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2018년 끝 무렵 지상파 방송 3사는 예외 없이 ‘연기대상’ ‘연예대상’ ‘가요축제’ 등의 자체 행사를 성대하게 열었지만 시청자들의 부정적인 반응이 빗발치고 있다. 심지어 적지 않은 시청자는 SBS의 이승기 연예대상 수상의 취소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요구할 정도다. 자체적인 문제 인식이 시급하다. 

시청자들은 SBS 연예대상에서 백종원이 소외된 데 대해 아쉬움을 넘어 분통을 터뜨린다. 그게 거창한 시상식 뒤의 의례적인 양비론이라고 애써 외면하려 든다면 행사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시청자를 외면하려는 음모로 비칠 수 있다. 만약 순수한 의도라면 규모의 축소 혹은 내부적 잔치화의 검토가 필요하다.

방송사 연말 대상은 일단 특정 방송사의 자축 파티인 것은 맞다. 한 해 동안 자사의 발전과 매출에 큰 도움을 준 연예인들을 불러 격려와 감사의 뜻을 전하는 축제를 열어주는 데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함께 1년을 즐긴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마지막으로 즐겁게 해주겠다는 의도도 선하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눈살이 찌푸려지고, 귀에 소음이 들린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수상자 선정에 공감을 못 하고, 전 국민적인 재미있는 축제가 아닌 어설픈 내부 행사 수준의 진행이라는 느낌이 짙다면 눈이 기분 나쁘다. 수상자 선정에 대한 이견이 쏟아진다면 그 행사는 형편없는 악단의 오케스트라다.주최 측은 시청자들이 이승기 수상에 분노하는 게 이승기여서가 아니라 백종원이 배제됐기 때문이라는 본질을 잘 파악해야 한다. 백종원은 자신은 연예인(예능인)이 아니라며 스스로 연예대상과의 거리를 설정한 바 있다. 하지만 이젠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계기는 방송사가 만들어줘야 한다.

예능인(방송인)이란 21세기에 확정된 새 ‘직종’이다. 그전엔 다수의 배우와 가수가 ‘안전거리’를 확보해뒀지만 이젠 너도나도 진입하고자 한다. 인기와 이미지메이킹의 연타석 안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건 비과세 복리저축이다. 그래서 배우, 가수, 개그맨이란 본업의 뿌리가 없이도 가능한 게 예능인이다.

전현무, 김성주를 아나운서라 부르거나 그렇게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다. 실제 그들의 정체성은 방송사 소속의 아나운서가 아니다. 이미 수많은 아나운서들이 사표를 던지고 프리랜서 방송인으로 쏟아져 나왔고, 현재진행형이다. 백종원의 본업이 사업가라는 게 예능인의 조건에 전혀 문제가 안 되는 이유다.

만약 아직도 스스로 예능인이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강력한 신념을 갖고 있다면 당장 모든 프로그램에서 내려와 자발적으로 골목식당을 다니며 자영업자들에게 고언을 해주면 될 따름이다. 방송사와 백종원에게 중요한 건 오직 시청자의 고견일 뿐이다. 백종원은 사업가고 시청자는 소비자다.

SBS 연예대상의 어설픈 진행만큼 시청자들을 짜증 나게 만든 건 ‘2018 KBS 가요대축제’였다. 무려 200 명에 가까운 라인업으로 대축제를 만들려고 했지만 적지 않은 시청자들은 ‘대참사’였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진행과 구성, 아이돌과 트로트의 출연진 모두 엄발나는 2인 3각이었다는 평가다.

방탄소년단의 환상의 무대라는 일말의 성과는 남기긴 했다. 그러나 SM과 JYP라는 공룡 기획사의 라이벌 대결이란 ‘떡밥’을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체 신구세대 간판 가요 프로그램인 ‘뮤직뱅크’와 ‘가요무대’를 한 무대에 올리려는 가당찮은 시도로 이도 저도 아닌 불협화음만 낳았다는 평가가 대세다.

한국전쟁 이후 국내 대중가요계는 오랫동안 다원주의였고 지금도 그런 듯하다. 하지만 속사정을 보면 일원주의와 이원주의가 리드한다. 제도권의 주류가 아이돌의 후크송이라는 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경험론적, 관념론적으로 확연한 명제다. 트로트는 그에 맞선 중장년층 대상의 대항마다.

그 둘보다 변방이긴 하지만 마니아 취향적 힙합과 인디뮤직도 무시할 수 없다. 록, 블루스, 재즈, 발라드, 포크, 등 미국과 유럽의 본고장 색깔에 가까운 팝을 즐기는 지성 지향적 감상 계층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 행사는 다양성도, 전문성도, 취향성도 모두 놓쳤고, 프로그램의 정체성도 스스로 저버렸다.

개그맨(예능인)의 ‘노라조’식 음악도 팝의 세계에선 필요하다. 트로트 문화도 특수한 나름의 미덕은 갖췄다. 오프닝의 셀럽파이브와 클로징의 김연자는 다원주의 원칙엔 부합하지만 그 외의 대다수 가수가 아이돌 위주였다는 점에서 과연 이 프로그램의 성격과 시청자들의 취향에 적절했는지가 의문이다.

다양성과 취향성을 고려했다면 윤종신, 임창정 등을 비롯해 힙합 신과 인디 신의 스타도 불렀어야 마땅했다. 그게 여의치 않았다면 젊은 시청자만 겨냥했어야 정체성으로써 전문성과 취향성 두 가지만은 확실하게 잡을 수 있었다. ‘뮤직뱅크’에 태진아가 출연하는 파격과는 행사의 차원이 다르다는 걸 간과했다.

엔딩에서 김연자가 ‘아모르파티’를 부르고 아이돌스타들이 그녀와 무대에서 뛰어노는 게 과연 세대차이의 파괴라고 착각한 걸까? 설자리와 살자리를 띄어 쓰지 않고 붙여 쓰는 이유는 관형적으로 대상화, 범주화된 그 의미에 있다. 전자는 공간성의 층위의 존재 개념이고, 후자는 생존의 존재 개념이다.

방송사의 청소년 대상 음악 프로그램이 국내의 저조한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자꾸 확대재생산되는 이유는 해외 수익 때문이다. 연말 대상 역시 그 수익의 범주 안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아모르파티’를 ‘강남스타일’로 일시 착각했다는 시대착오를 깨닫는 만시지탄을 해도 옥에 티는 티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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