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여정. 영화 '워킹걸' 스틸.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이쯤 되면 ‘냄비근성’이란 말이 결코 과하게 들리지 않는다. 한번 분위기를 타면 들불처럼 화르르 일어났다 언제 그랬냐 싶게 잠잠해지는 특유의 바람몰이. ‘빚투’가 연예스타의 도덕성을 검증하거나 훼손하고 있는데 ‘미투’가 권력의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경종을 일으킨 것과는 좀 다른 양태다.

연예인의 부모에게 돈을 빌려줬거나 유사한 도움을 줬지만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는 폭로와 고소가 줄을 잇고 있다. 팩트 자체야 과할 것도, 이상할 것도 없다. 다만 모든 걸 떠나 미필적 고의로, 혹은 고의적으로 연예인을 강박하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은 아닌지 모두의 침착한 고민은 필요하다.

‘빚투’에 거론된 연예인 대다수의 대리 변제 의무는 없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그 액수는 해당자의 이름‘값’에 비교하면 해결이 그리 어렵지 않다. 이미 갚았거나 갚는 중인 이도 있다. 문제는 이미지로 먹고사는 연예인이란 점을 채권자가 감안했는지, 그리고 사안에 대처하는 연예인의 태도다.

해당 연예인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건방형’과 ‘사과형’이다. 연예인은 정치인처럼 법리적인 검토와 법원의 판단에 앞서 외형을 고려해야 하는 직업이다. ‘건방형’은 이를 간과했거나 무시한 교만이 부추긴 우월감 탓에 그로기 상태고, ‘사과형’은 가래보다 호미로 막자는 예방의식으로 판정승했다.

언론이 통제되거나 스스로 정권과 재벌의 나팔수 노릇을 하는 매체가 있던 시절엔 여론조작이 흔했다. 현재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SNS에 익숙한 젊은이 대부분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비교적 객관적이고 날카롭게 비판적이다. 그들은 기세등등해 스스로 무덤을 판 연예인을 정확하게 분류해낸다.

‘건방형’은 위법 행위가 없었음에도 ‘자리’가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대중은 냉철하기에. 하지만 그 외 대다수의 연예인들이 ‘여론몰이법’에 따른 연좌제에 의해 희생되는 게 아닌지, 대중, 언론, 사법기관은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해당 연예인이 부모의 빚을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부차적 문제다.

우리나라는 유독 ‘누구의 누구’라는 혈연, 학연, 지연에 대한 집착과 과시욕, 그리고 기대는 심리가 강하다. ‘우리 집안에 국회의원 한 명은 나와야지’라는 식이다. 국회의원이 국민을 위해 봉사, 희생하는 자리라는 것도 모르고, 국민이 준 권력을 자신의 신분상승 및 이익에 이용하려는 문제적 망상이.

빚과 실질적인 관계가 없는 연예인이 노출되는 배경은 3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채권자가 직접 거론하거나, 언론의 취재 과정에서 발견되거나, 사법기관의 무의식적이거나 의식적인 ‘거론’일 것이다. 채권자의 경우 ‘오죽 답답하고 어려웠으며 또 채무자가 원망스러웠으면 그랬을까’라는 동정심은 든다.

▲ 마동석. 영화 '성난 황소' 현장 스틸.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궁여지책으로 나온 방법론일 수 있다. 문제는 사법기관과 언론이다. 만약 공명심이나 한탕주의가 사명감과 직분을 추월했다면 그건 법의 해석을 떠나 여론몰이에 의한 명예훼손 쪽에 가까워진다. 거론된 연예인이 입을 유무형의 피해만 놓고 볼 때 최소한 그렇다.

천 번, 만 번 채권자의 분노와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현재의 분위기는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사회가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워진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이 우려된다. 삶이 팍팍하면 대중은 심각한 사회적 이슈보다는 마음대로 거론해도 별 탈 없는, 접근성 좋은 연예계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바로 ‘칵테일파티 효과’다. 여야가 선거제 개혁과 내년 예산안 문제로 다투고,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중동문제 등으로 국내외가 시끄러워도 하루하루의 생계가 시급한 대중의 귀에는 연예계의 핫이슈, 특히 ‘빚투’가 유독 부각돼 들려온다. 파티의 소음 속에서도 성적 담론은 유독 귀에 쏙쏙 들어오듯.

만약 피해자가 의도적으로 연예인을 거론했다면 강화물(반응 확률을 높이는 자극)을 이용한 심리전이라는 의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이번 일로 미성숙한 인성이 드러난 연예인을 보면 일견 정적 강화인인 듯하지만 마동석 조여정 등을 보면 오히려 반대로 접근했어야 할 부적 강화인으로도 여겨진다.

다수의 인간에게 사회질서를 향한 최소한의 양심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있다는 걸 증명한 게 ‘최후통첩 게임’이다. 그걸 극대화한 ‘독재자 게임’에서도 여지없이 입증됐다. 채권자에 대한 동정심과 채무자와 ‘건방형’의 악의를 고려하더라도 그 심리학에 따르면 다소 과했다는 평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현재의 폭로전은 마녀들의 ‘발푸르기스의 밤’의 축제를 넘어서 무차별적으로 비치기까지 한다. 일부에선 슬기로운 지혜로 이성적 진리를 찾는 태도는 보기 힘들고 디오니소스적 광기만 넘친다. 물론 ‘건방형’은 본분에 대한 몰지각, 또 대중과 자신의 관계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스스로 무덤을 팠다.

하지만 연예인의 인기와 명예의 성장과 발전이 반드시 자아로부터 멀어지는 타협이나 대가를 치러야만 이뤄지는 건 아니다. ‘빚투’가 희한하게도 ‘드레퓌스 사건’처럼 대중의 정의와 진실을 찾는 능력을 고양시키고, 그걸 바탕으로 무고한 연예인의 인권 옹호를 향한 의지를 일깨워주고 있는 게 증거다.

필자는 연예인, 더 나아가 빚진 부모들을 옹호해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잘못을 따져 일벌백계해야 사회가 건강해지고 다른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본다. 또 ‘건방형’에 대해서는 연예계의 존폐를 가를 냉정한 필터링이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다만 ‘선의’의 피해자일지라도 없는 게 정의롭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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