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아쿠아맨>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아쿠아맨’(제임스 완 감독)은 매번 MCU에 자존심이 상했던 DCEU의 다크호스가 될 수 있을까? 일단 외형으로만 봤을 땐 그나마 호평을 얻었던 ‘원더우먼’에 비교해 훨씬 호화롭고 웅장하다. ‘스타워즈’를 넘어 폴리네이시안을 정복한 하와이, 뉴질랜드, 호주의 신화를 미국식으로 완성한다.

1985년. 아틀란티스의 공주 아틀라나(니콜 키드먼)는 정략결혼을 거부하고 육지로 도망친 뒤 등대지기 톰과 사랑에 빠져 아들 아서(제이슨 모모아)를 낳는다. 그러나 왕의 친위대가 나타나 위협하자 톰과 아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바다로 되돌아가 왕과 결혼해 세자 옴(패트릭 윌슨)을 낳는다.

현재. 벌코(윌렘 대포)는 겉으로는 옴의 오른팔이지만 사실 아틀라나의 충신으로서 그녀의 밀명을 받고 수시로 육지에 올라와 아서를 가르쳐 전사로 성장시켰다. 아서는 러시아 잠수함을 탈취한 해적 블랙 만타를 제압한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를 잃은 블랙 만타는 아서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운다.

옴은 환경을 파괴하는 인류를 멸절시키려 한다. 전쟁을 벌이려면 해저세계 7개국을 통합한 오션 마스터가 돼 군대를 소집해야 한다. 먼저 블랙 만타를 이용해 제벨왕국의 왕 네레우스를 포섭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옴과 정략결혼이 예정된 네레우스의 딸 메라(앰버 허드)는 몰래 빠져나와 아서를 만난다.

▲ 영화 <아쿠아맨> 스틸 이미지

옴을 물리치고 바다의 새 왕이 돼 해저세계를 지켜달라는 메라의 부탁을 거절했던 아서는 그러나 옴의 선제공격으로 해안마을이 초토화되고 그 와중에 익사할 뻔했던 아버지를 메라가 구조해주자 마음을 고쳐먹는다. 아직 부족한 그가 옴을 이기기 위해선 1대 왕 아틀란이 숨긴 삼지창이 필요하다.

삼지창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아서는 메라와 아틀란티스에 잠입하지만 옴의 심복에 의해 정체가 드러난다. 오래전부터 이부형의 존재를 알고 자신의 왕좌에 대해 불안해하던 옴은 아서에게 진정한 왕을 가르자며 결투를 신청한다. 벌코와 메라는 이를 말리지만 아서는 옴의 덫에 걸려드는데.

플라톤은 그의 시대보다 9000년 전에 첨단 문명의 세계가 존재했다고 적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거기서 0을 하나 빼면 크레타가 아틀란티스라고 주장한다. 감독은 아쿠아맨에게 포세이돈의 후예라는 정체성을 주기 위해 포세이돈이 아틀란티스를 창조했다는 플라톤의 이론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겼다.

아서가 진정한 바다세계의 왕이자 땅과 바다의 평화를 지키는 아쿠아맨으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는 플롯은 전형적인 무협지의 서사구조를 따른다. 고대 그리스-로마와 심해를 합치고 상상력을 더해 완성한 아틀란티스의 비주얼만으로도 값어치는 충분하다. 지구 끝 세계 역시 놀라운 진풍경이다.

▲ 영화 <아쿠아맨> 스틸 이미지

영화는 시작부터 대놓고 쥘 베른을 도입하고 TV를 통해 ‘해저 2만 리’를 보여준다. 그래서 심해의 전쟁은 마치 우주 공간에서 유영하는 전투를 연상케 한다. 서두에 베른을 통해 2척의 배를 거론한 건 완 감독이 말레이시아 출신이고, 폴리네이시안은 동아시아의 DNA를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폴리네시안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은 쌍동선이다. 영화는 내내 육지세계와 바다세계의 갈등 혹은 화합을 소재로 삼는다. 아틀라나가 “우리 세계에선 눈물이 씻겨나가지. 여긴 달라. 눈물을 느낄 수 있어”라고, 옴은 육지인들이 바다를 오염시키므로 전멸시켜야 한다고 전쟁의 이유를 대는 식이다.

이런 대립과 통합의 메시지는 외형적으론 이념, 민족, 인종 등의 구분이나 반목을 넘어서 지구촌이 하나가 돼야 한다는 평화의 구호다. 물론 미국, 호주, 뉴질랜드, 더 나아가 열강의 식민지 정책에 대한 프로파간다라는 의심이 드는 것을 피하긴 힘들다. 빌런 블랙 만타가 특히 그렇다.

그는 할아버지의 만타 단검을 물려받은 걸 매우 명예롭게 여긴다. 흑인 가족이 대대로 해적 두목을 해왔다는 설정은 살짝 불편하다. 그러나 최초의 문명인이랄 수 있는 아틀란티스와 폴리네시안의 혼혈인 아서가 아쿠아맨이 돼 육지와 바다를 잇는 가교이자 평화의 영웅이 되는 설정은 이를 상쇄시킨다.

▲ 영화 <아쿠아맨> 스틸 이미지

육지 사람들이 지구의 환경을 파괴한다는 내용은 저우싱즈(주성치)의 ‘미인어’ 등이 설파한 교훈의 맥락을 잇는다. 로마제국의 시조인 로물루스와 피노키오를 차용한 센스도 좋다. 순혈이 아닌 혼혈이기에 일찌감치 아틀란티스의 왕이 되길 포기한 아서는 생각은 인간이지만 몸은 인형인 피노키오다.

그가 메라의 도움을 받아 아쿠아맨이 되는 여정은 피노키오의 고행 과정과 닮았다. 힘과 지혜대신 의욕만 앞섰던 예전의 그는 나무인형에 불과했던 과거의 피노키오다. 그 후 메라와 고래 입속에 들어가 위기를 탈출하는 피노키오 흉내 내기를 거쳐 아쿠아맨으로 거듭난 건 피노키오의 인간화다.

‘왕은 나라를 위해 싸우지만 영웅은 세상을 위해 싸운다’는 메시지는 영화의 큰 스케일을 대변한다. 완 감독은 도시국가 연합인 그리스보다 제국 로마의 추종자인 듯하다. 시칠리아의 로마의 정치가들과 로물루스 왕의 석상을 통해 대놓고 크레타를 배제한 채 로마를 아틀란티스와 연관 지으려 한다.

각종 무기가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뜬금없이 두 주인공이 키스하는 옥에 티만 빼면 지금껏 빈 수레로 혹평 받은 ‘형’들에 비하면 매우 훌륭한 DCEU의 복병이다. DC 특유의 어두움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특히 아틀란티스 문명에 대한 접근법이 매우 신선하다. 143분. 12살 이상. 12월 19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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