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이슈&피플] 영화 ‘1987’ ‘1급기밀’ ‘광해, 왕이 된 남자’, 드라마 ‘대장금’ ‘올인’ ‘야인시대’. 새해를 맞아 데뷔 32년째인 배우 서진원(50)이 출연한 작품들이다. 서진원은 연극배우로 출발해 시나리오 작가를 겸한 다작 배우로 맹활약 중이지만 다수의 대중에게 그는 아직도 무명 배우고, 스스로는 신인이라 말한다.

그는 결혼해 고교생 아들도 하나 있다. 아무리 아내가 맞벌이를 한다고 하지만 유명 연예인만큼 풍요로울 순 없다. 그래도 지금까지 아내에게 생활비 걱정 한 번 시킨 적 없다. 그만큼 배우의 길은 힘들지만 천직이란 신념으로 산다. 스타덤을 거부하진 않지만 결코 스타가 목표는 아니라는 그.

그는 왜 배우가 됐고, 아직 ‘신인배우’임에도 꿋꿋할 수 있을까? 다른 부모들은 상경을 못해 안달복달했지만 그의 부모는 서울에서 경남 진주로 ‘역주행’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1987년 배우가 되겠다며 무작정 상경했다. 아버지는 묵묵히 300만 원을 주셨고, 그 후 그는 집에 손을 벌려본 적 없다.

최근 세 작품에 연달아 출연하며 나름대로 바빴다. 지난해 10월 종영된 KBS2 수목드라마 ‘오늘의 탐정’에 산장 주인으로 출연했고, 오는 3월 개봉 예정인 문소리 박형식 주연의 영화 ‘배심원들’(홍승완 감독)에서 국선변호인 역을 연기했다. 부산영화제를 목표로 한 독립영화 ‘테우리’(이난 감독)의 주인공이다.

작가로서도 배우 못지않게 바빴다. 현재 대학로에서 공연 중인 연극 ‘자메이카 헬스클럽’의 극본을 썼다. 아직도 ‘무명배우’지만 경제적인 고민에서 자유롭게 계속 배우일 수 있는 비결이다. 3년 전 비오비스타컴퍼니에 둥지를 틀면서 데뷔 후 처음으로 기획사에 적을 두고 여러 면에서 안정을 찾았다.

-연예계에선 지명도 대비 다작 배우로 통하는데.

“하하하, 제가 대중적 지명도는 크지 않지만 업계에선 나름대로 불러주는 곳이 많습니다. 올해에만 10개 작품에 출연했으니까요. 제 배역은 3단계를 거친 것 같습니다. 연극으로 데뷔한 직후 1년간 일본 도쿄로 어학연수를 떠나 ‘신주쿠 양산박’이란 현지 한국 극단에서 활동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귀국한 뒤 일본인 역할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한 10년 정도 그렇게 하다가 영화 ‘아나키스트’를 분기점으로 일본인 역 제안이 뚝 떨어지더라고요. 한국 영화계가 발전하면서 유명 일본 배우들이 대거 진출했기 때문이죠. 그 후론 주로 중국인이나 조선족, 혹은 북측 사람 등으로 출연하게 되더라고요. 배우라면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내야 하지만 ‘조조연’이면서 주인공과 다소 거리가 떨어진 배역을 계속하다 보면 지치는 게 사실입니다. 그 시기를 지나니까 이번엔 검사, 교사, 기자 등 또 다른 직업군의 제안이 들어오더라고요. 그때부턴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비로소 제도권 배우가 됐다는 안정감 같은 거죠. 아직 갈 길이 먼 제가 감히 이런 말씀드리는 건 지나칠지 모르겠지만 모름지기 배우라면 그 어떤 역할도 받아들일 수 있고, 그렇게 스펙트럼이 넓다는 인상을 감독 등 제작진에게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예인은 겉으론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은 일부분만 그런 건데.​

“만 18살에 상경한 이후 단 하루도 ‘알바’를 쉬어본 적이 없습니다. 가난한 연극배우였지만 나름대로 제 승용차도 있었으니 경제적으로는 그렇게 어려웠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건 제가 시나리오를 썼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정말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에로영화까지 찍었다니까요. 아내와 맞벌이이긴 하지만 결혼 후 가장으로서 부끄러웠던 적도 없습니다. 시나리오와 더불어 번역까지 했으니까요. 일본의 고전 만화 ‘은하철도 999’의 21세기 버전을 번역한 게 인상 깊네요. 그리고 이제 소속사에 적을 두고 나니 여러모로 안정된 게 사실입니다. 활동도, 경제도 그렇습니다.”

