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씨 11/9'에 나타난 미국 국내정치를 통해본 한반도 비핵화 전망 [이성우 칼럼]

이성우 정치학박사l승인2018.12.19l수정2018.12.19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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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화씨 11/9: 트럼프의 시대>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이성우의 세계와 우리] 마이클 무어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화씨 11/9’는 트럼프의 당선을 가능하게 했던 이유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는데,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이변이 일어나게 했던 국내정치 상황이 야기한, 트럼프 당선 이후 동아시아 및 한반도 전략에 대한 미국 외교정책의 전환의 특성을 파악하고, 2019년과 차기대선과 관련하여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대응을 논의해보는 것은 정책적 의미가 있다.

첫째, 미국 매스미디어의 총체적 문제이다. 미국 매스미디어의 상업성이 부른 참사라고 하지만 사실은 상업성의 배경에는 거대자본이 장악한 매스미디어 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는 미디어 주요인사의 문제가 총체적으로 종합된 것이다. NBC “더 보이스”에 출연한 그웬 스테파니가 “어프렌티스”에 출연하는 트럼프 자신보다 높은 출연료를 받는다는 사실에 항의하기 위해 장난삼아 대선 출사표를 던진다. 돈을 주고 엑스트라까지 동원해 지지자들인 것처럼 행세하도록 한 트럼프를 조롱하면서도 미국의 매스미디어는 시청률이 높다는 것 때문에 보도를 이어갔다. 결국 트럼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매스미디어가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을 지나면서 쇼가 현실이 되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미국 매스미디어의 고질적인 문제 한 가지를 더 지적하는데, 트럼프와 힐리러 후보를 인터뷰한 주요언론사의 언론인이 모두 성희롱 전적이 있는 남성이었다는 점이 남성에게 유리하고 여성에게 불리한 국면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미국 매스미디어의 문제는 트럼프 승리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 상황을 만든 촉발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 영화 <화씨 11/9: 트럼프의 시대> 스틸 이미지

둘째, 미국 정치에 정치후원금을 매개로 하는 정치엘리트의 구조적 문제이다. 민주당 대통령 오바마도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단적으로 드러난 사례가 미시건주 플린트 시의 수돗물 납중독 사태이다. 게이트웨이 컴퓨터 사장이었던 기업가 출신 공화당 소속의 릭 스나이더 주지사가 2014년 4월 취임 직후 새로운 수도 파이프라인을 만든다며 플린트 시의 상수원을 휴런 호에서 플린트 강으로 변경하면서 공업용으로 쓰던 오염된 물을 상수도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얼마 뒤 수도관을 통해 공급된 납 성분이 포함된 물로 3천 명의 어린이가 납중독과 중금속 오염에 의한 질병을 앓았는데 주 정부는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할 증거가 없다며 문제를 은폐했다.

문제는 식수로 인해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주민들의 분노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를 받았던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주민들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것이다. 고통 받던 시민들은 대통령에게서 진정한 위로와 재난지역 선포를 기대했지만, 플린트 시를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은 물을 마시는 시늉만하고 나도 마실 만큼 괜찮은 것 같다는 정치 쇼를 하고 사라진다. 이 장면은 시민들의 생명의 위협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무책임한 대응이 민주당의 기득권(liberal establishment)의 진면목을 드러낸 상징적인 사건으로 전통적 민주당 지지 세력이 정치에서 멀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셋째, 민주당 지도부의 무책임하고 독선적인 정당정치에 다수의 민주당 지지 세력이 환멸을 느끼고 무관심층 또는 반 힐러리 세력을 만들어냄으로써 공화당에 유리한 선거환경을 만들게 되었다. 웨스트버지니아 주 예비선거인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버니 샌더스 후보가 55개 군에서 모두 승리했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본선 경쟁력과 대중적 인지도와 같은 정치적 이유를 내세워 힐러리 클린턴을 민주당 후보로 선포하게 되자 많은 지지자들은 이에 반발하여 이탈한 것으로 분석한다.

▲ 영화 <화씨 11/9: 트럼프의 시대> 스틸 이미지

민주당 지도부는 본선 승리를 위해서 청년, 백인 고학력층 지지가 높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보다 대중적 확장성이 높다고 판단한 클린턴을 후보를 지원했다. 이러한 민주당의 행보는 대선 핵심 쟁점인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 개혁을 등한시 한다는 느낌을 주게 되어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를 냉소적 또는 공화당 지지 세력으로 돌리게 된다. 민주당을 지지하던 대중매체는 1980년~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가 선거 판세를 결정할 핵심으로 판단하고 이들의 지지를 모으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했지만 정작 이들이 요구하던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개혁을 외면했다. 그리고 대선의 승패를 결정한 이들은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한 백인 중장년층이었다. 네바다, 뉴멕시코, 콜로라도 등 중서부 전 지역의 투표율이 저조했다. 다양성이 높지 않고 정치 관심도도 낮은 시골 유권자들은 아예 투표소에 나오지 않거나 트럼프를 선택했다.

