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그린 북>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그린 북’은 ‘덤 앤 더머’,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등으로 코미디에 일가견을 보여 온 피터 패럴리 감독이 이제 거장의 반열에 오를 준비가 됐다는 걸 대놓고 으스대는 듯한 영화다. ‘언터처블: 1%의 우정’의 재미와 감동에 지성과 감정, 예술과 감성, 그리고 인종차별 등에 관한 묵직한 메시지를 웅변한다.

1962년 뉴욕. 이탈리아계 이민자 토니(비고 모텐슨)는 사랑하는 아내 돌로레스(린다 카델리니)와의 사이에 어린 두 아들을 두고 친척들과 대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다. ‘떠버리 토니’로 불리는 그는 허풍은 세지만 주먹만은 허풍이 아니라 코파카바나 클럽에서 웨이터 겸 안전 담당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클럽이 리뉴얼 때문에 2달간 휴업에 들어간다. 당장 집세가 걱정인 그는 친척들에게 ‘알바’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한다. 카네기홀 2층에 호화로운 숙소를 마련하고 살고 있는 퓨전 피아니스트 겸 심리학 박사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는 흑인이지만 전국 공연에 바쁜 슈퍼스타이자 상류층 인사다.

그는 일부러 치안이 불안정한 남부지역의 8주간 순회공연을 계약하고 운전기사와 보디가드를 겸할 수 있는 매니저로서 토니를 고용한다. 그러나 지식, 교양, 취향, 환경, 재산, 성장과정, 그리고 인종 등에서 완전히 극점에 서있는 두 사람의 투어는 시작부터 엄발난다. 과연 무사히 끝날 수 있을까?

▲ 영화 <그린 북> 스틸 이미지

‘그린 북’은 흑인 운전자를 위해 잘 수 있는 곳과 갈 수 있는 곳을 알려주는 여행안내서다. 당시 노예제도가 폐지된 지 100년이 다 됐지만 전국 곳곳엔 유색인종에 대한 공개적인 배척이 심했기 때문에 겉으론 흑인을 위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백인을 위한 ‘신성불가침’에 대한 지침서였던 것이다.

실화를 옮긴 영화는 보는 내내 시대착오적 인종차별에 분노가, 두 주인공의 다툼에 웃음이, 또 화해와 화합에 감동이 물밀듯 밀려오게 만든다. 자유와 평등과 꿈을 실현할 나라라는 미국이 사실은 프로테스탄트와 범죄자 등 일부 백인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섣불리 주인이라 나서기 힘든 공간이라니!

‘절반은 검둥이’라고 불리는 거친 사내(소울)와 노예 출신 ‘검은 지성’(클래식) 두 명의 부유라는 역설을 통해 미국의 역사와 현실을, 그리고 타인들과 부대끼며 살아야만 하는 대인관계에 대한 서사를 로드무비 형식으로 그리는 것이다. 돈은 9살에 흑인 최초로 레닌그라드 음악원에 입학한 천재다.

18살에 보스턴 팝스 심포니를 통해 데뷔한 이후 ‘신의 경지’란 찬사를 받았다. 다수의 박사학위를 땄고,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지성적 예술가로서 상류사회 곳곳에서 쇄도하는 초청을 받고 있다. 그러나 피아노에서 손을 떼면 제대로 잘 수 있는 곳도, 식사할 수 있는 곳도 없는 ‘한낱’ 검둥이에 불과하다.

▲ 영화 <그린 북> 스틸 이미지

토니는 겉만 백인이지 지적 수준은 오히려 흑인만도 못하다. 형편없는 발음과 억양의 영어에 상소리를 상투로 달고 산다. 실천보다 허풍이 먼저고, 대화보다 주먹이 앞선다. 법이나 질서보다 감정이 우선이고, 도덕보단 이기심이 이념이다. 흑인보다 더 노예 같은 백인, 백인을 뛰어넘는 지성과 교양의 흑인.

영화는 이분법적 구조로 얄팍한 재미를 주거나 메시지를 설파하려 하기보다는 사고의 틀을 연 다원주의로 진한 감동의 울림과 여운을 연결한다. 두 사람은 확연히 드러나는 양극단의 대척점에 선 인물이지만 사실 그들 각자는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떠도는 섬에 불과하다는 데서 출발한다.

서민들은 바라보기도 힘든 높은 성 꼭대기 ‘펜트하우스’에서 호화찬란하게 사는 돈은 딱 성 안에서만 귀족일 뿐 성문을 나서면 계급장은 우수수 떨어져 낙엽이 된다. 그래도 어쨌든 슈퍼스타지만 매일 밤 호텔 방에서 홀로 스카치 1병씩 비울 만큼 외롭다. 흑인들과도 어울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반어법적 패러독스는 클래식과 소울이라는 음악으로 대치 혹은 양립한다. 스타인웨이 아니면 연주를 안 하는 돈은 “쇼팽을 나처럼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라며 자신이 클래식을 전공한 데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토니는 돈이 리틀 리처드와 아레사 프랭클린 등을 모르는 게 의아할 따름이다.

▲ 영화 <그린 북> 스틸 이미지

토니는 상류사회엔 진입할 수 없지만 흑인에 대한 편견은 여느 백인과 다름없었다. 집에 왔던 흑인 수리공들이 사용한 컵을 닦는 게 아니라 쓰레기통에 버렸을 정도. 그런 두 사람이 합일점을 찾는 장소는 흑인 전용 클럽이다. 돈은 처음(?)으로 흑인 재즈밴드와 잼 세션을 함으로써 비로소 흑인이 된다.

돈이 장식장 속의 희귀 난초라면 토니는 정글의 하이에나다. 돈은 평안한 온실 안에서 자태를 뽐낼 때만 대중에게 고고한 존재로 빛나지만 가격표를 떼어내고 거리로 나오면 잡초와 다름없게 된다. 그걸 알려주고 지켜주는 게 바로 거칠지만 정글의 질서에 충실한 토니다. 둘은 양가성의 모범답안이다.

처음에 왕족 복장의 돈이 높은 곳에서 토니를 내려 보는 건 체제전복(마르크스)이다. 토니가 운전하는 고급 승용차 뒷자리에 거만하게 앉아있는 돈을 들판의 흑인 노동자들이 의아하게 바라보는 건 가치전도(니체)다. 결국 나중에 둘이 동등한 테이블에 앉는 건 프롤레타리아 혁명(마르크스)이다.

미국 곳곳의 차별, 편견, 부조리, 불합리 등을 비꼬면서도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는 ‘Noel’ 미장센으로 마무리하는 따뜻한 작품이다. 로드무비 여정의 에피소드와 두 배우의 열연은 감동의 눈물과 직결된다. 여기에 클래식과 소울의 앙상블은 보너스. 130분. 12살. 1월 9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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