 사랑한다지만 실제로는 인종차별과 천박한 자본주의의 논리가 인간성을 피폐하게 만드는 미국의 내부를  그렇게 파헤치는 구조는 서늘하다.

▲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 스틸 이미지

숀은 중남미 노략질로 ‘해가 지지 않는’ 유럽의 강자가 된 스페인에 맞서 영국이 침략한 인도를 상징한다. 유럽의 동양에 대한 신비주의가 낳은 오리엔탈리즘이기도 하다. 동양 남자가 유럽 여성을 매료시키는 할리우드의 보기 드문 시퀀스는 표리부동한 미국 내 정서와 실생활을 의미한다.

그래서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말라는 메시지가 영화 내내 흐른다. 그 장치는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적 재미를 관객들이 충분히 즐길 만한 단초를 제공한다. 신비함이 넘치는 에밀리, 단순한 듯하지만 속내를 알 수 없는 스테파니, 지적이지만 뭔가 숨긴 듯한 숀의 캐릭터는 장르와 잘 어울린다.

스테파니가 숀에게 대놓고 “지금 ‘디아볼릭’ 찍냐”고 항의할 정도로 샤론 스톤과 이자벨 아자니 주연의 ‘디아볼릭’이 떠오르는 건 사실이다. 심지어 수영장과 호수라니! 하지만 그건 오마주 혹은 맥거핀이란 걸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그래서 끝까지 모든 등장인물을 의심케 만든다.

보험 사기라는 흔한 소재 역시 헷갈리게 만드는 장치다. 그게 트릭이란 건 쉽게 알겠는데 왜 등장했는지 따라가게 만드는 흡인력을 쏠쏠하게 발휘한다. 드디어(!) 숀의 화려한 저택에 ‘정식으로 입성’한 스테파니가 에밀리의 패션 룸을 접수한 뒤 블랙 드레스를 입었다가 벗는 데 쩔쩔매는 시퀀스는 심오하다.

▲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 스틸 이미지

소위 ‘아메리칸드림’을 외치는 미국인과 미국인이 되고픈 사람들의 저급한 자본주의 의식을 비꼬는 것. 미국이 자유와 해방의 나라라고 하지만 사실 그 어느 곳보다 자본에 얽매인 노예제도가 심하다는. 검정 드레스는 ‘베놈’의 심비오트다. 능력과 성공을 향한 자본주의에의 항복이 가져온 굴종과 구속.

그걸 못 벗어 쩔쩔매던 스테파니가 과감하게 가위로 잘라내 탈출(?)하는 시퀀스는 향후 벌어질 드라마의 방향을 암시한다. 에밀리가 스치듯 뇌까렸던 “힘 있는 놈들한테는 큰소리를 쳐야 (이겨)”라는 대사를 스테파니가 그대로 받아들여 ‘권력자’의 손아귀에서 당당하게 벗어나는 시퀀스와 맞물린다.

“암보다 외로움으로 죽는 사람이 더 많을 듯”이란 대사 역시 현재 미국이 처한 화려함의 이면 뒤에 숨은 어두움을 잘 대변한다. “어떤 애들은 날 때부터 글러먹어”라는 한 노파의 자조 섞인 독백 역시 마찬가지. 그걸 미국, 혹은 미국인의 태생적 한계를 표현한 은유라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배경음악에 있다. 널리 알려진 미국의 팝 넘버와는 거리를 둔 채 전 유럽적이다 못해 슬라브계와 아랍계까지 넘나든다는 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각 시퀀스와 소재가 좀 어수선하긴 하지만 두 여주인공의 절묘한 캐스팅이 모든 걸 상쇄한다. 117분. 청소년 불가. 12월 12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유진모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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