넷째,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좌파와 엘리트층의 자만과 경제실패가 민주당 지지 세력을 위축시킬 뿐 아니라 전통적 기준에서 수준미달인 트럼프 후보를 지지하는 도덕적 부담감을 제거해주었다. 공화당 예비선거에서부터 막말과 기행으로, 진보 진영과 엘리트층은 트럼프 지지가 이념적, 도덕적, 정치적으로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하면 예비선거에서 걸러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유권자 대다수는 예비선거에서는 물론 본선에서도 인종, 성차별, 외국인 혐오 논란에 개의치 않고 아웃사이더 트럼프를 지지했다. 경합지역인 미시건주를 포함한 중서부 지역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성향이 강했지만 장기적인 불황으로 신음하던 백인노동자들이 과거에 공화당 후보였던 레이건을 지지했듯 트럼프를 선택하는 ‘레이건 데모크랫’이라고 하는 정당재편(party realignment)이 일어났다.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국내정치의 문제와 오류에서 탄생한 트럼프 대통령은 전통적인 미국정치의 문법에 맞지 않는 정책을 추진했다. 일부는 점잖은 표현으로 예측이 어렵다고 하지만 이는 재정신이 아니라는 원색적 비난이다. 주류 미디어의 지원을 받지 못했고, 본인이 부자여서가 아니라 기존의 정치적 지배구조에 들어올 수 없어서 정치후원금을 받지 못했고, 그래서 대선 당시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 마지막까지 트럼프의 도덕성을 언급하며 지지를 유보했을 만큼 공화당 지도부의 후원도 받지 못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저런 이유로 현실정치에 불만을 느낀 대중들의 정치혐오, 민주당에 대한 환멸, 그리고 막말이긴 하지만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가 혼합된 대중적 지지로 당선되었다. 결과적으로 러스트 벨트의 백인 노동자층의 이익을 대변해야하는 정도의 정치적 부채는 지고 있다. 하지만 선거과정에서 승리를 위한 최소승자연합(minimum winning coalition)에 의한 지지 세력 규합보다는 조건 없는 대중적 지지를 바탕으로 선거를 치르느라, 당선 후에 배려해야할 이익단체도 유권자 집단도 상대적으로 없는 편이다.

▲ 영화 <화씨 11/9: 트럼프의 시대> 스틸 이미지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정치적 배경이 취임초기 전통적 문법에 벗어난 한반도 문제를 포함한 동북아 대외정책에서 나온 언급에 나타난 현상을 설명해준다: (1) 미군 주둔에 대해 비용을 문제 삼아 철수하겠다. (2) 한국은 미국에게 아무것도 해주는 것이 없는데 미국은 왜 한국을 방어해주는가? (3) 나아가서 한미 FTA 재협상이 미국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철수하겠다는 카드를 협상 테이블에 올리겠다. (4) 주한미군 군사훈련에 대해서 비용이 많은 점을 들어 훈련을 중단하겠다. (5) 한반도 핵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핵무장을 하는 것은 한국이 알아서 할 일이다. 트럼프가 생각했던 합리성은 경제적 의미에서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동맹국의 안보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것과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패권국의 지위는 고비용 저효율의 비효율적 대외정책이라는 잭슨주의(Jacksonian) 사고에 기인한다.

트럼프의 이러한 정치적 배경이 작용하여 나름대로 북한의 비핵화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하는 대안으로 중국에게 북한의 봉쇄를 압박하면서 미북 양자회담을 추진했던 것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한반도 비핵화가 우선 목표라고 생각할 수 있고 비핵화는 북한을 개혁개방을 통해 인권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반해 미국 외교의 전통에 비추어 보면 트럼프의 행보는 초강대국 미국의 국가원수가 북한과 같은 불량국가(rogue state)의 최악의 독재자와 1:1의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싱가포르에서 미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파격적인 실용주의에서 미국 국익우선의 현실주의라는 미국외교의 전통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간선거 결과, 하원은 다수의석을 민주당에 넘겨줬지만 상원의 다수의석은 공화당이 수성함으로써 탄핵의 위기는 모면했고 2020년 재선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2019년 한반도 비핵화에서도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재선을 본격적으로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선거전에서 전략을 수정하여 기존의 언론, 기업, 정치엘리트들로 이루어진 미국의 주류정치세력들과 트럼프의 연합이 이루어진다면 국제정치에서는 해밀턴주의(Hamiltonianism)나 윌슨주의(Willsonianism)로 전환할 것이다. 미국의 국익에 패권적 지위를 추구하는 것이 도움이 되고 이를 위해서 경제와 군사에서 미국의 역할을 강화하는 쪽으로 전환이 일어난다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트럼프의 파격적인 미북합의는 어려워질 수 있다.

▲ 이성우 박사

[이성우 박사]
University of North Texas
Ph. D International relations
현)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정치학 박사

이성우 정치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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