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스윙키즈>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스윙 키즈’(강형철 감독)가 오는 19일 개봉을 앞두고 예매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KBS2 ‘땐보걸즈’가 지상파 월화드라마 중 성적은 꼴찌임에도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른바 마니아 드라마의 외형이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은 거제도의 ‘루저’ 청년들의 춤에 대한 열정을 다룬다.

‘스윙 키즈’의 무대는 한국전쟁 중인 1951년 최대 규모의 거제 포로수용소다. 전직 브로드웨이 탭 댄서인 흑인 병사 잭슨(자레드 그라임스)은 새로 부임한 소장의 승진을 목적으로 한 명령에 따라 포로 로기수(도경수), 강병삼(오정세), 샤오팡(김민호), 마을 처녀 양판래(박혜수)로 댄스 팀을 꾸린다.

포로들은 자본주의의 달콤함에 취해 전향의 의지를 가진 무리와 더욱 사상을 불태우는 무리로 나뉘어 있다. 기수는 형 기준과 함께 후자 포로들의 최고의 전쟁영웅이다. 소련 민속춤에 일가견이 있는 그는 자존심 때문에 잭슨과 춤 대결을 벌였다가 탭 댄스의 매력에 푹 빠져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원수’ 미국제국주의의 산물인 탭 댄스에 빠지는 건 주체사상에 대한 정면 도전이기 때문이다. 잭슨은 인종차별로, 판래는 여성차별로 기수만큼 아프다. 전쟁통에 북측 군사로 오인 받아 체포되며 사랑하는 아내와 생이별을 한 병삼도, 중공군인 샤오도 상처를 안고 있지만 춤에 대한 열정만은 남다르다. 

▲ KBS 제공.

미국과 중국-러시아의 이념을 외형으로 한 패권 다툼은 한반도에 동족상잔의 비극을 야기했고, 결국 현재까지 허리가 잘린 이산가족의 진행형이다. 영화는 이념의 허상을 음악과 춤이라는 인간의 오성보다 본성에 반응하는 예술 혹은 샤머니즘적 모꼬지를 통해 인간성과 인류애의 회복을 부르짖는다.

방법론에서 떨어져 원초적 본능과 자연적 리듬의 애무에 감각적으로 접근하는 즉흥적 감성! 미국이든 중화인민공화국이든, 남측이든 북측이든 권력과 경제력이 야합해 제작한 이데올로기로 국민들을 미혹하게 만든 결과 수많은 사람들을 광기에 휩싸이게 해 결국 비극으로 내몰았다는 얘기가 서두다.

그러나 사람의 생존은 이념이 아닌 의식주에 기초하고, 실존은 서열과 복종이 아닌 자유와 평등에 의한 평화로 완성된다는 메시지가 결론이다. 여기에 동원되는 재료가 음악이고 춤이다. 타악기의 리듬과 구전가요, 그리고 그에 맞춘 춤은 인류의 오랜 땀이자 열정이고 활력소면서 환희라는 것.

‘땐뽀걸즈’의 무대는 거제여상 댄스스포츠 동아리 땐뽀반. 거제도는 한때 조선업의 호황으로 경제상황이 좋았지만 지금은 정반대. 학업성적이 우수했던 김시은(박세완)은 엄마의 강요에 의해 여상에 진학했다. 엄마는 아버지 사망 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지만 해고당한 뒤 일용직으로 일한다.

▲ 영화 <스윙키즈> 스틸 이미지

이웃 고교의 권승찬(장동윤)은 시은을 짝사랑해 고백하지만 보기 좋게 차인다. 내성적인 그는 무용을 전공한 엄마에게 배운 사교댄스가 제일 좋다. 그래서 시은의 춤 파트너로서 도와주는 게 춤에 대한 열정에 부합해 즐겁지만 그녀와의 관계는 자꾸만 꼬여간다. 사랑을 정리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시은이 친구들에게 외면당할 때 박혜진(이주영)은 유일하게 그녀를 품어준다. 그녀의 컬 크러쉬 스타일은 남들은 부모에게 어리광 부릴 때 할머니 밑에서 자란 아픔 때문에 생긴 자기방어기제로서의 방탄복이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필요한 건 자립심과 빨리 어른이 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여자는 여자다.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를 드라마로 재구성했기에 보편적 학원 드라마의 트렌드와 거리를 둔다. 성장 드라마인 건 맞지만 빈부로 인한 갈등이나 혈연의 비밀 같은 클리셰와 막장의 요소를 철저하게 배제한 채 ‘사실적’으로 그리는 데 주력한다. 그래서 매 시퀀스와 등장인물은 현실적으로 각인된다.

어른이 개입하지 않아도 청소년은 곧 어른이 된다. 학업성적 등 재능이나 노력에 상관없이 그 어른은 어쨌든 먹고‘는’ 산다. 경제가 쇠락한 섬마을의 상업여고생인 땐뽀반이 꾸는 꿈은 거창한 게 아니다. 그저 동아리 경연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으면 좋겠다는 것과 그게 예쁜 추억으로 남는 것이다. 

▲ KBS 제공.

타고난 재능에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통한 전문가의 교습 등은 언감생심인 그녀들이 댄스 스포츠로 먹고살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고 동아리 활동이 쓸데없는 시간 낭비일까? ‘스윙 키즈’가 춤의 오르가슴을 통한 차별 없는 세상이라면 ‘땐뽀걸즈’는 호흡을 맞춘 춤의 이해타산 없는 추억 만들기다.

스윙키즈와 땐뽀반의 멤버들은 처음엔 모래알이었다. 각자의 목적과 의식이 달랐다. 그런데 사람이 동물이면서도 동물과 다른 게 흥겨운 리듬에 뼈마디가 반응하고, 관능적 멜로디에 근육과 세포가 흥분한다는 걸 자신도 모르게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건 곧 동료와 동병상련이란 일체감의 화합을 이끌어낸다.

화면 전체에 걸쳐 흐르는 중추신경의 자극과 맥박의 충동은 스크린과 브라운관이란 매체의 차이점은 있지만 관객과 시청자가 느낄 감동 혹은 감정은 대동소이할 것이다. 약빠른 직관이냐, 굼뜬 이성이냐? 두 작품 속 주인공들은 음악에 처음부터 반응하지 않는다. 서너 마디 흘러야 엔도르핀이 솟는다.

어금지금한 주인공들은 오불오불 모인 오합지졸 같았지만 그건 정치와 경제 탓일 뿐 개성과 환경은 각자일지라도 평등한 인격과 인간적 감정은 한결같다. 춤을 통해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픔을 깨부수는 게 청춘’이라고 웅변한다. 신화와 전설의 춤이 신앙이던 원초적 시대로의 회귀와도 같은 정열!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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