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모어 댄 블루>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타이완 멜로 영화 ‘모어 댄 블루’(린샤오켄 감독)는 다분히 한국적이다. 모든 게 인스턴트화된 현대사회에서 과연 이런 사랑이 남아있을까 의문이 들 만큼 답답하고 한숨이 절로 나오는 구조이지만 그게 가슴 절절한 슬픔을 자아내는 건 인간의 본성에 본능을 앞서는 인간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음반제작사 직원 장저카이(리우이하오)와 작사가 쑹위안위안(천이한)은 동거 중인 묘한 관계다. 16살 때 쑹은 사고로 부모를 잃은 뒤 같은 학교의 어두운 얼굴을 한 장을 본다. 장의 아버지는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에 충격을 받은 엄마는 전 재산을 물려준 뒤 장의 곁을 떠났다.

동병상련의 두 사람은 첫눈에 서로의 가슴에 각자의 둥지를 튼다. 쑹은 대뜸 “너네 집에서 같이 살고 싶다”고 제안하고 그렇게 둘은 가족이 된다. 같은 대학에 진학하고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쑹은 자신은 크림으로, 장은 케이로 이름을 붙인다. 케이가 입사한 음반사에서 크림은 작사가가 된다.

아이돌 가수 보니의 새 음반에 크림의 가사가 채택되지만 일부 단어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보니와 크림이 충돌한다. 그날 저녁 집에 들어온 케이는 담요를 뒤집어쓴 채 울고 있는 크림을 보고 달래준다. 결국 보니와 크림은 화해하고 크림의 가사가 들어간 곡이 타이틀곡으로 결정된다.

▲ 영화 <모어 댄 블루> 스틸 이미지

사실 케이는 아버지의 백혈병이 유전돼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 길어야 1년이다. 하지만 크림에게 이 사실을 철저하게 숨긴 채 살고 있다. 두 사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걸 깨달은 보니는 크림에게 어떤 사이냐고 묻는다. 이 순정파들은 아직 진한 키스조차 하지 않은, 뽀뽀만 한 관계다.

케이는 크림에게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게 제 소원이라고 고백한다. 케이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크림은 친구의 동창생인 치과의사 유셴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케이가 보니의 매니저에게 유셴의 뒷조사를 부탁했더니 사진작가인 신디라는 약혼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자유분방하다.

다른 남자와 만나는 사진을 찍어 유셴에게 보내고 유셴과 신디는 크게 다툰다. 케이는 거금을 들고 신디 앞에 나타나 유셴과 헤어져달라고 부탁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러자 케이는 자신은 1년도 못 사는데 사랑하는 크림이 좋은 남자와 결혼하는 걸 보고 죽고 싶다고 고백한다.

신디는 마침 ‘죽음과 시한’을 테마로 작품전을 준비 중인데 자신의 모델이 돼준다면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역제안을 한다. 유셴과 신디는 이별을 하고 유셴은 크림에게 청혼한다. 그렇게 크림은 마음에도 없는 결혼식을 준비하고 케이는 그녀의 드레스를 함께 골라주며 자신의 죽음에 다가서는데.

▲ 영화 <모어 댄 블루> 스틸 이미지

케이와 크림은 모든 게 완벽하다. 케이가 시한부 인생이란 것만 빼면. 유셴과 신디는 모든 게 불완전하다. 부유한 치과의사와 예술을 추구하는 사진작가라는 외양은 흠잡을 데 없지만 철저한 계약관계다. 그래서 유셴은 “우린 사랑이 아니라 습관”이라고, 신디는 “내 성공의 절반은 유셴”이라고 말한다.

케이-크림, 유셴-신디 커플을 앞세운 건 사랑 혹은 결혼의 실상과 허상, 진정성과 목적성을 말하고자 함이다. 크림의 소원을 묻는 질문에 케이는 “네가 좋은 남자랑 결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크림은 “좋은 남자는 어떤 사람”이냐고 묻고 케이는 “직업과 돈이 있고 오래 사는 사람”이라고 답한다.

신디는 모든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여건을 갖췄다. 성적 매력이 충만하다.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유셴 역시 지적이고 다정다감하니 남편감으론 최상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계약직’ 약혼관계다. 유셴은 가난한 작가의 활동을 위한 자금을 대주고, 신디는 사랑 대신 다른 걸로 그를 충족시킨다.

사실 케이와 크림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크림의 의도였다. 가족을 잃고 마음의 문을 닫은 채 살던 크림은 “살아있는 게 가장 큰 슬픔”이라고 뇌까리던 케이를 한눈에 알아보고 먼저 접근했다. 그리곤 도발적으로 “네 집에서 함께 살면 안 돼”라고 다가와 두 사람을 가뒀던 외로움이란 문을 열었다.

▲ 영화 <모어 댄 블루> 스틸 이미지

유셴과 신디는 케이와 크림을 통해 진정한 사랑이란 뭔가, 결혼은 언제, 왜 해야 하는지, 혹은 왜 굳이 할 필요가 없는지를 배운다. 크림은 왜 자기에게 다른 남자와 결혼하라는지 묻고, 케이는 늙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좋은 남자가 있어야 한다고 답한다. 크림은 “그럼 너”라고 말한다.

그건 영화를 내내 관통하는 “사랑이 설명이 가능하다면 그것 때문에 아픈 사람은 없다”라는 대사와 직결된다. 케이는 사랑이 소유가 아닌 소여(사유에 앞서 주어져있는 인식)라는 걸 보여준다. 사랑의 대상으로 인한 나의 만족이 아니라 나로 인한 상대방의 행복이 최선이라는.

그래서 케이는 자신의 병을 끝까지 숨긴다. 일반적으로는 보상심리 때문에라도 마지막 가는 길에 크림의 보살핌을 받으려 하겠지만 그는 수혜가 아닌 소거를 택한다. 그걸 돕는 이는 그를 통해 사랑의 참된 명제를 깨달은 신디다. 그녀는 유셴과 헤어지는 조건으로 케이의 유품을 요구한다.

케이가 자신의 모든 걸 크림에게 남겨줄 것이라고 거부하자 “그녀가 너를 잊기 원한다면 유품을 남기는 건 모순”이라고 충고한다. 상처투성이에 미래가 결여된 케이와 크림이 외형적 조건이 완벽한 신디와 유셴에게 가르침을 준다는 구조는 사랑의 아이러니와 닮았다. 106분. 12살. 12월 12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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