-소속사 대표와 각별한 인연이라던데.​

“제가 ‘아나키스트’에 단역으로 출연했는데 그때 정준호 씨 매니저로서 손성민 대표를 알게 됐어요. 주인공의 매니저이니 저로서는 얼마나 어려웠겠어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뒤로도 다른 작품 촬영장에서 손 대표를 자주 마주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3년 전 전화가 왔어요. ‘진원 씨, 진주 중안초등학교 나오지 않으셨어요?’라고 묻기에 그렇다고 답했더니 대뜸 ‘친구야’라며 함께 일하자고 제안하는 것이었어요. 알고 보니 초등학교 때 함께 보이스카우트 단원으로서 꽤 친했던 죽마고우였더라고요. 인연은 인연이죠. 손 대표가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장이다보니 아무래도 보통 매니저보다 도움받는 것도 더 크고요.”

-내년 개봉될 2편의 영화가 배우 인생에 꽤 중요할 듯하다.​

“‘배심원들’은 희비가 엇갈리죠. ‘미스터 션샤인’의 안중근 역 제안이 왔는데 이미 ‘배심원들’의 촬영 중이었기에 스케줄을 도저히 맞출 수가 없어서 고사했으니까요. 그래도 이 영화에 대한 애착은 큽니다. 선택에 대한 책임은 어차피 배우의 숙명이죠. 관성적으로 일하는 국선변호인 역인데 변호해야 할 피고인이 갑자기 태도를 바꿈으로 인해 사명감과 책임감이 발동해 적극적으로 무죄를 주장하는 변론에 나서는 캐릭터입니다. ‘테우리’는 독립영화지만 제가 주인공 차 형사 역을 맡았으니 좀 각별하죠. 제목은 제주도 방언으로 목동이란 뜻입니다. 차 형사는 30년 전 취조 중 용의자 한 명을 죽인 뒤 사건을 조작했는데 이제야 뉘우치고 그 사건에 연루된 모든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내 한자리에 모은 뒤 속죄하다가 큰 반전을 맞게 되는 심리 미스터리 스릴러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용으로 제작됐는데 캐스팅 비화가 재미있습니다. 제가 설경구, 차승원 주연의 ‘광복절특사’에 ‘간수2’로 출연했었는데 그걸 인상 깊게 보고 배우가 된 후배가 한 명 있습니다. 그가 이난 감독에게 주인공으로 저를 추천한 겁니다. 두 작품 모두 많은 관객에게 호평을 받아서 저까지 부각됐으면 좋겠습니다.”​

-배우에게 화면과 실물이 다르다는 건 썩 좋은 평가는 아닌데.​

“하하하, 제가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화면이나 사진은 굉장히 거칠게 보이지만 실물은 엄청 착해 보인다는 거죠. 남한테 싫은 소리, 아쉬운 소리 잘 못하는 게 제 본래의 모습이고요, 스크린이나 사진은 연기죠. 오디션 때문에 만난 감독들은 하나같이 지나치게 선해 보인다는 평을 많이 합니다. 사실 독한 면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배우라면 매 작품 속마다 팔색조가 돼야 한다는 건 알고 있고 그렇게 실천 중입니다. 그래서 실물과 사진 속 제 모습의 뉘앙스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배우라면 스타덤도 꿈꾸고, 엄청난 부도 노릴 텐데.​

“아니라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것보다 앞선 목표는 가장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한도 내에서 죽을 때까지 연기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내와 아들은 비록 제가 유명 스타는 아니지만 성취감을 느끼면서 꾸준하게 배우와 시나리오 작가의 길을 걷는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며 적극적으로 응원해주고 있습니다. 서진원을 한 남자로서 완성시켜주는 요인이 가족이라면 한 인간으로서 정립시켜주는 근거는 연기라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저에게 불만은 없고,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본다면 저를 알아보고 응원해주는 팬들이 늘어나게끔 활동의 폭이 더 넓어졌으면 하는 것이고, 작품적으로는 제 선한 이미지를 한방에 날릴 수 있는 정말 지독한 악역 한번 해보는 것입니다. 돈이 풍요로웠던 적은 없지만 많아질수록 욕심이 더 커진다는 것쯤은 알 나이는 됐습니다. 여러분, 새해엔 복 더 많이 받으시고, 더욱 건강하고 행복해지세요.”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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