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내안의 그놈>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내안의 그놈’의 티케팅을 결정하는 키는 강효진 감독이 ‘조폭마누라’(2001‘의 각본가이고, 혼수상태에 빠진 미혼 변호사의 영혼이 아줌마의 몸에 들어가는 ’미쓰 와이프‘(2015))의 연출자라는 데 있다. 판타지와 코미디가 결합한 휴머니즘 드라마인데 박성웅에게 기대를 ’거느냐, 마느냐‘도 관건이다.

40대의 H기업 사장 판수(박성웅)는 젊은 시절 건달이었고 사랑하는 여인 미선(라미란)이 있었지만 출세를 위해 H그룹 회장(김홍파)의 딸과 결혼한 뒤 사업가로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는 부하 현철(이준혁)을 동원해 재산과 사업장을 지키려던 가난한 동현(진영) 아버지(김광규)로부터 땅을 빼앗는다.

고교생 동현은 학교에서 ‘왕따’는 물론 ‘이지메’를 당하고 있다. 그는 무슨 이유에선지 건물 옥상에 올라갔다가 발을 헛디뎌 추락하고 때마침 그 동네를 찾아와 옛 추억에 잠겼던 판수와 부닥친다. 병원에서 먼저 깨어난 판수는 경악한다. 자신의 몸은 혼수상태고 그 정신은 동현의 몸에 들어온 것.

한 끼에 라면 4그릇을 먹는 ‘돼지’인 동현이 된 판수는 학교에 다니며 그의 삶을 경험하면서 서서히 변하게 된다. 평소 남을 업신여기고 이기적이며 오직 돈밖에 모르던 그는 동현 나이 때 채 체험해보지 못했던 청소년의 세계에서 순수함 및 어른 못지않은 탐욕의 세상을 발견하고 이타적으로 바뀌는 것.

▲ 영화 <내안의 그놈> 스틸 이미지

그 과정에서 왜 동현이 옥상에서 떨어졌는지 알게 된다. 동현처럼 ‘왕따’였던 현정(이수민)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던 것. 그런데 알고 보니 현정은 미선의 딸. 현철에게 현정의 DNA 검사를 명령한다. 한편 젊은 남자와 바람이 난 판수의 아내는 판수의 라이벌 양 사장과 공모해 회장에게 판수를 모함하는데.

19세기 중반 미술계에서 생겨난 키치란 용어는 그 후 유럽의 급속한 산업화 및 대중문화 활성화에 따라 발생한 중산층의 예술품에 대한 깊은 관심이 초래한 복제품, 유사품, 통속작품 등을 말한다. 이 영화는 고급스러운 예술성을 거론하기는 어려울 만큼 저급한 클리셰가 넘치지만 나름의 재미는 있다.

키치가 조악하거나 저속하지만 대중적 취향을 추구함으로써 그 시대 대중문화나 소비적 취향을 반영하는 방향성 하나만큼은 귀신같이 저격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다분히 키치적이다. 아무 생각 없이 122분 동안 마음껏 웃고 난 뒤 타인에게 이를 알리거나 추천하지 않겠다면 ‘So so’다.

영화를 완성하는 뼈대가 양극단의 대립항의 공존인 양가성이라면 인테리어는 클리셰다. 판수는 엄청난 결벽증의 강박장애를 보인다. 어릴 때부터 수시로 휴지로 식탁을 닦았고, 타인의 셔츠의 단추 하나 풀어진 것도, 넥타이가 느슨한 것도 못 본다. 단정한 자세로 유기농 식품만 섭취하며 풍요를 누린다.

▲ 영화 <내안의 그놈> 스틸 이미지

동현은 친구들이 대놓고 돼지라고 놀릴 정도로 뚱뚱하고 식탐이 강하다. 판수가 냉철하고 남에게 지고 못 사는 데 반해 늘 주눅 들어있는 겁쟁이다. 한마디로 할 줄 아는 게 없고, 그래서 자랑할 것도 없다. 재산을 빼앗기고 빚을 진 그의 아버지는 일용직을 전전하니 당연히 찢어지게 가난하다.

판수는 이기심의 극치인데 반해 동현은 용기가 없어 행동은 못할지언정 이타심과 양심은 갖추고 있다. 판수가 사는 곳은 강남구 청담동의 펜트하우스고, 동현은 ‘달동네’ 연립주택이다. 동현이 싫어하는 음식이 있을 리 없지만 특히 햄, 소시지, 사탕 등 고혈압과 당뇨병의 ‘절친’을 입에 달고 산다.

완벽한 듯 보였던 판수의 환경은 알고 보니 심복 현철만 제외하면 모두 적이었다. 오른팔인 줄 알았던 ‘넘버2’는 아내와 바람이 났고, 아내는 그를 호시탐탐 노리는 양 사장과 동업자가 돼 목을 죄어온다. 동현의 일상을 통해 판수는 지긋지긋하고 하찮았던 서민의 ‘소확행’의 즐거움과 행복을 발견한다.

판타지의 시작과 끝은 꽁치라면(‘소확행’의 메타포) 한 그릇에 1만 원이나 받는 ‘희망’분식 할망구다. “이 더러운 동네, 다신 안 온다”라고 자신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달동네’에 치를 떠는 판수에게 할망구는 5만 원을 뜯어낸 뒤 “나중에 쬐깐한 선물 하나 줄게”라고 말한다. ‘작은’의 의미가 중요하다.

▲ 영화 <내안의 그놈> 스틸 이미지

그 메시지는 동현이 ‘Whatever you do’(‘뭘 하든’이란 조건과 ‘절대 어떤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경고)라고 쓰인 티셔츠에서 ‘Challenge’(도전)라는 단어가 적힌 티셔츠로 갈아입는 미장센으로 이어진다. 동현이 된 판수가 이도 저도 아닌 삶을 사는 혼돈을 통해 새로운 도전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다.

그 역동의 힘은 후반에 판수의 몸으로 깨어난 동현이 매조진다. 어리바리하고 무기력했던 동현이 오랜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뒤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마주침으로써 행동양식을 깨우쳐 서서히 한 인격과 인간의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는 시밀레(비유, 직유)다. 드라마의 축은 가족애와 학교 문제다.

여기에 가세한 클리셰는 유머로 이어진다. 교내 ‘왕따’와 ‘이지메’를 선생들이 묵인함으로써 근절되지 않는다는 직설법은 유사한 ‘조폭영화’를 연상케 한다. 판수를 죽이려는 양 사장의 “장판수, 죽기 딱 좋은 날이지?”라는 대사는 ‘신세계’에서 박성웅이 만든 유행어고, “내가 네 아빠다”는 ‘스타워즈’다.

박장대소와 실소가 어우러지고, 감정이입을 경험하거나 닭살이 돋는 양극단의 경험이 기다린다. 여러 사람의 숭고한 땀이 밴 작품을 일도양단하면 안 되겠지만 과한 액션은 ‘조폭마누라’의 성공 요인을 잘못 해석한 듯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주의! 코미디에 막장 코드 탑재. 15살. 내년 1월 9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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