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스윙키즈>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스윙 키즈’는 ‘과속스캔들’ ‘써니’ ‘타짜-신의 손’을 모두 제치고 강형철 감독의 대표작으로 당분간 기록될 만큼 재미, 드라마, 메시지, 캐릭터들이 탄탄하다. 이 영화는 역사고, 뮤지컬이다. 오락물이자 교양서적이다. 온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향락이자 가슴이 미어지는 비극이다.

한국전쟁 끝자락. 실질적인 결투 세력인 미국과 중국은 서로 자신들의 포로수용이 제네바협정에 따라 인도적으로 잘 이뤄지고 있다고 여론몰이용 언론플레이 대결을 하는 중이다. 미군이 통제하는 거제도 포로수용소엔 북측 군인을 비롯해 중공군까지 도합 14만여 명의 포로가 살고 있다.

이곳은 소위 ‘제3의 전쟁’이라는 포로들 간의 전쟁으로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김일성을 맹종하는 급진파와 자본주의의 달콤함에 취해 전향의 의지를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 잔류파가 언제 사투를 벌일지 모를 초긴장 상태인 것. 소장은 부하들에게 수용소의 평화를 지킬 아이디어를 재촉한다.

진급에 혈안이 된 소장은 브로드웨이 출신 흑인 병사 잭슨에게 곧 있을 미국 기자단 방문 및 크리스마스 공연 때의 홍보를 위해 포로들로 탭댄스팀을 구성하라고 지시한다. 인근 마을 처녀 판래(박혜수)가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하다며 통역 ‘알바’를 제안하고 잭슨은 아예 팀에 영입한다.

▲ 영화 <스윙키즈> 스틸 이미지

오디션을 통해 수용소 내 최대 말썽꾸러기 기수(도경수), 북측 민간인이지만 피난 중 북측 군인으로 오인을 받아 체포되며 헤어진 아내를 찾을 일념으로 가담한 병삼(오정세), 덩치는 우람하지만 의외로 몸놀림은 유연한 중공군 샤오팡(김민호) 등이 더해져 5명의 팀 ‘스윙 키즈’가 결성된다.

기수는 형 기준과 함께 북한군 사이에서 전설로 통할 만큼 투철한 사상으로 전쟁터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따라서 수용소 안에서도 급진파들의 정신적 지주다. 그런데 그는 소련 전통춤을 누구보다 잘 춘다. 그런 자신감으로 잭슨에게 춤 대결을 신청했다 탭댄스의 매력에 푹 빠진다.

어느 날 기준이 수용소에 이송돼오자 긴장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한다. 수용소엔 북측의 지령을 받는 지도자가 암약 중이고 미군 내엔 북측 첩자가 있다. 기준의 등장으로 잔류파는 물론 미군까지 쓸어버리자는 움직임이 암암리에 진행되고 기수는 춤에 대한 열정과 강요된 사상 사이에서 흔들리는데.

이 영화는 3단계로 나누어져 있다. 첫째 음악과 춤의 버라이어티는 가장 큰 무기다. 3년간의 선곡과 1년간의 창작 끝에 완성된 춤의 조화는 정말 눈과 귀를 호강시켜준다. ‘보헤미안 랩소디’와는 또 다른 차원의 감동을 줄 뿐만 아니라 자동 반응으로 온몸이 들썩여지게 만드는 강력한 흥분제 역할을 한다.

▲ 영화 <스윙키즈> 스틸 이미지

정수라의 ‘환희’를 배경으로 스윙 키즈와 미군이 벌이는 댄스 배틀, 데이빗 보위의 ‘Modern love’ 아래의 기수와 판래의 진흙탕에서의 질주하는 춤, 베니 굿맨의 ‘Sing sing sing’과 스윙 키즈의 하이라이트 무대 등은 뮤지컬 영화가 얼마나 관객을 열광시키는지 절정의 카타르시스로 입증한다.

둘째 유머다. 누가 봐도 뚱뚱한 샤오가 영양실조고 심장이 안 좋다. 기수와 미군 빌런 맥코이는 서로 잡아먹을 듯 으르렁거리는데 그 갈등구조 자체가 코미디다. ‘써니’의 박진주가 마을 ‘노는 언니’들의 리더로 등장해 미군들을 희롱하는 시퀀스와 기수를 따르는 북한 소년의 시퀀스는 매우 통통 튄다.

셋째 비극이다. 아시아의 패권을 노리는 중공과 아시아의 전진기지를 구축하려는 미국 사이에 끼인 한반도. 소위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권력욕 때문에 국론을 가르고 민심을 교란시켜 열강의 패권 싸움에 꼭두각시가 돼 생긴 참극. 동족상잔이라는 어마어마한 참사는 포로수용소라고 비껴가지 않는다.

주인공들이 바라는 건 단순했다. 강당에서 홀로 피아노를 치며 외로움과 설움을 달래던 잭슨은 스윙 키즈를 통해 고독과 절망의 배출구를 찾았다. 기수와 샤오는 그냥 춤이 좋았고, 판래는 배가 고팠다. 병삼은 그저 유명해지면 오매불망하는 아내를 찾을 수 있으리란 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 영화 <스윙키즈> 스틸 이미지

그 구조의 종착역은 이데올로기의 허상이란 메시지다. “여기선 공산주의건 자본주의건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춤추는 게 중요해”라는 대사 안에는 이 영화의 수많은 울림이 농축돼있다. 사람의 존재방식은 생존이고, 행복의 방정식은 자기만족에 있다. 종교나 이념의 강요는 분쟁과 파멸의 씨다.

고대와 중세의 종교전쟁은 근대부터 이념전쟁과 자본전쟁으로 전이됐다. 마을 사람들이 이방인인 병삼 아내를 빨갱이로 몰아가는 시퀀스와 “지나가던 개도, 키우던 닭도 빨갱이 만드는 게 이 나라”라는 대사는 결코 과거가 아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걸 ‘틀리다’고 말하고 생각하는 과거의 망령.

그건 인종차별, 여성차별로 이어진다. 잭슨은 “우리나라에선 흑인 자체가 사고”라고 자조하고 판래는 “우리나라의 여자는 더해”라고 추임새를 넣는다. 이 영화는 이렇게 밝음과 어두움, 절망과 희망, 오락과 고뇌가 공존하는 영리한 이항대립의 테크닉을 발휘해 관객의 지루함을 끝까지 억류한다.

칼질 소리, 빨래방망이 두들기는 소리, 이불 터는 소리까지 음향효과로 활용하고, 주변의 잡다한 소품까지 미장센과 악기로 승화시키는 솜씨는 매우 훌륭하다. ‘스타워즈’의 신화부터 무협지의 ‘도장 깨기’ 구조까지 갖춘 얼개도 아주 촘촘하고 도경수는 큰일을 했다. 133분. 12살. 12월 19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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