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마약왕>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우민호 감독의 ‘마약왕’은 전작 ‘내부자들’보다 누아르적 색채를 더 진하게 띠며 암울한 시대를 더욱 풍자적으로 그린다는 점에서 좀 어렵다. 컬트적 분위기의 미술과 미장센이 그 효과를 극대화한다. 연극적 장치까지 강조돼 중반 이후 내내 어둡더니 끝부분에서 송강호의 초월적 연기가 방점을 찍는다.

박정희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크게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한 유신헌법을 통과시킴으로써 장기집권 시대를 연 1972년. 부산의 이두삼(송강호)은 사촌동생 두환(김대명)과 함께 밀수로 돈을 벌기 시작하고 아내 성숙경(김소진)은 불안해하면서도 기쁨을 숨기지 않는다.

두삼은 일본에서 조총련 소속 야쿠자 김순평을 알게 된다. 순평은 필로폰 재료를 한국으로 가져가 완제품을 제조한 뒤 일본에서 팔자고 제안하고 이를 받아들인 두삼은 한국 사업 파트너로 밀수업자 최진필(이희준)을 끌어들인다. 그가 가진 중앙정보부, 경찰 등의 인맥으로 단속에서 피하고자 한 것.

마약 제조의 일인자 백 교수를 스카우트해 본격적인 사업을 펼치고 두삼은 자신보다 우위임을 과시하던 진필과 갈라선다. 다시 그는 부산 조폭 성강파 두목 조성강(조우진)과 손을 잡는다. 성강은 고베 야쿠자 조직 야마구치 구미의 두목과 호형호제하는 사이였고, 그 인맥으로 사업을 확장한다.

▲ 영화 <마약왕> 스틸 이미지

두삼은 고위 공무원들과의 인맥을 바탕으로 정부의 대국민 프로파간다 자선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든다. 그 과정에서 로비스트 김정아(배두나)와 연인 사이로 발전하고 이를 알게 된 숙경이 두삼을 내쫓으며 이별을 선언한다. 한편 서울의 김인구(조정석) 검사가 아예 두삼을 지목하고 전근 오는데.

직소우의 ‘Sky high’로 시작해 쇼킹 블루의 ‘Venus’, 정훈희의 ‘꽃길’, 김정미의 ‘바람’, 아이언 버터플라이의 ‘In-a-gadda-da-vida’, 토미 제임스&숀델스의 ‘Crimson & clover’ 등 동시대 유행가에 슈베르트까지 더해 트랜지스터부터 고급 오디오에 실어 그때의 사이키델릭한 상황과 연결 짓는다.

사운드와 더불어 당시를 재현한 풍광부터 세세한 소품까지 비주얼에 들인 제작진의 노력이 진하게 와닿는다. 영화의 외형은 패러독스고, 그 중심을 관통하는 주제는 어긋난 욕망, 끝 모를 욕심이다. 박정희가 개인적 욕심 때문에 결국 부하의 총에 맞아 죽은 당시의 TV 뉴스가 대표적이다.

거리로 뛰쳐나와 울부짖는 다수의 국민 중 통곡하다 못해 기절할 지경인 한 중년 여인의 클로즈업이 눈에 띈다. 박정희는 그 당시 반공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데마고기로 혹세무민하고 자신을 신격화하는 데 성공했지만 결국 밤의 유흥을 함께할 만큼 믿었던 ‘친구’에게 사살됐다는 아이러니.

▲ 영화 <마약왕> 스틸 이미지

그도, 박근혜도, 그의 정권도, 그에게 놀아난 나라와 국민도 모두 도그마의 패러독스다. 그건 곧 마약에 ‘Made in Korea’라고 브랜드를 적어 수출(?)하며 산업의 역군으로서 수출 금자탑을 쌓았다고 자부하는 두삼이기도 하다. 그걸로 일제 강점기의 치욕과 상처를 보상받겠다는 그의 이론의 역설.

새마을운동에 앞장서고, 반공협회의 정기총회에 참석해 태극기를 흔드는 그는 “데모 때문에 나라가 어렵다”라고 애국심을 보인다. “청나라는 아편으로 망했는데 미국은 안 망하네”라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한다. “돈만 많은 게 딱 질색”이라더니 “돈은 아무리 먹어도 냄새가 안 난다”라는 정아의 이율배반도.

이별을 선언하며 “돈으로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는 게 아냐. 넌 욕심 때문에 망할 거야”라고 일갈하는 숙경은 그나마 정상적이다. 인구는 ‘내부자들’의 우장훈 같은 인물이다. “하루 종일 미싱을 돌리는 공순이 일당이 얼마인지 알아? 600원이야. 넌 10억 원씩 번다며?”라며 두삼의 죄를 따지는 정의.

그는 사안과 상황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두삼 같은 마약왕이 설칠 수 있는 건 그에게 검은돈을 받고 뒤를 봐주는 고위 공무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최종적으로 노리는 타깃이다. 이에 두삼은 “돈은 개처럼 벌어 정승 같이 쓰는 게 아니라 정승한테 쓰는 것”이라며 자신을 합리화한다.

▲ 영화 <마약왕> 스틸 이미지

“빽 없으면 이 나라에서 못 산다"라는 비뚤어진 지론을 가진 두삼을 인구는 “네가 안중근 의사냐?”라며 가르치다 못해 “피가 약보다 진할까?”라며 마약은 천륜마저도 깨뜨릴 수 있는 무서운 해악임을 깨우쳐준다. 그의 “빨갱이냐, 뽕쟁이냐, 둘 중에 골라”라는 제안은 당시의 매카시즘 광풍을 암시한다.

“질 때 깨끗해야 진짜 꽃”이라는 인구가 수사본부를 차린 곳은 수십 대의 미싱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공장이다. 노찾사의 ‘사계’가 삽입되진 않았지만 그 메시지를 담은 퍼즐이다. 왜? 경찰의 접선 암호가 재니스 조플린이다. 동시대 반전, 평화, 인권을 외친 히피 뮤지션의 여자 대표가 바로 그녀다.

마약에 절은 조우진, 남편에게 발악하는 김소진, 타락천사 배두나 등의 연기가 근래 보기 드문 그들의 마스터피스라면 송강호는 무대 위의 위버멘시(초월자)다. 배신하고 당하는 걸 반복하면서 마약상에게 가장 치명적인 마약을 투약하며 광기에 휩싸인 채 독백과 방백을 오가는 시퀀스는 메타 교과서다.

두삼은 허상에 속아 진정 소중한 것을 잃고 끔찍한 파국을 맞은 ‘리어 왕’이고, 모순의 ‘맥베스’며, 내면의 천사와 악마라는 극단의 존재들로 인해 갈등하고 고뇌하지만 결국 신의 구원을 받는 실존적 현존재인 ‘파우스트’다. 진실과 정의의 가치, 존재론에 대한 성찰! 139분. 청소년 불가. 12월 19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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