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쿠르스크>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2000년. 러시아 해군 북방함대 소속 대위 미하일(마티아스 쇼에나에츠)은 전우들과 함께 한 전우의 결혼식 축하연 준비 중 샴페인을 사는 데 돈이 부족하자 손목시계를 풀러 해결한다. 8월 10일. 미하일 등 118명을 태운 축구장 2개보다 큰 핵잠수함 쿠르스크가 북극해 남쪽 바렌츠해로 훈련차 출항한다.

이틀 후 어뢰 하나가 과열돼 예정된 훈련 시각보다 빠른 발사가 절실한 상황이지만 함장은 매뉴얼을 고집하고, 어뢰는 이내 폭발한다. 전 선원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첫 폭발의 영향으로 나머지 어뢰들이 연쇄 폭발해 쿠르스크는 150m 아래 바닥에 침몰한다. 생존자는 미하일을 포함해 23명.

이튿날 정부는 침몰을 확인한 뒤 그 다음날 전 승무원이 생존했다고 오도한다. 쿠르스크의 호위함을 진두지휘하던 베테랑 그루친스키 제독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상부에 영국, 미국 등의 구조 의사를 수용할 것을 요청하지만 상관 페트렌코 제독은 이를 묵살한 뒤 구조함을 출항시키라 명령한다.

아들 미샤에 이어 둘째를 임신한 미하일의 아내 타냐(레아 세이두) 등 승무원의 가족들은 기자회견장에 몰려들어 현 상황의 진실을 간절하게 요구하지만 정부와 해군 당국은 은폐와 거짓으로 일관한다. 영국 해군 준장 러셀(콜린 퍼스)은 친구인 그루친스키에게 전화를 걸어 구조에 나서겠다고 제안한다.

▲ 영화 <쿠르스크> 스틸 이미지

그루친스키는 거듭 상부에 세계 각국의 도움을 받아들이자고 재촉하지만 페트렌코는 구조함의 ‘기적’만 바랄 뿐이다. 잠수함 한 선실의 밀폐된 공간에 고립된 미하일 등은 기지를 발휘해 추위, 산소와 물 부족, 공포 등과 사투를 벌이며 생존의 안간힘을 쓰며 버티지만 죽음은 시시각각 다가오는데.

‘쿠르스크’(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는 러시아의 현실과 바다 사나이들의 관계를 두 축으로 세운 영화다. 구소련은 미국의 대척점에 선 대항마였지만 현재의 러시아는 다르다. “구조함 3개 중 1개는 미국에 팔았고, 하나는 고장 나 흑해에 갇혀있고, 가동 가능한 한 개는 고철”이란 대사가 촌철살인이다.

그건 “러시아가 돈이 있었더라면”이란 대사로 이어진다. 러시아 군부는 군사 기밀을, 정부는 국가의 체면을 지키는 게 목적이다. 승조원들의 생명과 그 가족들의 고통 따윈 안중에도 없다. 국가 권력이란 게 다 그렇게 이기적이고, 배타적이며, 자신들의 카르텔 외의 다수를 바보 취급한다고 비난한다.

페트렌코가 “사고 지역은 해저 500m 지점이고 시야가 매우 안 좋다”라고 구조 작업의 어려움을 호소하자 타냐는 “바렌츠해는 그리 안 깊고 가시권도 좋다. 우리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바보도 아니다”라고 일갈한다. “승조원들이 살아있었다면 구조함이 떠났을 텐데 그냥 있네요”라고 판단할 만큼 영리한 국민.

▲ 영화 <쿠르스크> 스틸 이미지

프랑스와 벨기에 제작에 네덜란드 감독인 점을 감안하면 비단 러시아(정부)만을 겨냥한 비아냥거림은 아닌 듯하다. 당국은 “‘군인들은 조국을 지키겠다’고 맹세했다”라며 끝까지 자신들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하지만 정작 군인들은 죽음 앞에서도 동료애와 유머를 잃지 않음으로써 최고선을 추구한다.

작은 화면으로 시작해 미샤와 아이들이 출항하는 쿠르스크에게 손을 흔들고 이내 쿠르스크가 바닷속으로 사라지면 넓어진 뒤 말미에 쿠르스크 안의 상황이 종료되면 다시 좁아지는 화면 비율은 주인공들과 관객의 감정과 심리를 말한다. 언어나 그림이 아닌 ‘사이즈’로 말하는 방식은 역설적 골계미다.

미샤와 미하일이 욕조와 바닷속에서 만나는 인트로와 아우트로의 수미상관은 가족 간의 추억을 말한다. 부모와 자식은 물론 부부도 한날한시에 죽지 못하므로 이별은 예정된 시간이다. 그 시간을 극복하는 건 좋은 기억이란 공간성이고, 영화는 그 메타포로 손목시계를 앞세운다. 시계의 비도구적 시간성.

“아버지에 대해 기억나는 게 있냐”라는 미하일의 질문에 3살 때 아버지를 여읜 전우는 “별로 없지만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라고 답한다. 미하일은 어린 미샤와 태아가 자신을 어떻게 추억하고, 상상할지 안타까운 것이다. 영화는 추억과 그 근거인 흔적을 삶의 철학으로 내세운다.

▲ 영화 <쿠르스크> 스틸 이미지

합리론과 경험론의 충돌과,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립을 부각한다. 소수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국가의 체면과 군사의 기밀을 지킴으로써 다수 국민의 안보와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합리론과, 모든 걸 떠나 각국의 구조 지원을 받음으로써 일단 생명은 살리고 보자는 영국 등의 경험론.

군인을 국가에 봉사하는 소모품쯤으로 취급하는 정부의 유물론은 일방적이고 천박하지만 정작 대상화된 23명은 숭고한 관념론을 후대에 남긴다. 한 명이 잠깐 실성해 위기를 자초하지만 또 다른 동료 한 명의 여유가 바다 사나이라는 동지애를 일으켜 인류애를 완성하는 감동은 울지 않고는 못 배긴다.

욕조 속의 미샤는 아버지의 손목시계를 보며 자신의 잠수 기록을 세운다. 미하일 등 해군이 갖춘 자부심의 은유. 후반부 폭발로 해저에 잠긴 미하일의 시야에 들어온 건 힘차게 물살을 가르는 미샤. 비겁하게 단명을 유지하는 권력에 비해 당당한 죽음으로 새로운 영생을 이룩하는 군인의 거룩함!

잠수함 승조원은 일반 함정과는 또 다른 공포와 외로움에 맞서야 한다. 산소와 잠수병이다. 해저에선 시간도 멈춰있다. “바다 사나이는 전쟁 중에도 서로 지킨다”라는 대사는 한동안 긴 여운을 남길 듯하다. 시간, 공간, 믿음에 대한 철학적 안내서 겸 격정의 드라마다. 117분. 15살. 1월 17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비즈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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