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잉’, 죽음앞에 엄발나는 연인의 통찰 심리극 [유진모 칼럼]

유진모 칼럼니스트l승인2018.12.24l수정2018.12.30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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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다잉>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다잉’(페르난도 프랑코 감독)은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뱅갈국제영화제 등에서 호평을 받은 스페인 영화다. 제목은 삶과 죽음이 결코 다르지 않고 서로 깊게 연관된다는 이항대립, 양가성, 모순, 역설 등을 내포한다. 스산한 겨울 날씨만큼이나 가슴이 시리고, 콧등이 시큰해지는 심리적 멜로다.

전문직 여성 마르타(마리안 알바레즈)는 연인인 대중음악가 루이스(안드레스 게르트루디스)와 한적한 해변 마을에서 살고 있다. 행복한 여행에서 돌아온 루이스는 건강검진 결과 뇌종양 진단을 받았음을 뒤늦게 고백한다. 루이스가 제안한 대수술을 받은 뒤 결과가 좋다는 통보에 둘은 안심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게 흘러간다. 병세는 점점 악화되고 결국 루이스는 죽을 날을 기다리며 칩거 생활을 하고, 마르타는 모든 일에서 손을 뗀 채 그의 수발을 드는 데 집중한다. 돈은 떨어지고, 설상가상으로 그녀의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되며, 루이스와의 사이에도 균열이 점점 더 크게 벌어지는데.

모든 얘기는 두 연인 사이에서 진행되지만 결코 단순한 사랑 얘기가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현세에선 타인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볼 수밖에 없는 죽음을 기다리는 심리, 죽음의 대상이 연인인 상황에서의 복잡한 감정, 연인의 죽음 이전과 이후의 정상성(부담에서 벗어난 기분)을 다룬다.

▲ 영화 <다잉> 스틸 이미지

보편타당한 삶에서 노인 소리를 듣기 전엔 누구나 죽음에 대한 준비는커녕 아예 생각조차도 ‘안’ 하고 산다. 건강검진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의 루이스와 마르타는 불안은 있었을지언정 그게 자신들에게 가까이 있다는 건 꿈도 못 꿨다. 불치병 선고를 처음 듣는 순간도 절망은 했지만 포기는 안 했다.

하지만 1년 동안 하루하루 순응이라는 걸 점점 더 크게 부풀려가면서 사랑은 사치가 되고, 배려는 낭비가 된다. 두 사람이 동시에 DNA를 물려준 자식과 함께 사는 부부관계나 끈끈한 혈연관계가 아닌, 그냥 연인 관계이기에 그렇다. 예전에 샘솟던 도파민은 어느새 다량의 코르티솔로 바뀌고 만다.

영화는 루이스에게는 연민과 동정을, 마르타에게는 이해와 찬사를 보낸다. 루이스는 휴가 전 통보를 받고도 휴가를 망치지 않겠다는 배려심 때문에 휴가 후에야 마르타에게 털어놓는다. “아버지처럼 병을 안고 질질 끌며 살고 싶지 않아”라는 그는 초기엔 스페인 특유의 귀족주의의 표상으로 그려진다.

“병원에서 죽기 싫다"라며 집으로 와 맥주와 담배를 입에 대고 “지금 이 순간을 즐겨둬야지”라며 여행을 떠나는가 하면 마지막으로 해보고 싶다며 불편한 몸으로 운전까지 한다. 하지만 그 귀족주의의 이면은 과시적이다 못해 매우 이기적이다. “내가 수발들어달라고 했냐”라고 마르타에게 비수를 꽂는 식.

▲ 영화 <다잉> 스틸 이미지

투병 초기만 해도 침대에서 유혹하는 마르타를 거부할 만큼 귀족주의의 품위를 잃지 않았던 그는 죽음이 다가올수록 어린애처럼 징징거리고, 칭얼대며, 의처증만 키워간다. 엄마와 통화하려고 잠깐 밖에 나갔다 와도 어김없이 어디 갔다 왔냐고 집요하게 캐물을 정도다. 마르타의 피로도는 점점 상승한다.

“차는 팔지 마. 좋은 차야. 나나 아버지보다 오래 버티잖아”라고 귀족주의를 지키려던 그는 끝내 “이제 지긋지긋하지?”라고 투정을 부린다. 마르타의 “조금 지치기는 해, 당신도 그렇잖아”라는 대답은 수발이 힘들다는 게 아니라 심리적 대치가 그렇고,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현실이 지친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 가족은 처음엔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으려 한다. 하지만 희망이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조용히, 겸허히 병자의 ‘그날’을 기다리지만 그 기간 중 병자가 히스테리컬 해져 가족들을 힘들게 만들면 그게 길다고 느끼거나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시간이 빨리 가길 바란다는 걸 알고 괴로워진다.

마르타가 병간호에 지쳐 빙고 게임장을 찾고도 게임에 참여하지 않고 술만 마시고 나오는 건 우연이나 행운을 안 믿기 때문이다. 반면 루이스는 의심투성이다. 피로를 못 이겨 집에서 늦잠을 자고, 루이스의 헤드폰도 못 챙긴 채 어제 그대로의 복장으로 병원에 오자 외박했다고 비뚤어지게 보는 따위다.

▲ 영화 <다잉> 스틸 이미지

이 작품에서 중요한 건 스토리나 플롯이 아니라 각 시퀀스가 가진 두 사람의 복잡다단한 감정의 변화다. 그래서 장면전환의 블랙아웃이 유독 길다. 예술가와 커리어 우먼이란 고상한 직업을 가진 중산층의 성인남녀가 아무 걱정 없는 삶을 영위하다 한쪽의 요절로 인한 이별 앞에 섰을 때의 변전이다.

이때부턴 예전의 가치관이 전도된다. 루이스 입장에선 무가치했던 1시간이 1달만큼 소중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매일 접하던 바다가 박물관에 걸린 폴 세잔의 그림보다 감동적이다. 마르타도 과연 그럴까? 두 사람은 유물론(루이스)과 관념론(마르타) 혹은 이원론의 화합과 파탄의 과정을 보여준다.

“가지 마, 잠들 때까지 있어줘”라는 루이스의 부탁은 이중적 의미다, 귀족적 스페인주의가 윤색돼가는 그는 죽음 앞에서 구차해지며 유물론의 허점을 보여준다. 마지막에 마르타가 비로소 실내의 커튼을 걷어 젖히고 창문을 연 뒤 담배와 커피도 즐기는 건 자아의 주체화와 유물론의 객체화를 의미한다.

프랑스적 과장도, 영국적 겸양도, 독일적 이상도, 이탈리아적 낭만도, 미국적 꿈도 없는 이 잔잔함은 다소 낯설 수도, 심지어는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두 주인공의 심리를 파악하는 여정은 매우 아프면서도 서정적이다. 감정이 아닌 감성으로 즐기는 영화다. 105분. 12살. 12월 27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유진모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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